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고도의 복원·정비·활용-공주시편

이상욱 기자 / 2024년 10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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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 경주의 핵심유적에 대한 정비·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 문화유산을 활용한 다양한 관광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크다. 이번 호에서는 국내 고도 중 하나인 공주시의 문화유산 복원·정비 현황과 활용 정책 등을 살펴본다. 본보 기자의 현지 취재는 지난 8월 29일 진행됐다. /편집자주

백제의 대표적 문화유산은 공주, 부여, 익산 등 3개 도시에 걸쳐 있는 백제역사유적지구 8곳으로 크게 압축된다. 백제 후기(475~660년) 문화를 대표하는 왕성, 사찰, 왕릉, 외곽성 등 8개 문화유산으로, 지난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공주의 공산성, 무령왕릉과 왕릉원,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나성, 왕릉원, 그리고 익산의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 등 8곳이다. 이들 문화유산을 통해 1400여년 전 찬란했던 백제문화와 백제가 동아시아 교류의 중심으로 활약한 국제성도 엿볼 수 있었다.

↑↑ 공주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 전경. 이곳에서는 금강과 공주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4대 문 모두 복원 완료 ‘공주 공산성’

공주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중 하나인 공산성은 웅진백제시기(475~538년)를 대표하는 왕성이다. 공주시에 따르면 공산성은 백제시대에는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 인조 이후 석성으로 개축했다. 백제 때는 웅진성, 고려시대 공주산성·공산성,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렸다. 현재는 동쪽 735m 구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석성이다.

공산성은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475년) 후 성왕 16년(538년)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64년간 백제의 왕성이었다. 북쪽으로 공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총 2660m 길이의 성벽을 쌓은 공산성은 금강을 접한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산성 내 왕궁지와 왕궁부속시설지 등에서는 10칸, 20칸 등의 큰 건물터와 연못터가 확인됐고, 백제의 연꽃무늬 수막새를 비롯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됐다. 특히 공산성의 4대 문은 모두 복원됐다. 동쪽에는 영동루, 남쪽에는 진남루, 북쪽에는 공북루가 있으며, 서쪽에는 현재 공산성 출입문으로 사용되는 금서루다.

그중 터만 남아 있던 영동루와 금서루는 공산지(公山誌)의 기록을 근거로 1993년 복원을 완료했다. 진남루와 공북루는 조선시대 석성으로 다시 쌓으면서 건립한 문으로, 진남루는 1971년 모두 해체하고 원래대로 복원했고, 공북루는 1964년 보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지난 2021년 9월 18일 공산성 금서루 앞 연문광장에서 열린 무령왕릉 동상 제막식 모습. <제공 공주시>


총 7기 복원된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백제시대 왕과 왕족의 무덤이다. 현재 무령왕릉을 포함해 왕릉원 1~6호분까지 총 7기가 복원됐다. 1~5호분은 돌로 방과 통로를 만들고 흙을 덮어 만든 굴식돌방무덤이며, 6호분과 무령왕릉은 벽돌을 터널 형태로 쌓아 만든 벽돌무덤이다. 무령왕릉은 백제 시대 제25대 왕과 왕비를 합장한 무덤으로, 1971년 발굴 당시 1500년 전의 화려한 모습이 온전히 남아 있는 상태로 발굴돼 세간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 공주 무령왕릉 전경. <제공 국가유산청>


문화유산 활용 관광프로그램은?

공산성 금서루에는 대표적인 상설 문화관광 프로그램인 ‘웅진성 수문병 근무교대식’이 매년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공주시에 따르면 백제 왕성 성곽을 지키는 수문병 모습을 재현하는 것으로, 올해는 혹서기를 제외하고 매주 토·일요일과 공휴일마다 총 5회씩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매회 1000명 이상 관람객들이 관람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 활용 관광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 공주시의 설명이다.

공산성 서문인 금서루 앞 회전 교차로에 지난 2021년 9월 모습을 드러낸 무령왕 동상도 눈길을 끈다. 무령왕 동상은 높이 9.47m에 무령왕이 중국(양나라)에 ‘갱위강국’(更爲强國) 선포 국서를 보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좌대 안에 구동부를 설치해 동상이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무령왕릉 발굴 50년, 갱위강국 선포 15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무령왕 동상을 건립했다. 회전할 수 있는 동상은 바라보는 방향마다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서쪽을 바라보면 무령왕릉이 있고, 북쪽은 고구려를 격파하고 갱위강국을 선포한 대왕의 위엄, 남쪽은 백성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군주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공주시 관계자는 “무령왕은 백제의 가장 위대한 준주이자 공주의 자긍심 그 자체이다”며 “무령왕 동상은 백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역사도시로서 공주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 상징물”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공주시는 다양한 관광프로그램을 개발·시행하고 있다. 공산성과 무령왕릉 사이를 도보로 이동하며 백미고을, 회랑, 황새바위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지난 2022년부터 추진되고 있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길로 유명한 ‘한옥마을 둘레길’은 공산성과 국립공주박물관, 고마나루 솔밭길 등을 거닐며 백제의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 지난 2022년 공주시 금강신관공원에서 개최된 백제문화제 야간 전경. <제공 공주시>


백제 문화유산 활용 백미 ‘백제문화제’

백제의 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프로그램의 백미로 손꼽히는 축제는 올해 제70회를 맞은 ‘백제문화제’다.

백제문화제는 백제의 왕도인 충남 공주시와 부여군에서 같은 일정으로 각각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달 28일부터 10월 6일까지 9일간 공주시에서는 금강신관공원과 공산성, 제민천 일원에서 열렸다. 부여군은 백제문화단지, 구드래, 정림사지 일원에서 개최됐다.

70년 전통을 지닌 백제문화제가 백제역사유적지구와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축제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많은 변화가 뒤따랐다고 한다.

행사를 주관하는 (재)백제문화제재단에 따르면 백제문화제는 지난 1955년 부여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아 백제대제집행위원회를 구성해 ‘백제대제’를 거행하며 시작됐다. 11회째인 1965년까지는 부여군이 단독 개최해왔고, 행사 주체가 충청남도로 이양된 1966년부터는 행사 규모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공주시가 백제문화제에 참여해 부여군과 동시에 진행했고, 부수적인 문화행사가 증가했다.

1975년(제21회)부터 4년간은 또 다른 변화를 시도했다. 백제문화제가 공주와 부여 이외에 대전에까지 확대 개최한 것. 충남 도내 전 지역으로 백제문화제의 열기를 높이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백제의 역사성과 상징성이 부족했던 대전의 백제문화제는 전시 위주의 행사로 진행됐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1978년을 마지막으로 대전 개최방식은 중단됐다. 이후 1979년부터 2006년까지는 홀수년에 공주, 짝수년에는 부여에서 대제(大祭)와 소제(小祭)의 개념으로 번갈아 개최했다.

백제문화제가 도약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지난 2007년부터다. 당시 ‘통합개최’를 주관하는 조직으로 재단법인 백제문화제추진위원회(현 백제문화제재단)를 설립해 관주도형에서 민간주도형 축제로 전환했다. 이 시기에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확대되면서 새로운 발전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 재단 측의 설명이다. 특히 2010년(56회) 9월 18일부터 10월 17일까지 30일간 정부공인 국제행사로 열렸던 ‘2010세계대백제전’은 전국에서 가장 성공한 축제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다.

공주시에 따르면 당시 369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했고, 2499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뒀다. 또 백제문화제는 2015년 7월 8일 백제역사유적지구가 국내에서 12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고,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널리 각인시키는 축제로 성장해오고 있다.

공주시 관계자는 “백제문화제는 축제를 넘어 백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자긍심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통해 세계적인 축제로 도약하도록 민관이 힘을 모아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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