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문화 역사문화 절정 이룬 사비시대 ‘한 눈에’

재현한 백제문화단지, 지역 관광 활성화 ‘한 몫’
사비성터인 관북리유적 2038년까지 발굴 진행

이상욱 기자 / 2024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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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정림사지 내 정림사지오층석탑 전경.

백제는 우리나라 고대국가 중 하나다. 기원전 18년 건국돼 660년 멸망할 때까지 약 700년 동안 31명의 왕이 재위했다. 한성(서울)에서 웅진(공주)으로 천도해 63년(475~538),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해 약 122년(538~660년)을 영위하는 등 두 차례 천도했다. 부여군은 웅진성에서 천도한 백제 왕조의 마지막 수도 사비성이 있던 곳이다.

↑↑ 부여 관북리유적 중 한 곳의 발굴 후 정비된 모습.


관북리유적서 사비성 실체 하나씩 베일 벗어

사비성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는 부여 관북리유적은 지난 40여년 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대형건물지(35m×18.5m)를 비롯한 왕궁 주요 시설과 토성 등이 확인됐다.

1983년 9월 충남도 기념물 제43호 전백제왕궁지(傳百濟王宮址)로 지정돼 있다가 2001년 2월 사적으로 승격됐다. 지난 2015년 7월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1982년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해 1983년 방형석축연지, 1988년 ‘북사’라는 명문이 새겨진 토기 발견, 1992년 백제시대 도로유적과 배수시설 등이 확인됐다. 특히 중심건물로 추정되는 대형건물지는 정전건물로 왕궁의 일부 시설인 것으로 보고 있다.

부여국립문화유산연구소와 부여군은 관북리유적 발굴 1단계 사업을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완료했다. 올해부터 2028년까지 2단계, 2038년까지 3단계 사업으로 나눠 발굴을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 관북리유적 16차 발굴지에서 백제 멸망 직전 마지막 전투 흔적으로 여겨진 칠피갑옷들과 함께 왕이 정무·의례를 주관하던 건물터와 연화문전 등이 확인됐다. 발굴된 건물 규모는 남북 방향으로 60m에 이르는데, 주변에선 폭 8~9m의 도로와 교차로, 상수도 유적도 발견됐다.

이에 따라 연구소는 2028년 2단계 발굴 사업을 완료하면 사비왕궁의 밑그림이 그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왕이 정사를 처리하던 정전 발굴이 머지 않았음을 시사한 것. 연구소측은 정전이 확인되고 왕의 사적 공간인 내조가 발굴되면 6
세기 중반 이래의 백제 관직제도인 22부사의 실체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북리유적 뒤쪽은 사비시대 왕궁의 배후산성인 ‘부소산성’이다. 평소에는 왕궁의 후원 역할을 하다가 전쟁 등으로 위급할 때는 방어시설로 이용된 중요한 산성이다. 지금도 백제시대 축조했던 성벽(토성)을 확인할 수 있다. 서쪽으로 백마강을 끼고 있는 부소산성 내에는 낙화암과 고란사 등 백제의 전설과 흔적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백제문화단지 내 재현된 능사와 오층목탑 전경.


완벽한 균형미·비례미 자랑 ‘부여 정림사지’

세계유산인 정림사지는 사비도성 중앙에 위치한 절터다. 이곳에는 백제인들의 뛰어난 감성과 기술을 보여주는 국보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높이 8.9m의 석탑은 탑의 원형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다. 탑의 구조적 특징과 함께 완벽한 균형미와 비례미를 보여 주고 있다. 다만 역사의 아픔도 탑신에 남아 있다. 백제 사비성을 침공한 당라나 장수 소정방이 탑의 1층 탑신에 승전기공문인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을 새겨놓았다. 이 때문에 과거 정림사지오층석탑은 평제탑(平濟塔)으로 불리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 발굴조사에서 ‘태평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 戊辰 定林寺 大藏唐草)’라고 쓰여진 명문기와가 출토된 이후로 절터는 정림사지, 탑은 정림사지오층석탑으로 불리우게 됐다.

이외에도 부여군에는 사비도성 동쪽에 위치한 성벽인 ‘부여 나성’과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 있는 ‘부여 왕릉원’이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 백제문화단지 내 재현된 사비궁 가운데 천정전 모습.


복원에 준하는 재현 ‘백제문화단지’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백제문화단지’가 지난 2010년 9월 문을 열면서 당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에 위치한 이 단지는 1993년 백제문화권 특정지역으로 지정된 지 17년, 1998년 기공식 이후 12년 만에 이뤄진 대역사로 평가받고 있다.

329만4000㎡의 터에 역사재현촌 등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설은 물론 위락, 쇼핑, 숙박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투입 예산만 8077억원(국비 1709억원, 지방비 2145억원, 민자 4223억원)이다. 이 단지는 크게 △역사재현촌(148만4000㎡) △연구교육촌(16만㎡) △민자구역(롯데리조트·165만㎡) 등으로 나뉜다.

역사재현촌에는 왕궁과 능사(陵寺), 개국촌(開國村), 민속촌(民俗村), 군사통신촌(軍事通信村), 장제묘지촌(葬祭墓地村), 백제역사문화관 등이 들어섰다. 연구교육촌에는 2000년 3월 개교한 한국전통문화학교가 입주해 있다.

특히 사비궁은 백제역사문화의 절정을 이룬 사비시대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했다.
궁궐의 가장 중심이 되는 천정전과 동쪽의 문사전, 서쪽의 무덕전 등이 회랑으로 둘러싸인 형태로 모두 14개동으로 이뤄졌다.

백제의 사찰 능사는 부여 능산리사지를 원형 그대로 재현했다. 또 높이 38m에 달하는 능사 오층 목탑은 국내 최초로 재현된 백제시대 목탑이다.

롯데그룹이 투자하는 민자구역에는 객실 322개를 갖춘 콘도미니엄과 아울렛, 골프장(18홀)이 조성돼있다. 당초 롯데그룹이 2017년까지 조성할 계획이었던 스파빌리지, 에코파크 등의 시설은 중국과의 문제와 코로나19 펜데믹 등으로 미뤄졌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충남도와 롯데그룹 간의 협의를 통해 1200억원 규모의 잔여 민자사업 투자계획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단지 내 루지, 미디어아트갤러리, 한옥빌리지, 글램핑장 등을 2026년 완공 목표로 추진 중이다. 충남도에 따르면 백제문화단지는 연간 25만~29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다. 또 민자시설인 콘도미니엄과 아울렛 등의 방문객은 연간 15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어 부여지역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 이강복 충남도 학예연구사.


[인터뷰] 이강복 충남도 학예연구사
“백제문화단지 복원에 준하는 재현으로 보편적 가치 높여”

“백제문화단지는 철저한 고증연구를 통해 백제 역사문화의 절정을 이룬 사비시대 왕궁을 복원에 가깝게 재현한 역사와 문화의 복합공간이다”

이강복 충남도 문화유산과 학예연구사는 백제문화단지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백제문화단지의 착공부터 현재까지 30년 가까이 근무하며 지켜온 산증인이기도 하다. 백제문화단지를 재현하면서 백제 시대 건축양식을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런 논쟁에 대해 그는 “490회 이상의 전문가 자문을 거쳐 백제의 유구 및 유물에 대한 고증연구를 진행했다”면서 “당시 수많았던 논쟁이 지금의 단지 재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조성 과정에서도 모든 건축물에 대해 고증을 거쳤고, 대목장 등 장인들이 투입돼 전통방식으로 건축했다”면서 “당시 참여했던 장인들을 비롯해 자문 및 고증팀들이 경주 월정교 복원 사업에도 투입됐다”고 밝혔다.

백제문화단지 조성 예산과 관련해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약으로 시작해 이명박 전 대통령 때 준공한 국책사업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며 “국가사업으로 추진해 예산 지원의 연속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지 운영과 관련해 “준공 직후에는 충남도에서 직영해오다 2018년부터 민간위탁방식으로 전환됐다”면서 “현재 운영은 롯데그룹, 관리는 충남도에서 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어 시설 개선·보수가 용이하고, 예산면에서도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문화유산의 복원에 대해서는 “보존이냐 복원이냐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역사성과 진실성이 보장되면 복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며 “복원 후 추후 역사적인 사실이 더 밝혀지면 그때 수정해 나가면 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백제문화단지 준공 이후 국내에서 문화유산 복원에 대한 개념도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단지를 조성하면서 고증연구와 건축물 축조한 기술 등 쌓인 경험은 복원 및 재현 사업의 기본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면서 “고대시대 건축물들에 대한 복원이 단지 재현 이후 충분히 가능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변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제문화단지는 현재도 복잡하게 평가되고 있지만 백제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민간시설에서 휴양도 할 수 있다”면서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결국 많은 사람들이 공유·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편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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