관객을 한꺼번에 울려버린 시와 시낭송!!

시가 꽃으로 피어날 때 2023 지상 스케치

박근영 기자 / 2023년 02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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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음을 터뜨린 낭독자를 안아주는 구지평 시인과 사회자 최대남 시인.

구지평 시인의 시 ‘달항아리’를 낭송하던 칠순 어름의 여성 낭송자가 시를 읊다말고 우두커니 서서 어깨를 떨고 있다. 정적의 순간..., 객석 이곳저곳에서 동시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나 싶더니 삽시간에 행사장이 울음바다로 변해버렸다. 사회를 보던 최대남 시인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렵게 말을 잇는다.

“여러분... 시가... 사람을 울리지요. 이게 시 아닐까요?”

낭송하던 여성이 반 울음으로 짧은 시 낭송을 마치자 구지평 시인이 낭송자를 안아드린다. 객석에서 따스한 박수가 터져 나와 한동안 그칠 줄 모른다.

“제가 오래전 영국에 갔을 때 마침 대영박물관에서 우리나라 도예가의 백자 달항아리 특별 전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큰 감명을 받고 그 후로 달항아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습니다”

구지평 시인은 달항아리가 워낙 커서 윗판과 아랫판을 따로 만들어 붙여야 하는데 이 작업이 여건 어렵지 않다는 것, 1300도 이상의 고온을 견뎌야 비로소 도자기가 된다는 것 등을 설명하며 어머니들이 자식을 낳고 키우는 무한한 정성과 인내를 달항아리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마침 객석에는 80% 정도의 관객들이 중년을 넘긴 여성들이었다. 누군가의 어머니로서 시 속에 녹아 있는 뜨거움을 느끼고도 남을 관객들이었다.

“제 시가 이처럼 많은 감동을 줄지 몰랐습니다. 시를 쓰는 이유가 더 분명해졌고 시를 더 진지하게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6남매 오누이를 낳아 길러신 끝에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절절함이 시 속에 들었노라 설명하는 구지평 시인은 시낭송회 행사를 통해 오히려 자신이 정화됐다며 고마워했다.
가장 많은 관객으로부터 낭송을 들은 김재원 시인은 다른 사람이 낭송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시를 듣으면서 자신이 시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털어놓는가 하면 자신의 시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며 그 순간의 의미를 되새겼다.
 
↑↑ 시와 그림 음악과 모노드라마가 어울어진 시낭송회 한 장면

오정후 시인의 ‘모순의 시간’을 낭송한 역시 칠순 어름 여성 낭송자의 시 낭송이 끝나자 엉뚱하게도 ‘앵콜’이 터졌다. 노래나 연주가 아닌 시낭송에 터진 앵콜이라 사회자가 일순 당황했지만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로 결국 앵콜 낭송이 이루어졌다. 오정후 시인은 시를 들으며 자신의 시가 이렇게 멋진 시였는지 미처 몰랐다며 행복해했다.

이호남 시인의 ‘비밀의 방’을 읊은 낭송자는 이호남 시인이 남성 시인인 줄 알았다가 뜻밖에 여성 시인이라는 것을 알고 오히려 반겼다.
 
이호남 시인은 글을 짓는다는 것은 한 자 한 자씩 소중히 다루는 자신의 마음의 표현이라며 시를 쓰는 마음을 전했다.
 
임왕주 시인은 자신의 시 ‘섬’이 낭송된 후 ‘시는 결국 섬과 섬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아니겠느냐?’고 말해 공감을 자아냈다.
 
장원의 시인의 ‘목련꽃 그늘 아래’가 낭송된 후 장원의 시인은 ‘삶과 죽음 기쁨과 고통이 같은 뿌리에서 피어나는 인생의 꽃이라 생각하며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시를 통한 폭소와 미담도 이어졌다. 장형갑 시인의 ‘상심’을 낭송한 관객이 무슨 일로 그렇게 상심했느냐고 물었다. 어떤 철학적이고 심오한 절망감을 기대하는 물음이었다.

“어릴 때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후배와 사귀고 결혼했습니다. 그때 느낀 상실감입니다”
 
장형갑 시인의 솔직하고 순수한 대답에 장내에 폭소가 퍼졌다. 최대남 시인의 시를 읊은 주부 박정우 씨는 ‘2018년 어느 국수 집에서 열린 시낭송회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되어 최대남 시인을 알게 되었다’고 소개한 후 그 인연으로 시를 가깝게 여기고 시낭송의 재미를 느꼈다고 소개했다.
 
인천 송도에서 이 행사를 보기 위해 이틀째 방문 중이라고 소개한 박정우 씨는 시 낭송도 멋지게 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스님인 박금성 시인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낭송은 진행됐다.

시낭송 행사는 관객이 이번 행사에서 발간된 시집을 보고 낭송할 시를 골라 낭송하면 해당 시를 지은 시인이 나와 시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시를 쓰게 된 배경이나 모티브를 설명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신기한 것은 2시간 30분간 진행된 긴 행사에 70% 이상 관객이 남아서 끝까지 참석하고 갔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에게서 지루하거나 따분한 눈치는 전혀 없었다.
 
행사를 주도하고 사회까지 맡아본 최대남 시인은 그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은 관객들이야말로 최고의 문화인이자 그 자체로 시인이라고 극찬했다. ‘바로 이런 행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 시인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꿈꾸던 바람이었다’며 감격했다.

지난 2월 4일부터 8일까지 대학로 ‘혜화아트센터에서 열린 시화전 ‘시가 꽃으로 피어날 때 2023’는 ‘시인만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시인과 관객 모두를 위한 행사로서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혜화아트센터가 지난해에 이어 추천한 화가 박순영 작가를 포함한 23인의 화가들이 각각의 시에 아름다운 그림을 제공했다.
 
이 전시에는 이날 행사 중간중간 통기타 그룹 ‘보헤미안’의 흥겨운 노래와 반주가 선물되었고 시인의 삶을 짧고 강열하게 표현한 모노드라마 배우 김자숙 씨의 열연이 펼쳐졌다. 이들 공연은 오히려 지나칠 만큼 끓어오르는 낭송 열기를 적절히 식혀주었고 시를 향한 마음을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했다.

경주에도 출중한 시인들이 활동하고 시를 좋아하는 많은 독자들이 있다. 이렇게 시인과 독자가 소통하는 행사가 열린다면 경주의 시(詩)가 조금 더 가깝게 시민들에게 다가가지 않을까? 경주의 멋진 시인들이 이 행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 관객들을 울린 구지평 시인의 시 ‘달항아리’, 그림은 김선 작가


구지평 시인 영감받은이종능 작가 전시회, 2007년 대영박물관 초청

기사에서 구지평 시인이 언급한 ‘대영박물관 백자달항아리 특별전’이 취재결과 경주출신 도예가 이종능 작가가 2007년 대영박물관 초정으로 진행한 전시회임이 알려져 눈길을 끈다.
 
구지평 시인의 시와 사연을 전해 받은 이종능 작가는 ‘시가 정말 감동적’이라고 공감한 후 자신의 작품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것에 대해 오히려 고마움을 전했다.

당시의 전시 기사를 읽은 구지평 시인은 이종능 작가의 작품이 궁금하다며 기회가 되면 이종능 작가와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기자에게 전했다. 


↑↑ 이종능 작가의 대영박물관 백자달항아리 특별 전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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