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4세가 만든 발레학교가 지금까지도?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11월 14일
공유 / URL복사
↑↑ 이동우
울주문화예술회관 관장
발레는 원래 유럽 귀족사회에서 사교무용으로 기능하던 오락물이었다. 최초의 발레는 13세기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무용이 연극의 막간에 독립된 무언극으로 상연되면서 나중에 발레로 발전한 것이다. 최초의 발레 원형은 1489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갈레츠오 공과 아라공의 이사벨라 공주의 결혼식에 있었던 막간 희극이다. 요리가 나오는 사이에 그 요리에서 연유된 춤을 추었다.

당시 프랑스 궁정은 이탈리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발레 역시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메디치 가문의 딸인 카테리나 데 메디치(Caterina de’Medici, 1519-1589)가 프랑스로 출가하여 앙리 2세의 왕비가 된 것이다. 그녀 스스로 무용 애호가이자 무용의 명수였다. 자연스레 프랑스에 이탈리아 궁정 발레가 전파되었다.

발레는 프랑스와 궁합이 잘 맞았다. 역대 국왕의 사랑을 받던 궁정 발레는 루이 14세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짐이 곧 국가다!” 라고 말하며 절대군주의 상징이 된 루이 14세는 발레의 대가였다. 1652년부터 1670년까지의 18년 동안에 27편의 발레극에 직접 출연하였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발레극은 ‘밤의 발레(Ballet de la Nuit)’였는데 그는 이 공연에서 태양왕 아폴론의 역할을 맡았다. 그가 태양왕이라 불린 이유가 바로 이 공연 때문이다.


루이 14세는 발레가 귀족들의 아마추어적인 기예에 머물길 원치 않았다. 그래서 1661년 파리에 왕립무용학교를 설립했다. 무용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이 학교는 1672년에 음악을 추가하여 왕립음악무용학교가 되었는데,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는 국립음악무용학교가 되었다. 파리 오페라발레극장의 기원이기도 하다.

왕립음악무용학교의 교장에는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1687)가 취임했고, 전임 무용교사에는 보샹(Pierre Beauchamp, 1631-1705)이 임명되었다. 륄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무용가로 프랑스 오페라의 창시자라 불릴 정도로 루이 14세의 핵심적인 예술 참모였다. 한편 보샹은 당시 시대를 풍미하던 뛰어난 무용가로, 오늘날에도 발레의 기본기에 해당하는 ‘다리의 다섯 가지 포지션’을 처음 만든 사람이다.

루이 14세가 만든 학교에는 귀족의 자제뿐만 아니라 평민이라도 재능있는 자가 남녀를 불문하고 입학할 수 있었다. 이는 대단한 파격이었다. 게다가 보샹의 탁월한 교육훈련으로 말미암아 실력 있는 무용수들이 줄줄이 배출되었다. 이젠 이들의 공연을 궁정 밖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궁정발레의 시대가 저물고 극장발레의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이는 ‘과(過)’가 많았던 절대군주 루이 14세의 큰 ‘공(功)’임에 틀림없다.


X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