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식 시인의 경주인문학산책] 박목월의 금융조합 시절

박목월의 시 대표하는 청록집
나그네, 윤사월 등 담겨있어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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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문관광단지에 위치한 목월공원의 달 시비.

박목월(1916~1978) 1935년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5월 동부금융조합에 입사했다. 1945년 모교인 계성중학교 교사로 이직할 때까지 20대 청춘시절 대부분을 고향인 경주에서 살았다.

잠시 일본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경주에서의 세월은 그가 다녔던 직장의 근무 기간과 거의 같다. 농협의 전신 금융조합은 1956년 농업은행 설립으로 해산되었다.

목월이 근무할 당시 경주에는 경주금융조합(읍내,현곡,내남), 감포금융조합(감포,양남,양북), 건천금융조합(건천,서면,산내) 동부금융조합(천북,외동,내동) 등 4개의 금융조합이 있었다.

목월이 근무했던 동부금융조합은 당시 행정중심지였던 현재 상공회의소 자리에 있었다. 목월의 동부금융조합 시절은 많은 것을 이루어낸 시기였다.

1937년 9월 처음으로 투고한 작품이 선정되어 받은 원고료 5원은 쌀 한가마보다 많은 액수였다. 1938년에는 결혼을 했고, 맏이가 태어나던 그해 1939년에는《문장》지에 추천 완료되어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등단 시절 목월의 주소지는 ‘경북 경주군 서면 건천리’였다. 건천에서 경주까지 아침, 저녁 자전거를 타고 통근을 하다가 나중에는 시내에 방을 얻어 생활했다.


전표 뒷면에 시를 쓰다

목월은 업무를 마치면 반월성으로 오릉으로, 남산 기슭으로, 분황사로 돌아다녔지만 벗할 것이라고는 고도의 산천과 하늘밖에 없었다.

왕릉 위에서 달을 보고, 깨어진 기왓조각을 툭툭 차며 길을 걷는 것, 밤이면 램프 아래에서 책을 읽는 것, 아무 주막에 가서 술을 마시는 것, 그 외는 주판알을 튕기는 금융기관 직원이었다. 스무 살 꽃 같은 나이의 풀 수 없는 고독이 안으로 응결되어 시로 터져 나왔다.

목월의 초기작품들은 고도라는 적막한 공간과 스무 살 청년의 쓸쓸한 가슴이 만나 태어났다. 목월은 시를 쓰는 것, 시인이 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소망이 없었다. 그는 업무시간 자투리 시간에도 시를 썼다.



냇사 애달픈 꿈을 꾸는 사람,
냇사 어리석은 꿈꾸는 사람,

밤마다 홀로
눈물로 가는 바위가 있기로
기인 한밤을
눈물로 가는 바위가 있기로

어느날에사
어둡고 아득한 바위에
절로 임과 하늘이 비치리오



이 시는 목월이 동부금융조합 근무 당시 전표 뒷장에 쓴「님」이라는 작품이다.
1942년 어느 가을 이 작품을 쓰고 경주군청에 근무하는 이기현 시인을 만나 시를 읽어주며 공감하고 소통했지만, 어디에다 발표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다. 시인이 되고자 했으나 그의 작품들은 땅속에 묻어두며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문학적 소통이 부족했던 그가 자주 들린 곳이 동리의 중형이 하던 가게였다. 입사 후 맨 먼저 찾아가 만난 사람이 김동리였다. 동리는 경신학교를 중퇴하고 경주에 잠시 내려와 있던 무렵이었다.

세 살 많은 그는 이미 신춘문예에「화랑의 후예」가 당선된 신진 작가였다.

동리는 목월에게 소주 몇 잔 권한 뒤 미추왕릉 잔디밭에 앉아 많은 문학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한국문학을 대표할 두 거장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이후 동리는 맏형 김범부가 있는 사천 다솔사로 떠나버려 교류가 계속되진 않았지만, 두 청년은 시와 소설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어 한국 문단을 이끌었다.


↑↑ 1946년 을유문화사 발간 청록집 초판본(사진출처: 동리목월 문학관).


동부금융조합 관할구역의 시편들

목월의 시에는 근무지 관할지역에서 태어난 작품들이 더러 있다.「산이 날 에워싸고」는 외동면 녹동리를 다녀오다 산기슭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잠시 쉬는 시간에 얻은 시이다.

경주에서 외동 녹동리까지는 대략 7~80리 먼 길이다. 울퉁불퉁 자갈이 깔린 먼지 날리는 신작로에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던 목월을 떠올려 본다.

길이 멀어서일까? 황룡동 구장(區長) 집에서 하룻밤 유하며 쓴「구황룡」이라는 제목의 시는 ‘주먹만한 다래가 익는다’로 시작해 ‘다래가 거멓게 익어 제물에 이운다’로 끝맺는다. 골이 깊고 인적이 드물다는 표현인 듯하다. 토함산자락 황룡동 또한 내동면 지역이다.

짧은 시「달」은 외동면과 내동면이 같이 등장한다. 1955년 행정구역이 변경되기 전까지 불국사 지역과 덕동, 암곡, 황룡을 포함한 보문단지 일대가 모두 내동면이었다. 보문단지 목월공원에 시비「달」이 서 있는 것도 우연만은 아닌,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에 시비가 있는 셈이다. 이외에도 불국사와 석굴암 대불 등을 노래한 시들도 여러 편 있다.


배꽃 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경주군 내동면(慶州郡 內東面)
혹(或)은 외동면(外東面)
불국사(佛國寺) 터를 잡은
그 언저리로

배꽃 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달」전문



가슴이 설레던 기계와 청하

목월은 1938년 5월 충남 공주에서 결혼하기 전까지 연애 이야기가 재미있게 전해진다. 어느 날 기차 안에서 처음 보았던 아름다운 그녀, 어디 사는지 묻고 싶었던 그녀, 우연히 불국사에서 다시 만난 그녀, 그곳에 그녀를 데리고 온 사람은 금융조합에 같이 근무한 적 있던 기계금융조합에 근무하는 그녀의 형부였다. 형부 집에 머물던 공주 처녀 유익순을 만나러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달려갔던 곳 그곳에서「기계장날」이란 시가 태어났으며 시비도 세워져 있다.


일부 뜻있는 문인들「기계장날」이라는 구수한 사투리로 엮은 시극을 최근까지 공연하기도 했다. 목월의 향기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뜻깊은 일이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맞선보러 갔던 청하, 아름다운 그곳의 처녀 천희는 칠빛 머리카락에 설레는 밤바다 피리 소리로, 인연의 수심(水深)속에 흔들리는 해초 잎사귀로, 아름다운 인어의 모습으로 시 속에서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살아있는 듯하다. 청하라는 이름만큼이나 청하의 여인도 이쁠 것만 같다. 시를 쓴 시인도, 선을 봤던 청하의 여인은 존재하지 않아도「청하」라는 아름다운 시는 여전히 푸르게 살고 있다.


조지훈 경주에 오다

경주에서 만난 문인들은 김동리, 이기현, 소설가 이순보 등 경주 출신 이외에 윤석중 아동문학가와 조지훈 시인이 있다. 윤석중은 동시로 맺어진 인연으로 목월의 집에서 하루 저녁을 묵고 갔다. 조지훈은《문장》지가 맺어준 인연이었다. 나이는 목월이 많았고 등단은 지훈이 먼저였다.

1942년 지훈과 목월의 역사적 첫 만남의 현장 건천역도 폐역으로 사라져 안타까울 따름이다.「완화삼」과「나그네」의 탄생은 우연 아닌 필연으로 이어진 경주에서의 보름간이었다. 월성여관에 여장을 푼 첫날 새벽까지 문학 이야기로 밤을 꼬박 새웠다. 이 시기 서로 소통한 두 사람의 흔적을 찾아본다.

1942년 목월은 “나는 지방의 조그만 금융기관에 은신하여 낮에는 공출미의 대금 지불을 위하여 주판알을 튕기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시에 대한 정열과 집념은 끈질기게 나의 내면에 타오르고 있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조지훈은 그때의 정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불국사 나무 그늘에서 나눈 찬술에 취하여 떨리는 봄, 옷을 외투로 덮어 주던 목월의 체온도 새로이 생각난다. 그리하여 나는 보름 동안을 경주에서 머물렀고, 옥산서원의 독락당에 눕기도 하였으며「완화삼」이란 졸시를 목월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목월의 시「나그네」는「완화삼」에 화답하여 보내준 시이다. 붓을 꺾고 떠돌며 살던 5년간을 우리는 이렇게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하소연하며 해방을 맞았던 것이다”

명작이 명작을 낳았던 경주에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시작에 불과했다.

낭만시의 최고의 걸작「나그네」와「완화삼」도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의 인연으로 만들어진 합작품 같은 생각마저 든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의 법칙이랄까?


경주에서 태어난 최고의 작품들

경주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목월은 삶에 있어 획기적인 일들이 많았다. 문단 데뷔, 동리와 조지훈과의 만남, 좋아하던 여인과의 결혼, 장남의 태어남까지.....

조국 해방과 더불어 목월은 모교의 초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대구에서《죽순》의 이윤수 등과 교류하다 3년 뒤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1946년 6월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각자 15편씩을 모아 엮는『청록집』을 발간했다. 모두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써두었다가 마루 밑에 묻어 놓았던 작품들이었다.

우리나라 최고 시집이라 할 수 있는『청록집』에 실린 「나그네」,「윤사월」,「청노루」,「산도화」,「춘일」,「귀밑 사마귀」,「가을 어스름」,「산이 날 에워싸고」등은 목월의 시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이후에도 많은 작품을 썼지만, 오늘날까지 널리 애송되는 최고의 시들은 모두 경주에서 쓴 초기 작품들이다. 눈에 보이는 곳, 발걸음 닿는 곳곳이 바로 시가 태어난 장소이기 더욱이 경주를 사랑할 일이다.

목월 스스로 이십 대를 보낸 경주를 천애의 유형지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이는 문학적 소통과 공감할 사람이 부족했다는 뜻일 것이다. 외롭고 고독했던 시간들이야말로 시가 태어난 원동력이었음을 시와 에세이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목월은 누구보다 고향 경주를 사랑한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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