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전이 최부자댁 기운을 지키는 쇠방울이었다고?

시대의 흐름에 파묻힌 ‘놋전’

박근영 기자 / 2023년 11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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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공터로 보이는 곳 일부가 예전의 놋전 거리였다.

교촌을 다녀갈 때마다 아쉽게 지나치는 곳이 있다. 지금은 완전히 그 흔적조차 사라져 버린 ‘놋전거리’다.

놋전거리는 순수한 우리말이고 이것을 한자어로 표현하면 ‘유기공방거리’라고 부르면 될 것이다. 놋그릇이라는 좋은 우리말이 유기(鍮器)라고 어렵게 표현되는 것이 좀 아이러니하고 불만스럽지만 오래도록 이 근처에 놋전거리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놋전거리라는 이름처럼 이곳에 놋그릇 만드는 공방들이 많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흔히 ‘놋전’이라고 불렀던 이곳은 지금의 교촌한옥마을 남서쪽 200여 미터쯤에 있었다. 교촌길을 따라 교촌에서 대릉원쪽으로 가다 다시 왼쪽으로 난 길 안쪽에 있었다. 다행히 지도를 찾아보면 도로명으로 ‘놋전길’이 나와 있어서 아직도 경주시가 행정적으로는 그 길을 기억하는 듯하다.

지금은 몇 채의 집이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놋전에는 적어도 30여 호는 됨직한 집들이 퍼져 있었다. 그 놋전을 지나면 다시 3~40여 호의 인가들이 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교촌일대도 그렇지만 그 많은 집들이 유적지 정비사업으로 전부 헐린 것이다.

내가 최염 선생님을 뵈면서 이 길에 대해 여쭈어본 것은 순전히 그 길을 자주 다닌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놋전을 하루 두 번 이상 지나다녔는데 지날 때마다 왜 그 거리가 놋전이 되었고, 놋전이라는 이름과 달리 놋그릇 만드는 공방이 하나도 없는지 궁금했다. 최부자댁 글을 쓰면서 혹여 그것이 최부자댁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 어느날 문득 그 질문을 해본 것이다. 그런데 최염 선생님 대답에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얻어냈다.



교촌은 소가 엎드려 있는 지형, 소가 떠나면 땅의 기운도 사라지기에 방울을 달아 놓은 것!

“놋전은 당연히 우리 집안과 관련이 컸지요. 우리 집안에서 한 해 소비하는 놋그릇만 해도 놋그릇 가게 몇 개는 먹고 살았을 거라. 그래서 놋그릇 가게들이 번성했던 것이고 거기에 놋전이 있다고 소문나니 사람들이 더 몰려들어 사가면서 가게들도 차츰 더 늘어났던 것이지.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그쪽에 공방들이 즐비했다네!”

최염 선생님 말씀에 귀가 번쩍 띄었다. 놋전이란 거리 이름의 유래를 확인하기도 했고, 그 거리가 왜 생겨났는지를 단박에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조선시대는 유학과 유교가 절대적으로 신봉되던 때였고 그 유학의 정점에는 제례의식이 있었다. 그 제례에는 거의 놋그릇이 쓰였고 그게 아니라도 근대 이전 부자들은 당연한 듯 놋그릇을 늘 썼다. 더구나 교촌의 기와집들 대부분이 최부자댁 식솔들이 가득 차 있었고 그 집집마다 과객들도 끊임없이 드나들 시대, 놋그릇 수요가 많았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감탄하자 최염 선생님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시면서 더욱 기막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런데 왜 하필 놋그릇이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 도자기나 옷 가게, 신발 가게, 모자 가게 등도 충분히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인데 왜 하필 놋그릇이었을까? 내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드러내자 최염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셨다.

“사실은 여기에 묘한 사연이 숨어 있다네!”

최염 선생님 말씀은 그야말로 흥미로웠다.

원래 교촌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소가 엎드려 있는 듯한 형상이란다. 소가 엎드려 있다는 것은 소에게는 가장 태평스런 모습이다. 엎드려 여물이라도 씹고 있다면 그건 소에게는 더 이상 좋은 시간이 아닌 것이다. 띠를 이야기할 때 소띠 사람이 겨울에 태어나면 복이 많다는 민간의 속설도 따지고 보면 겨울에는 소가 일은 하지 않고 평안히 엎드려 여물만 받아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촌이 소가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소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소가 일어나 떠나 버리면 지력이 쇠해지므로 어떻게든 소를 붙잡아 두어야 했다. 소가 일어날 때 방울을 달아두면 짤랑거리는 소리로 인해 소가 일어선 것을 알 수 있고 그에 맞추어 소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부자댁에서 지금의 자리에 일부러 놋전을 열도록 길을 열어주어 사시사철 놋그릇 두드리는 소리, 쇠방울 소리가 들리도록 했었다는 것이다. 실로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그 많았던 놋그릇 공방들은 왜 다 없어졌는지 다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염 선생님은 거기에 대해서도 막힘 없이 말씀해주셨다.

“그건 일제 때 공출로 놋그릇이며 놋숟가락·젓가락들을 전부 빼앗기면서 그렇게 되었지!”

대동아공영 운운하며 전쟁을 일삼았던 일본은 급기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막대한 군비를 늘이게 된다. 그중에서도 놋그릇은 구리와 아연, 주석을 섞어서 만든 것으로 이것은 총알이나 폭탄의 탄피 성분과 거의 비슷하다. 당연히 유기는 공출 대상 1호였고 집집마다 놋그릇이며 놋숟가락 젓가락들이 몽땅 털려 나갔다. 그러니 놋그릇 사는 사람도 생기지 않았고 새로 만드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 것이다. 놋전의 숱한 가게들도 재료를 전부 빼앗긴 채 문을 닫거나 다른 일로 바꾸어야 했다. 이게 일차적으로 놋전이 쇠퇴한 이유였다.

그런 놋전이 해방 이후 다시 활황을 띠기 시작해 60년대 후반까지 옛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놋그릇 수요가 다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나 결국 사양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70년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스텐 그릇과 수저들 때문이었다.



일본의 공출대상 1호인 놋그릇의 수탈로 놋전의 많은 가게들이 전부 문을 닫거나 다른 일로 바꾸었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어머니에게 성가신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놋그릇을 닦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두어 달에 한 번쯤은 정기적으로 놋그릇을 닦으셨다. 양잿물을 풀어놓고 짚으로 양잿물을 찍어 놋그릇을 닦으면 그릇에 핀 푸르스름한 녹들이 시꺼먼 녹물이 되어 녹아 나왔다. 가끔 어머니는 연탄재를 곱게 빻아서 양잿물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참고로 양잿물은 서양에서 온 잿물을 말하는 것이다. 원래 잿물은 콩깍지나 짚을 태운 재를 우려내 만드는데 이게 알카리성을 띠고 있어 전통적으로 세탁이나 세척에 사용되었다. 그러다 서양에서 강력한 세척력을 가진 수산화나트륨이 들어와 잿물을 대신하면서 이것을 녹인 물을 서양의 양(洋) 자를 붙여 양잿물이라 불렀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한눈에 보기에도 광채가 번쩍번쩍 나는 그릇들을 펼쳐 놓으시고는 “이제 그릇 닦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좋아하셨다. 말씀인즉 시내에 스텐 가게가 생겼는데 거기에서 놋그릇과 스텐그릇을 1대1로 맞교환해주었다는 것이다. 그 골칫거리인 놋그릇을 평생 사용해도 광채가 사라지지 않은 현대식 스텐 그릇과 바꾸었으니 얼마나 기쁘셨을까? 어머니는 집안에 있던 놋그릇이란 놋그릇과 온갖 놋수저를 전부 쓸어 모야 스텐 그릇과 맞바꾸어 오신 것이다. 물론 그 이후로 이전처럼 한 달에 한 번씩 양잿물로 놋그릇 닦는 불편을 영원히 면하실 수 있었다.

최염 선생님 말씀도 이와 같은 것이었다. 스텐의 등장으로 더 이상 놋그릇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전국적으로 놋그릇 만드는 장인들이 급격히 사라진 것은 바로 이 스텐 그릇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게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는 그 후 놋그릇의 가치와 스텐 그릇의 가치가 비교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텐은 스테인레스강(stainless steel)의 줄인 말이다. 스테인레스강이란 말 그대로 녹이 없는 강철이다. 주재료는 10.5~11%의 크롬 또는 몰리브덴과 니켈 등을 철과 섞어 만든 금속이다. 강철에 비해 구리가 몇 배나 비싼 재료인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녹이 설지 않는다는 이점 하나로 귀한 놋그릇을 스텐과 맞바꾼 것이다. 2000년대 경제력이 좋아진 이후 놋그릇에서 건강에 좋은 각종 이온이 나온다고 해서 다시 놋그릇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스텐에서 발산되는 광택이 싸구려 티가 난다고 해서 스텐을 쓰는 가게나 가정들이 거의 사라졌다. 만약 이런 가치 판단이 70년대에 알려졌다면 놋전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놋전이 사라지면서 최부자댁 기운도 쇠한 셈이 되었다. 최부자댁 지기를 지키던 소가 떠났고 최부자댁 기운이 서려 있던 교촌은 이제는 관광객과 그들을 만나는 상업화된 반쪽 한옥들이 들어섰다. 한때 놋전 자리에 다시 유기공방을 연다는 설이 나돌았다. 과연 그 자리에 다시 쇠방울 소리가 들리면 최부자댁이 예전의 번영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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