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할매부처’는 여래인가? 승가대사인가?

강정근 박사, 경주 남산 불곡마애여래좌상은 승가대사상

오선아 기자 / 2023년 0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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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둔황석굴 승가도, 메트로 폴리탄박물관 승가상, 북한산 승가사 승가상

문화재학을 전공한 강정근 박사가 최근 학술지 ‘전통미술융합연구 창간호’에서 경주 남산 불곡마애여래좌상에 대해 승가대사상임으로 제시했다. 더불어 문화재 명칭도 경주 남산 불곡석굴승가대사상으로 재검토 돼야한다고 제기했다.

경주 남산 할매부처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불곡마애여래좌상은 화강암 바위를 깎아 만든 감식 속 마애불 좌상이다. 안정된 구도, 단아한 형태, 부드러운 양감 등으로 삼국시대의 고졸미를 대표하는 7세기 불상으로 남산의 불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강 박사는 “‘할매부처’라는 별칭은 머리에 두건을 쓴 온화한 인상의 불상을 보고 할머니와 유사한 이미지가 연상돼 붙여진 것으로, 아직까지 두건을 쓴 여래상의 실체가 확인된 것은 없다”면서 “또한,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신성함을 나타내기 위해 32길상 80종호라는 형상 대표 요소들이 사용되며, 이러한 내용들은 경전에서 명시돼 있다. 따라서 두건을 씌운 여래상이 조영된다면, 그 자체로 부처님의 신성함을 해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경주 남산 불곡마애여래좌상

불곡마애여래좌상 존명에 대해 故이근직 선생은 2003년 발표한 ‘경주남산불교유적의 형성과정’에서 남산에서 유일하게 석굴형식을 취했고, 머리에 모자를 쓴 듯한 느낌 등을 고려할 때 신라 최초로 조성된 승상일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이어 김창호 선생은 2007년 발표한 ‘한국 고대 불교고고학의 연구’에서 두건을 쓰고 있는 도상 특징을 미루어 서역출신으로 당 시기에 중국에 와서 고승으로 이름을 날린 승가상일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이를 토대로 조영시기 상한을 8세기로 추정한 바 있다.

강 박사는 “머리에 두건을 쓴 불교도상에는 ‘지장보살’ ‘빈도로존자상’ ‘승가대사상’이 존재하지만, 두건을 쓴 지장보살의 경우 석장이나 보주 등 지장보살을 상징하는 지물이 없고, 지물을 들어야 할 손도 보이지 않아 지장보살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두건을 쓴 나한상 중에서는 빈도로존자상이 다수 발견되지만, 이러한 빈도로존자상의 조성 시기는 고려 중기 이후로 불곡마애여래좌상과는 시기적인 차이가 많이 난다”면서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러면서 “승가대사는 당 시기 중국에서 실존한 포교 승려로, 교리에 밝고 송주에 능해 참된 승려로 소중히 여겨졌다. 중국에서 승가대사신앙이 크게 유행했고, 한국으로 전래돼 북한산 승가사에는 고려 전기 작품으로 알려진 승가상이 전해져 있다”면서 “불곡마애여래좌상은 중국 승가상과 북한산 승가상과 도상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석굴 안에 조성된 점, 수인이 없는 점도 같다. 또한 승가대사의 상징인 정혈도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승가대사는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졌으며, 998년에 편찬된 ‘송고승전’에는 기우, 치병, 예언 등은 물론 전란이 있을 때 백성들을 수호하는 역할까지 다양한 신통력이 등장하며, 중국전역에 승가신앙이 급속하게 민간 신앙화됐다. 이와 함께 인력으로 할 수 없는 현세의 재난을 막아주고, 기복적 요소가 가미되면서 승가대사의 존격이 격상됐다고 전하고 있다.

당시 중국 승가사상 본거지인 사주 일대에서 활약한 신라 인물로 최치원 선생과 장보고 등이 알려져 있으며, 훗날 최치원 선생 문집을 포함시킨 ‘동문선’에는 ‘옛날 신라 시대 낭적사(狼迹寺)의 중 수태(秀台)가 대사의 거룩한 행적을 익히 듣고, 삼각산(三角山) 남쪽에 좋은 장소를 골라 바위를 뚫어 굴을 만들고, 돌을 조각해 얼굴을 묘사하니 대사의 얼굴이 더욱 우리 나라에 비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강 박사는 “전해지는 기록을 미루어 승가사상의 중심지 사주에서 활동한 최치원 선생이 우리나라에서 승가상 조영사실을 처음 기록했으며, 귀국 후 머물던 상서장과 고운대 인근에 조성된 것을 보면 최치원 선생과 승가상 조영이 깊은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면서 “국가 전반에 걸쳐 왕권쟁탈전과 호족세력들의 반란 등 내우외환으로 힘든 9세기 경, 승가상의 영험은 신라수도 남산에서 승가대사상을 조영할 명분으로 충분하다. 그러므로 문화재 명칭도 경주 남산 불곡석굴승가대사상으로 재검토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 나발표현이 생략돼 있는 경주 남산 정창곡 미륵불
남산 불곡마애여래좌상의 존명에 대해 복식전문가 A 씨는 “불곡마애여래좌상이 일반적인 여래상에서 볼 수 없는 ‘두건’과 가사, 장삼 외 ‘받침옷’이 착용돼 있어 승가상일 가능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불교조각가 B 씨는 “남산 정창곡 미륵불에서 여래 머리에 나발 표현이 없고, 여래의 귀와 옷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처럼 남산 불곡마애여래좌상 역시 두건을 착용한 것이 아닐 수 있다”면서 “전반적으로 여래상 표현이 완벽한 정교함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해, 조각가의 기술 수준이 낮아 복잡한 손 부분 역시 단순화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며, 여래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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