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긴다는 것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11월 21일
공유 / URL복사
물에 잠긴다는 것

                                                     박상봉



아이들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
물에 잠긴 세월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 귀는 아이들 곁을 떠나지 못해
저 바다 깊은 물속에 산다

물에 빠져 귀를 잃고 사람의 말귀
알아듣지 못한 채 그냥 살았어

물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가
겨우 구조된 아이는
반 귀머거리가 되어 말도 잊어버리고

바다 깊은 물속에 두고 온 귀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는데

물에 잠긴 귀가 듣는 소리는
아이들 우는 소리만 들린다



작은 그늘로 큰 그늘을 보듬어 안는 귀

↑↑ 손진은 시인
이 작품은 자신의 개인적인 불행을 통하여 2014년 세월호 사건으로 죽은 250여명의 어린 영혼을 애도하는 시로 읽힌다.

“아이들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물에 잠긴 세월이 떠오르지 않는다”에서 ‘물에 잠긴 세월’이라는 말은, ‘물에 잠긴 그간의 시간’과 ‘세월호’라는 배 이름이 함께 내재된 이중적 발화로 읽히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 ‘나’는 “물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가/겨우 구조된 아이”로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체험을 가진다.

“물에 잠긴 세월”은 그대로 시인 자신의 그간의 세월이 되는 절묘함이 있다.

그 세월을 시인은 “귀를 잃고 사람의 말귀/알아듣지 못한 채 그냥 살았”다. 그것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지만, ‘귀’와 ‘말귀’의 이 말놀이 유머는 “바다 깊은 물속에 두고 온 귀는/아직 찾지 못했다”는 깊이로 연결된다.

시인은 “반 귀머거리가 되어 말도 잊어버리”는 끈질긴 고통의 시간을 살아왔지만, 그 긴 세월 동안 자신의 귀가 “저 바다 깊은 물속에” 살면서 “아이들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는 자신의 개인적 불행이 타자의 더 큰 불행을 만나면서 시인의 존재가 확장되는 지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시의 결구 “물에 잠긴 귀가 듣는 소리는 /아이들 우는 소리만 들린다”는 감각적인 이미지와 감정의 흐름을 전달하는 의도적 표현이다.

굳이 그렇게 표현한 것은 물속에 잠긴 귀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거나 왜곡되는 상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 구절은 ‘이명’ 상태의 감각도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주체로 놓고, ‘우는’은 현재 분사형으로 감정적인 느낌을 강하게 전달하여 ‘들린다’는 수동태로 그 소리가 귀에 전달되는 상태를 강조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은 아직도 계속 울고 있고, 내 귀는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애도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 체험과 공동체적 경험이 만나 새로운 시야와 깊이를 열어놓은 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X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