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트라우마 컨트롤타워 마련 시급

전문가들, “4명 중 1명 꼴 심각한 후유증 앓아” 경고

이상욱 기자 / 2016년 10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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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 지진 이후 지난 4일까지 459차례 여진이 발생하면서 지진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심리치료에 대한 정부차원의 근본대책 마련은 역주행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가 국가적인 재난 발생 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할 수 있도록 추진한 ‘국립중앙트라우마센터’ 건립 사업이 백지화 된 가운데 현재로서는 재추진 의지도 없기 때문.

경주시보건소에 따르면 지난 9월 17일부터 30일까지 지진 트라우마를 호소해 상담한 사례는 2681건에 이른다. 주로 경주시 지진피해 심리지원단 등의 방문상담이 2345건으로 가장 많았다. 주민이 보건소를 찾은 경우는 128건, 전화상담 130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78건으로 나타났다.

이들 심리상담 주민들 가운데 2%가 심리상태가 매우 불안정한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병원과 연계해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또 이보다 나은 경위험군 18%, 정상군은 80%로 나타나 보건소는 이들을 대상으로 개별·집단프로그램을 개발해 심리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재난 속에서 위기상황 등을 경험한 후 심리적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이하 PTSD)로 후유증을 앓는 경우는 4명 중 1명꼴로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트라우마 증상은 곧바로 나타나는 사람도 있지만 1주일, 1달, 1년 후, 심지어는 5~10년 후에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흔하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지난달 30일 현재 심리지원을 받은 2861명의 주민 이외에도 잠재된 트라우마 위험군이 많다는 의미여서 현장응급처치법의 보급과 함께 장기적인 대책마련도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로 잘 알려진 조벽 교수는 지난 4일 경주시보건소가 주최한 제21회 치유캠프 ‘9.12지진 트라우마 심리응급법’이란 주제 강연에서 ‘감정응급처치법’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외부에서는 경주 지진이 일단 인명피해가 없으니까 한편으로 굉장히 다행스러운데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르고 있다”면서 “한번 지진을 경험한 사람들은 여진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여진이 있을 때마다 마음 조아리고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재난이 발생해도 모든 사람에게서 PTSD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그런 모습 보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한다”면서 “심리적 상태가 불안정해 도움이 필요한 경우는 20% 정도이며, 어떤 연구결과를 보면 3대 1정도라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극복하지만 4명 중 1명은 상당한 후유증을 앓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조 교수는 “PTSD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가 개인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흔해 재난현장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방치해서는 안된다”면서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의 회복을 돕거나, 굉장히 오래 걸리는 회복기간을 앞당겨 주기 위해서는 곧바로 ‘감정응급처치법’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라우마 치료 국가 차원 근본대책 마련 서둘러야
경주지역 뿐만 아니라 인근 포항, 대구, 울산 등지의 주민들이 지진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는 여전히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세월호 사고 이후 ‘국립중앙트라우마센터’ 건립을 추진해, 2016년 설계비 3억8400만원을 보건복지부 예산에 반영했지만 기재부 심의에서 전액 삭감됐고, 우여곡절 끝에 국회 증액안으로 200억원을 상임위에 배정했지만 예결위를 통과하지 못해 무산됐다. 이로 인해 현재로서는 재난을 입은 시민들의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정부차원의 근본대책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지진이 잦은 일본은 1995년 고베대지진 후 재난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해 발전시켜 나가 재난 이후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피해자 및 유가족의 정신적 외상까지 보살피는 시스템을 완비했다. 또 미국은 1989년부터 국립 PTSD 센터를, 이스라엘은 1982년 레바논 전쟁 때부터 국가적 차원의 PTSD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경주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경주 뿐만아니라 인근 도시까지 지진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더 많은 의료인력 투입과 예산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향후 국가적 재난 발생 시 시민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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