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행정기관, 문화재단 삼위일체가 축제성공의 비결

경주문화재단 오기현 대표, ‘4년보다 진했던 1년’

박근영 기자 / 2023년 0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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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문화재단에서의 보람을 회고하는 오기현 대표

2022년 10월에 치러진 제49회 신라문화제는 예전보다 월등한 만족감과 이슈를 남겼다. 그 중심에는 단연 월정교에서 치러진 개막전 ‘화백제전’이 있었고 신라문화제 전체에 많은 참석자들의 숨은 시간과 땀이 있었다. 그 땀과 시간의 연결고리 속에 경주문화재단 대표이사 겸 경주예술의전당 관장인 오기현 대표이사(이하 오기현 대표)가 있다.


햇수로 60년, 환갑을 맞은 49회 신라문화제가 각별한 평가를 받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경주문화재단이 독립적으로 신라문화제를 관장하면서 예술제는 예총을 중심으로 한 예술 단체들이, 문화재단은 축제를 전담해 나눈 것이 긍정적인 변화의 핵심이었다. 경주의 문화예술단체들이 자신들의 분야에서 최대한 자율적으로 자신들의 행사에 집중함으로써 어느 때보다 참가의욕과 창작열이 높았고 결과도 좋았던 것으로 평가됐다. 


신라문화제 당시 사진전에 참여한 어느 인사는 “이번처럼 자율적으로 전시행사를 치러본 적이 없다!”며 신라문화제가 진정한 시민의 문화제로 거듭났음을 인정했다.


그런 한편 경주문화재단은 공연을 비롯한 축제에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질적 수준을 대폭 확장할 수 있었다. 특히 화백제전은 여러 요소들로 눈길을 끌었다. 월정교를 배경으로 남천에 무대와 객석을 세웠다는 것 자체가 우선 놀라웠다. ‘물 위의 제전’이었다. 여기에 처음 시도되는 ‘신라식 드론 공연’과 엄청나면서 적절한 효용의 폭죽, 용이 등장하는 기발한 무대장치 등이 재미를 증폭시켰다.



사람들의 등장, 이전에 없었던 일이 생겨났고 상투적인 일들이 사라진 ‘화백제전’의 감흥

그보다 더 주목할 점은 사람이었다. 화백제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성씨이자 국민의 4~50%를 차지하는 중요 성씨인 배, 설, 손, 이, 정, 최 등 신라육부 성씨와 박혁거세를 대신한 박씨의 후세가 최초로 공연에 참여해 화제를 일으켰다. 경주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근간을 이룬 삶과 역사의 뿌리라는 사실을 천명한 일대 사건이었다. 그 시작을 알리는 퍼포먼스가 영상과 공연으로 어울린 모습은 신라문화제가 왜 신라문화제인지를 되새기게 해주었고 진정한 경주 시민의 축제이자 대한민국 대표 문화제임을 보여준 증거였다. 


여기에 불편하고 형식적인 인사말을 쏙 빼고 주낙영 시장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공연의 일원으로 참석하는 구성도 좋았다. 이전에 있지 않았던 일이 생겨났고 이전의 상투적인 일들이 사라진 개막 축하무대는 신선했다.
개막식 이후, 월정교 공연들과 봉황대와 황리단길, 경주역 등 여러곳에서 치러진 다양한 공연과 전시, 축제의 현장들은 신라문화제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당시 사진전에 참여한 어느 인사는 “이번처럼 자율적으로 마음에 드는 전시행사를 치러본 적이 없다!”며 신라문화제가 진정한 시민의 문화제로 거듭났음을 인정했다.


이외에도 구도심 빈 상가들을 단장해 일으킨 신라아트마켓은 도심상가의 재생 가능성을 엿본 계기였다. 21개 부스로 운영한 봉황대 달빛난장은 중심상가 상인들의 외면을 받아 재래시장 상인들까지 설득해 참가시켰는데 막상 신라문화제가 시작되면서 재료가 없어 일찍 문을 닫고 장사에 지쳐 일찍 판을 접을 만큼 성황을 이뤘다.


49회 신라문화제는 환경친화적 축제이자 젊은이들의 시선을 끈 오랜만의 축제였다는 또 다른 성과도 거뒀다. 달빛난장에는 일회용 아닌 다회용 용기를 사용했고 테이블은 목재 팔레트를, 의자는 과일상자를 사용하는 등 새로운 아이디어를 동원했다. 여기에 상인들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ESG축제를 구현했다. 이전에 사용하던 몽골 텐트를 전면 교체해 노란색 인디언 텐트를 사용한 것이 젊은 층들을 매료시켰다.

오기현 대표는 49회 신라문화제의 성공요인을 또 다른 곳에서 찾는다.


“신라문화제가 시민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최대한 시민들을 많이 참석시키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시민참여단입니다. 시민기획단, SNS홍보단, 고교1·2학년생들이 주축이 된 청소년 화랑원화단 등을 각각 50명씩 선발해 3~4개월 교육하고 참여시켰습니다. 이런 작업들을 1년 전부터 했는데 결국 그분들이 행사를 돕고 홍보하고 즐기는 추축이 되었지요"


KT에서 조사한 통계에서 신라문화제를 즐긴 참여자들 중 어린이를 제외한 50%가 30대 이하였다는 결과는 바로 이런 시도의 성과들이었다.


오기현 대표는 2019년 취임한 이후 눈에 띄지 않지만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 왔다. 취임 초기 오기현 대표는 여러 가지 난감한 시련들에 붙들려 있었다.


“가장 먼저, 문화재단 직원들에게 의욕이 없었어요. 경주시 문화 관련 공직자들은 고압적이고 경직돼 있었지요. 저를 외지인 취급하는 문화예술 관련 단체들의 시선도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경주예술의전당이 가진 ‘태생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은 뜻밖의 복병이었습니다”


오기현 대표의 염려는 오 대표의 취임 이전에도 있어왔던 고질적 문제였다. 경주문화재단은 오랜 역사와 전통, 구성원 각자의 역량에 비해 비정규직이 대부분이었고 급여도 무려 10년간 오르지 않은 데다 ‘총액임금제’로 묶여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급여가 적어지는 등 고용안정도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반면 문화적 소양이 낮은 공직자들이 과도하게 간섭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일을 끌고 간다는 비판이 문화예술계 안팎에 낭자하던 시기다. ‘경주사람’에 대한 기준이 까다로운 경주에서 경주고만 나오고 서울에서 대학과 직장 생활을 한 오기현 대표는 그냥 외지에서 온 낙하산쯤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직원의욕을 높이고 공연 고급화 / 지원하되 간섭 않는 공직자들과 이제야 교감 / 예술의전당운영의 묘 ‘제대로’ 살려야

오기현 대표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문화재단의 기본을 다지는 일로 여겼다고 회고한다. 많은 노력 끝에 문화재단 직원들의 임금이 정상화되고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돼 언제보다 의욕적으로 활동하게 됐다. 임금과 고용안정도를 높인 대신 직원들에게는 업무의 효율성과 향후 책임 있는 직책의 수행을 위해 직종 간의 차별을 두지 않는 ‘올 라운드 플레이어’로 활동해 줄 것을 주문, 지금은 20여명의 직원들이 모든 행사를 자신의 일처럼 책임감을 자기고 협조하고 지원한다고 안도한다.


오기현 대표는 요즘 같으면 ‘일 할 맛 난다’며 흡족해한다. 임기 4년 차, 그중 대부분을 코로나19로 인해 제대로 일 다운 일을 해볼 수 없었고 취임 초반 고압적인 공직자들의 벽을 넘어서기 힘겨웠다. 다행히 코로나가 위력을 잃었고 현재 문화 관련 공직자들은 국장부터 주무관에 이르기까지 문화재단과 좋은 조화를 이뤄 어느 때보다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주낙영 시장이 문화 관련 정책에서 일관성 있게 강조해온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라’는 기조가 지금처럼 잘 지켜진 예가 없었다는 것. 49회 신라문화제의 성공에는 바로 그런 원동력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오기현 대표에게는 지난 4년 중 최근 1년이 가장 보람 깊고 진한 정이 간다.


문화단체들에 대해서는 자신 역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기조를 유지하며 자신을 이방인처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며 비결을 알려 준다. 오기현 대표는 경주의 내공 있는 문화 예술인들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야말로 경주가 경주다운 도시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오기현 대표는 경주 공연의 고급화와 예술의전당 자체 공연의 전체 유료화를 단행해 경주의 공연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실제로 올 3월에는 세계적인 뮤지컬 ‘캣츠’를 유치, 이미 5회분 전석매진을 기록했고 5월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공연이 불과 10분만에 매진됐다. 이들 공연 중 경주시민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70%나 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앙리마티스 전’도 하루에 150~200명, 주말에는 3~400여명의 유료 관람객이 관람하러 온다.


“경주에서 고급 공연이 가능할까 염려하지만 좋은 공연일수록 일찍 매진되고 비싼 공연일수록 공연관람 매너도 좋습니다. 반면 아무리 좋은 공연이라도 무료로 공연하면 노쇼가 많고 공연 도중 자리를 뜨는 등 매너도 엉망입니다.”


오기현 대표는 공연과 전시는 돈 내고 본다는 기조를 지킬 때 경주 공연과 전시의 격이 높아질 것이라며 결국 좋은 공연과 전시를 유치하는 것이 경주문화를 자연스럽게 향상시키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오기현 대표는 예술의 전당이 BTL방식으로 건립되는 과정에서 당시의 경주시가 건설기업에 건물운영권과 관리까지 과도하게 내준 바람에 경주예술의전당의 독립성과 운영이 발목 잡혀 있다며 어떤 방식으로건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경주시는 매년 약 80억원의 원금 및 이자를 건설사에 납부하면서 단순한 수리 하나조차 마음대로 못 한다. 예술의전당 5층의 경우 서울예술의전당 로비 못지않은 휴식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복안이 있는데도 운영권이 없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호소한다.


“이건 예술의전당이나 시나 건설사 모두에게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경주시와 건설사가 시민과 시 문화를 위한 대국적 차원에서 다시 협의하기를 바랄 뿐이지요”


오기현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문득 그가 SBS PD시절 한국PD연합회 회장을 맡아 PD들의 권익 향상에 힘썼고, SBS노조위원장을 맡아 전체 직원들의 복지와 권익 증진에 앞장 섰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모두의 권익을 위하고 직장과 사람들의 조화로운 발전을 원했던 그가 경주문화재단에서도 비슷한 일을 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4년 가깝게 경주문화재단에 오기현 대표가 남긴 문화예술적 발자취는 두텁고 선명하다. 그의 발자국이 또 다른 모습으로 더 단단히 경주문화전반에 새겨질 수 있을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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