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행복공유냉장고’, 현대판 경주최부자들의 성과!

식모회 주도, 행정복지센터 지원 후원자 늘며 3호점까지

박근영 기자 / 2023년 0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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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공유냉장고 앞에서 포즈 취한 현대판 경주최부자들 왼쪽부터 손기복 용강동 동장, 남경엔지니어링 김형수 부장과 부인 조애지씨와 아기, 조민선 팀장, 김은정 식모회 회장, 이윤희 팀장

경주에는 전국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나눔 현장이 무려 세 곳이나 있다. 그것도 지방자치단체나 어떤 거대 단체가 실행하는 것도 아니고 대기업이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나눔이 일 년 동안 이어져 왔고 꾸준히 이 나눔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행복공유냉장고’가 바로 그 현장이다. 2022년 7월 1일 황성동에서 처음 시작한 행복공유냉장고는 연이어 7월 7일 용강동에 2호점을 냈고, 11월 8일 동천동에 3호점을 냈다.

처음 경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이 뜻을 모아 만든 ‘식모회’ 멤버들이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 나눔에 참여하는 식모회 회원도 늘어났고 비정규적으로 지원하는 사람들과 이 나눔의 취지에 공감해 매월 만만치 않은 금액을 정기적으로 희사해 활력을 불어넣는 기업도 생겼다.

행복공유냉장고의 시작은 일상속에서 우연히 시작됐다. 용강동에서 ‘김은정 집밥카페’를 운영하다 행복공유냉장고 아이디어를 처음 낸 식모회 김은정 회장은 이 일이 이렇게 변화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 식모회 김은정 회장


식모회 김은정 사장이 첫 아이디어, 남는 밑반찬과 식자재 보람있게 활용하자 했지만 투자비 만만치 않아

“식당을 하다 보니 음식량을 조절하기 힘들었어요. 밑반찬과 식자재를 잘 조절해야 하는데 이게 힘들었어요. 모자라는 것은 둘째치고 남는 밑반찬과 식자재로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없을까 고심했지요”

이걸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던 김은정 회장은 이 문제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식당을 하면서 친목을 나누던 식모회 사장님들 및 한국외식업협회 경주지부 이상득 사무국장 등과 이 문제를 상의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행복공유냉장고’다.

행복공유냉장고는 2022년 6월 20일 식모회 번개 행사를 하면서 탄생을 예고했다. 이날 준비 모임 장소인 궁한정식을 비롯 교동집밥, 김경진 라이브 뽕닭, 마라향, 새파란보스족발, 운수대통닭갈비, 큰기와, 한스델리와 김은정집밥카페 등 9명의 사장님들이 행복공유냉장고의 첫 주자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모여 중고 냉장고와 냉동고를 구해 적당한 장소에 설치하고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 생필품을 눈치 안 보고 가져다 쓸 수 있게 공급하자고 약속한 것.

그리고 이틀 후인 6월 22일 중부동과 황성동, 용강동 등 행정복지센터와 경주외식업지부를 방문한 식모회 회원들은 이들의 협조를 얻어 행복공유냉장고를 설치하기로 최종협의했다. 6월 24일에는 1호점 황성동, 2호점 중부동에 행복공유냉장고 설치가 결정되었다. 이 뜻깊은 예비모임을 본지가 7월 1일 자로 보도해 공식적으로 경주 일원에 알렸고 이후 많은 신문 방송들이 다투어 보도하며 행복공유냉장고를 소개했다.

단순히 식모회 사업으로 시작한 이 사업에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이 늘어났다. 식모회와 별도로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는 회원들이 늘어났고 나눔에 관심을 가지는 학자, 시의원, 기업, 공직자, 시민단체 등이 갈수록 늘어났다.

비정기적인 후원도 잇따랐다. 누구는 햇반과 라면을 후원하고 농협공판장의 뜻있는 대표들은 정기적으로 야채와 과일을 후원했다. 생수, 식혜, 김 등이 후원되었고 성동시장 내 총각내축산과 삼촌축산에서는 돼지불고기 100팩을 후원했다. 어떤 후원자는 자신의 텃밭에서 난 야채를 냉장고에 넣기도 했다. 7월 25일에는 주낙영 시장이 식모회 회원들의 모임에 방문해 좋은 일을 격려했다.

이렇게 행복공유냉장고가 번창(?)하자 문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관리가 어려웠다. 가장 큰 문제는 물품들을 채워 넣으면 정작 필요한 취약층이나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이 가져가기보다 일부 욕심 많은 사람들이 무턱대고 가져가 버리는 것이었다.

 선한 사람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남의 선함을 이용해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처음 이런 경험을 한 식모회 회원들은 머리를 싸매고 회의한 결과 행정복지센터 밖에 두었던 행복냉장고를 센터 안에 배치하고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의 협조를 구했다.

때맞춰 행복 냉장고를 채우는 일도 숙제였다. 이 일은 식모회 회원들이 2~3인씩 조를 짜 직접 채우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더구나 코로나19 기간 식당의 일손은 모자라고 일할 사람도 구하기 힘든데 시간을 내 냉장고를 채우는 것은 식모회 회원들에게도 여간 부담이 아니었다. 여기에 처음에는 남는 밑반찬과 식자재를 활용할 계획이었지만 정기적으로 일을 진행하다보니 이에 맞추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십시일반 비용까지 내게 되었지만 회원들은 기꺼이 이를 감수했다.


↑↑ 현재 참가하고 있는 행복공유냉장고 후원업체들


용강동·동천동 행정복지센터 적극 지원, 후원자더 늘어. 남경엔지니어링 전사적으로 지원해 눈길 !

다행히 용강동과 동천동 행정복지센터는 이런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주는 적극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용강동 행정복지센터는 ‘행복창고’라는 용강동 자체의 나눔을 통해 행복냉장고에 대한 이해를 이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 중심인물이 이윤희 팀장이다. 이윤희 팀장은 2022년 2월부터 ‘용강행복창고’를 운영해온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윤희 팀장은 “가장 먼저 설치된 중부동이 행복냉장고를 포기하면서 용강동으로 오게 된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며 행복냉장고를 돌보는 일에 만족감을 표했다.

당시 윤병록 동장의 적극적인 지원도 용강동 행복냉장고 안착에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병록 동장은 경주 남양유업과 함께 독거 중장년층을 지원하는 ‘참새미 캐어’ 사업을 시행하는 등 역시 행복냉장고의 취지에 적극 공감하던 터라 이 사업을 적극 지원했다. 지난 7월 1일 자로 부임한 손기복 동장도 ‘다 된 일에 숟가락 얹는다는 소리 듣지 않도록 더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렇듯 행정복지센터가 행복냉장고를 관리하면서 이전처럼 함부로 물품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없어졌고 물품을 가져가는 분들도 취지에 맞게 스스로 자율적으로 물품을 가져가면서 행복냉장고는 고유의 목표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어르신들이 물품 가져가시면서 일부러 ‘하나만 가져 간다’는 것을 보여주시기라도 하듯 저를 향해 슬쩍 물품을 흔들어 보여주시거든요. 그 모습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 용강동에 함께 진행되는 행복공유냉장고와 행복창고

이윤희 팀장의 행복냉장고 운영 경험담이다.

여기에 ㈜남경엔지니어링 윤태열 대표와 직원들의 참여도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 이 회사는 정책적으로 둘째, 넷째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냉장고에 물품을 후원하기로 약속했을 뿐 아니라 직원들의 고유업무로 순번을 정해 냉장고에 물품 채우는 일을 지원했다.

특히 직원들이 행복공유냉장고를 채우는 날은 가족들도 함께 참여하도록 유도해 나눔 문화가 직원 개개인뿐 아니라 가족의 행복으로 이어지도록 연계했다.

심지어 40명 남짓의 남경 엔지니어링 임직원들은 점심시간이나 회사 회식 때는 식모회 회원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식모회 맛집투어’로 간접 지원까지 해왔다. SNS상에서는 식모회 회원사를 눈여겨 보고 있다 식사 때나 회식 때 이용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그야말로 선한 영향력의 확산이었다.

취재 당일, 마침 동천동을 돌아 용강동으로 물품을 채우러 온 남경엔지니어링 조민선 팀장과 김형수 부장 그리고 태어난 지 50일 된 아기를 안고 나온 김형수 부장의 부인 조애지 씨도 만날 수 있었다. 냉장고 채우는 내내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김은정 회장은 지난 일 년 동안 행복냉장고를 운영해오면서 페이스북에 도와주신 분들을 빠짐없이 소개하고 도움 준 내용도 꼼꼼히 올려왔다. 이 모든 일이 식모회 회원들과 많은 후원자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기에 그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라도 일일이 기록한다는 것이다.

취재하면서 전국적으로 포항, 구리, 정읍, 거창, 군산, 안산 및 서울의 노원구, 관악구 등 여러 지자체에서 이와 비슷한 공유냉장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냉장고로 경주의 행복공유냉장고처럼 민간의 자발적 주도로 3호점까지 낸 곳은 없었다.

김은정 회장은 가끔씩 행복공유냉장고 앞에서 만나자는 ‘번개’를 친다. ‘누구나 무엇이건 하나씩만 들고 와도 좋다’는 말에 여러 사람이 손을 든다. 나눔이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 경주시민 누구나 행복공유냉장고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를 통해 보게 된다. 행복공유냉장고를 보면 경주에 나눔과 상생의 밝은 빛이 보인다. ‘우리 시대 경주최부자’들이 내는 아름다운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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