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한자어를 몰라서는 안 된다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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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미 경주 아줌마
아줌마는 고향이 제주도다. 그래서 부모님을 뵈러 비행기를 자주 타게 된다. 가족과 함께 갈 때도 있지만 아줌마 혼자 급히 다녀와야 할 때도 있다. 비행기는 비행시간은 적지만 공항에 가고 수속하고 대기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제법 길다. 그래서 아줌마는 항상 책을 챙긴다.

병원에 있는 엄마를 만나고 다시 집으로 오는 길, 제주 공항은 사람들이 언제나 많기에 서둘러야 한다. 생각보다 빨리 진행이 되어 한 시간 정도 공항 대기실에 있어야 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고 읽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같은 곳 읽기를 여러 번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중장년의 세 남자가 아내 없이 처음 하는 해외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기실 곳곳 많은 의자에 사람들이 모두 앉았다. 그런데 말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대부분은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만 본다. 부부도, 연인도, 친구도, 가족도 모두 각자의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을 뿐이다. 아내 없이 떠나는 세 유부남만 인간으로 느껴졌다. 아줌마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책을 보는 사람은 나뿐인가?’

지난해 성인의 종합독서율은 43.0%로, 10명 가운데 약 6명이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독서량은 3.9권으로 하루 독서 시간은 18.5분이다. 종합독서량에는 전자책과 오디오북도 포함이다. 종이책만 기준으로 한다면 독서율이나 독서량은 더 내려갈 것이다. 게다가 더욱 큰 문제는 일 년에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은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줌마는 걱정이 크다.

우리나라는 훌륭하고 익히기 쉬운 한글 덕택에 문맹률이 낮다. 거의 모든 국민이 한글을 안다. 그러나 실질 문맹률은 높다.

무슨 소리냐구?

글을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안 믿기는가? 아줌마도 처음에는 안 믿었다. 그러나 중학생 아이들이 한 단락의 글을 읽었지만, 그 단락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교과서마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카더라 통신의 이야기가 아니다. EBS에서 다룬 다큐멘터리의 내용이다.

독서율이 낮아지고 있는 것은, 책을 읽고 싶어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못 읽는 것은 아닐까?

‘심심한 사과’ 사건을 아는가? 혼숙을 혼자 숙박으로 알고, 우천시 취소는 어느 도시냐고 되묻는다.

한글이 사용되기 전에 우리는 오랫동안 한자 문화권에 있었다. 오랜 시간 사용되었으니 이미 한자는 우리 언어문화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심심한, 혼숙, 우천은 모두 한자다.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순 한글만 이용해서 글을 쓸 수 없다. 한 단락이라도 채울 수 있을까? 억지로 쓸 수는 있겠지만 매끄러운 글을 쓰는 것은 힘들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또 수능에 한자를 넣으라는 소리냐고 따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것은 입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언어를 익혀야 한다. 한글만 알아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자를 익숙하게 읽고 써야 한다는 소리도 아니다. 아줌마도 한자는 잘 모른다. 그러나 심심, 혼숙, 우천처럼 한자의 뜻이 담긴 한글 소리는 안다. 심심한 사과의 심심은 한자로 쓰고 읽을 수는 없지만, 한자 뜻이 있는 단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심할 심(甚), 깊을 심(深)). 혼숙과 우천도 마찬가지다. 이런 단어들이 한글에는 엄청 많다. 한글이 대중화되기 전부터 쓰였던 단어들이기에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한자의 중요성이 떨어진 지금, 우리 아이들이 한자를 생활에서 접하기는 점점 어려워졌고 한글과 한자가 분리되었다.

아줌마는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 한자를 익히게 한다. 한자 급수를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 한글이 있기 전에 한자 문화에서 발전한 우리 언어는 한자어가 많다. 당연히 한자를 모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말속에 숨겨진 한자어들과 순우리말이지만 아이들이 헷갈리는 언어들을 찾아서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보자. 열두 달 중에 받침 없이 읽어야 하는 유월과 시월은 한자 숫자와 한글의 발음 유연성을 보여준다. 우리 말에서 한자어와 외래어, 순우리말을 구분하는 게임도 재밌다. 한일합방 이후 일본어의 잔재를 찾는 것도, 아이들에게 역사와 언어를 같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다시 말하지만, 한자 급수를 따거나 한자 학원에 다니라는 소리가 아니다.

한글 속에 한자어는 당연하다. 지난 역사의 결과물이다. 한글 속에 담긴 한자어를 찾고 그런 단어들로 인해 파생된 단어들을 연결하는 재미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면 된다.

예를 들면 바람풍을 알게 되면 “풍력발전소, 선풍기의 풍도 바람풍이야?” 하며 풍자가 들어있는 단어들을 나열한다. 소리는 같지만, 뜻이 다른 단어들이 섞이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 아이들은 또 발전한다.

문해력은 학원에 다니면서 익히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익혀야 한다. 그리고 그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한자어를 몰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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