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이 좋아 경주에서 건축업 시작한 조용철 대표

문화재 수리, 신개념 한옥 개발 등 뼛속까지 ‘한옥맨’

박근영 기자 / 2023년 0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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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 작업중인 조용철 대표

경주를 특정하는 가장 큰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신라의 고도로서 가진 많은 유적지와 곳곳에 흩어져 위용을 자랑하는 크고 작은 능(陵) 그리고 톨 게이트를 들어서기 무섭게 연도에 늘어선 한옥 등이다.


그 중에서도 한옥은 경주시가 제도적으로 시의 이미지를 지키고 북돋우기 위해 애쓰는 시민들의 주거공간으로 경주만큼 오래된 전통 한옥이 많이 남아 있는 곳도 드물다.


최근에는 겉모습은 한옥이지만 속은 현대식으로 꾸며진 신개념 한옥들이 새롭게 늘어나는 추세다. 나아가 ‘전통 한옥 체험’이나 ‘한옥 펜션’ 등의 이름으로 한옥이 인기리에 판매되기도 한다.


주거공간인 한옥과 상업적 개념의 한옥 기능이 맞물려 또 다른 한옥의 가능성을 연 것이다.


여기에 교촌 한옥마을과 황리단길에 집중적으로 늘어난 한옥들은 전통 한옥의 특성과 현대 한옥의 매력을 보여주며 관광성도 증폭시키고 있다.


↑↑ 한옥으로 지은 신나무골 성지 성당신축공사.

㈜성우 조용철 대표는 경주와 한옥이 좋아 한옥을 공부하고 경주에 정착해 20년 동안 경주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문하재와 한옥 관련 일을 해 오다 올해 들어 스스로 건축사업을 시작한 뼛속까지 한옥으로 새긴 ‘한옥맨’이다.


지난 3월 30일 경주시 초당길15번길에 자리 잡은 ㈜성우에서 개업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조촐한 개업식 겸 고사(告祀)를 지냈다. 이 자리에서 조용철 대표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편안하고 안전한 집을 짓겠다’는 약속으로 고사에 올리는 축문을 읊었다. 고사에는 이름난 건축회사 임직원들과 건축 관련 학자들, 대목장, 초가전문가, 와공 등 한옥과 관련한 각종 전문가들과 관광학계 인사, 일가친지 등이 모여 조용철 대표의 장도를 축하했다.


이날에 앞선 지난 설 명절, 조용철 대표의 안내로 조용철 대표가 지은 독특한 형태의 한옥 팬션을 방문했다


이 한옥 역시 외형과 내부의 중요 구조는 완연한 한옥의 모습이었지만 기능은 놀랄 만큼 한옥의 경계를 벗어나 있었다. 월풀 욕조와 사우나까지 들어가 있는 데다 회의나 연회가 가능한 현대식 장치들이 빠짐없이 갖춰져 있었다.


조용철 대표는 이런 한옥 팬션이 다소 생소하고 특별해 보이지만 바로 이런 수요가 최근 한옥을 짓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한옥이 가진 고풍스럽고 편안한 이미지는 세상의 어떤 건축형태보다 특별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능적으로는 특히 겨울철 난방이 어렵고 이전의 좌식(坐式)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해 현대인에게는 불편한 면도 있습니다. 요컨대 한옥이 가진 아름다움을 지켜 가면서도 현대적인 기능을 조화롭게 접목하는 것이 새로운 한옥 건축의 대세입니다”


↑↑ 전통의 멋과 현대적 기능을 살린 한옥의 예 무우운

조용철 대표는 경주에서 청춘을 다 보냈고 특히 한옥에 몰입한 특별한 경주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한옥을 만나기까지 조용철 대표의 이력은 다소 의외다. 조용철 대표의 대학시절 전공은 엉뚱하게도 ‘정치외교학’이다. 그러나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대학시절을 보내던 조용철 대표는 정작 정외과와 상관없이 국악 사물놀이의 길을 선택했다.


“제가 말수도 적고 말주변도 참 없습니다. 그러니 당초 정치외교 쪽과 맞지 않았어요. 그러다 민속악기를 연주하는 대학동아리 ‘신명’을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국악에 빠져 살았습니다”


대학졸업 후 조용철 대표는 한때 국악기 연주자로 살며 경주와 울산, 부산을 오가며 국악극단을 전전하기도 했다. 이 무렵 짧게 직장생활도 했지만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IMF 이후 진로를 고심하다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한옥학교’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게 제 마음을 움직였어요. 국악활동하면서 향교나 서원, 절, 기타 한옥 고택 같은 곳에서 자주 공연하면서 한옥과 친숙했던 것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 초가로 이루어진 한티억 새마을 조성 공사


20년간 경주와 전국 각지 문화재 보수 공사, 사찰, 성당 건립에 참여. 전통의 멋 살리며 현대적 기능 적극 보강한 한옥 보급이 꿈


한옥학교에서 ‘건축목공기능사’ 자격을 딴 조용철 대표는 ㈜유성건설과 태흥종합건설(주), 등 몇 군데 건설회사 근무하며 우선 한옥과 건축의 기본기를 익히면서 한옥의 참멋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각종 문화재 유지 보수에 참여하면서 문화재 수리 기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제 공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2010년 문화재청에서 시행하는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2014년부터 ㈜강인에 이사로 근무하며 한옥과 팬션 관련 사업을 지휘하면서 문화재 유지 보수 사업에도 각별한 공을 들였다. 이 시기에 좀 더 전문적인 이론적 기반을 닦기 위해 2019년에는 경북대학교 산업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과정도 마쳤다.


이 과정에서 조용철 대표는 경주 향교 예절관 건립, 불국사와 무설전 긴급 보수, 재매정 정비, 법흥왕릉 축대와 소교량 보수, 황룡사지역사문화관 임시주차장, 무형문화재전수관 지진피해 복구, 수봉정 보수, 충의당 주변, 양동마을 수운정 등 수 차례 보수, 무산서원 주차장, 안강 두류삼감정려각, 문무대왕릉 태풍 긴급보수, 기림사 남적암과 템플스테이, 골굴암 대적광전 보수, 경주 표암제 등 경주에서 일어난 각종 문화재 정비와 보수 작업에 참여했다.


경주 뿐 아니라 의성 대곡사 범종각 신축, 구미 신라불교무화초전지, 안동 충효당, 동강서원, 봉화 무진장재, 청송 송학서원 등 무수한 문화재 보수 공사에 참여했고 덕수궁 석조전 무장애시설설치, 돈의문 박물관 마을조성에도 참여했다.


문화재 중에서 성당과 관련한 사업도 기억에 남는 것이 많다. 그중에서도 신나무골 성지 성당 신축, 한티성지 역사마을 관광자원화사업 등 천주교에서 시행한 한옥식 성당 사업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렇게 사방팔방 쫓아다니다 보니 20년이 휙 지나갔다.


조용철 대표는 경험과 이론이 두루 갖추어진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경주에 정착한 꿈을 이루는 적기라고 판단해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경주는 한옥이 많아 보이지만 경주라는 정체성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한옥이 본격적으로 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추구하는 한옥은 전통적인 미를 지키면서 현대적인 다양한 편의와 내실을 접목하는 것인데 이런 부분을 좀 더 능동적으로 부각시켜 보급하고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조용철 대표는 ’한옥‘이라 하면 누구나 머릿속에 ’기와집‘만 떠올리는데 한옥에는 분명히 ’초가‘도 중요한 몫을 했다며 몇 군데 마을 사업을 해 본 결과 한옥은 기와집뿐 아니라 초가집도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며 초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분야의 보급을 좀 더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꿈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런 작업의 대표적인 예로 한티억 새마울 조성 공사를 떠올린다.


조용철 대표는 그러나 한옥을 짓는 어려움이 생각보다 크다며 이 부분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 건설사들의 집중적인 고민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특히 한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나무 보급이 원활하지 않아 수입목을 쓰는 것이나 우리나라 기후가 바뀌어 소나무 나이테가 넓어지면서 강도가 약해지는 점 등은 매우 걱정된다고 지적한다.


또 한옥은 기계에 의존하기보다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특성을 가졌는데 훌륭한 대목장들은 많은 반면 와공이나 기타 세부적인 작업에 충실한 기술자들은 부족해 이 역시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긴 안목으로 육성해야 할 건축자산이라 주장한다.


경주가 좋아 경주에서 살았는데 여러 문화재와 한옥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정작 경주보다 외지에서 생활한 날이 더 많아 아이러니하고 아쉬웠다는 조용철 대표. 경주에서 자신의 한옥인생을 펼치기 시작해 바야흐로 경주에서 인생의 승부수를 띄운 만큼 누구보다 각오가 단단해 보인다.


조용철 대표가 추구하는 한옥이 경주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잡아 경주가 좀 더 분명한 한옥의 대표주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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