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내비게이션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7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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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철 교수
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초행길 운전이라면 요즘은 시동을 걸면서 내비(게이션)부터 켠다. 상냥하지만 단호한 내비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다. 너무 편하고 익숙해진 요즘이다. 금방이라도 신호가 떨어질 것 같은데 종이지도 보랴 좌우 살피랴 힘들게 운전하시던 아버지 뒷모습이 아직 선한데, 상전벽해라더니 이제는 내비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싫다. 뜬금없는 목적지를 주문해 보았다. “덕수네 콩나물국밥!” 곧바로 내비는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하고 답한다. “덕!수!네! 콩나물국밥! 아니, 내 친구 덕수 몰라?” 세 번을 요청했지만 내비는 끝내 내 친구를 이어주질 않았다. 하기야 내 초등학교 친구 덕수를 무슨 수로 알겠나!

요즘 ‘먹거리 여행’을 많이들 간다. 시작은 볼거리 여행이지만 결국 먹거리 여행으로 완성된다. 거기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여유롭게 우물대면서 바라보고 또 사진으로 남기는 풍광이야말로 여행과 추억을 극대화하는 필요조건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식당 검색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국내라면 SNS나 블로그, 또는 *맵 같은 내비를 활용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외국 먹거리 여행이라면 나는 ‘테이스트 아틀라스(Taste Atlas)’를 추천한다. 아틀라스가 지리부도라는 뜻이고 테이스트가 입맛이니까 합치면 ‘맛집 지도’ 정도겠다. 사이트는 스스로를 정의하기를 ‘맛의 백과사전’이자 전통 요리, 현지 식재료, 정통 레스토랑에 대한 세계 지도책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음식문화 내비게이션인 셈이다.

문명의 이기(利器)는 재깍 써줘야 신세를 갚는 것 아니겠나. 내 오랜 친구 덕수를 찾는 심정으로 사이트 검색창에 간장 게장 그리고 산낙지를 차례로 집어넣어 봤다.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 사람들만 먹는 찐 소울푸드라서 둘을 골랐다. 과연 한국인들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데려다줄지 의심의 눈으로 결과를 살펴봤다.

먼저 간장 게장. 먹음직스러운 게장 사진과 함께 국적을 상징하는 태극기가 보인다. 간장을 기본으로 한 전통 간장 게장과 매운맛이 나는 양념 게장 두 종류가 있다는 설명이다. 게장을 담글 때는 항상 살아있는 게를 쓰며, 보통 알이 꽉 차 있는 암게로 담그는 것이 좋다는 설명 뒤에 ‘밥과 함께 곁들여 먹는다’고 쓰여 있다. 아마 밥도둑이란 걸 순화해서 표현한 듯싶다. ‘delicious(맛있는)’나 ‘mouth-watering(군침 도는)’ 등의 표현으로는 비린내는 잡고 감칠맛은 올려 밥 한 그릇 뚝딱하게 만드는 밥도둑의 뉘앙스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별점은 4.2로 별 네 개 하고 반의 반 표시도 재미있다.

 “일단 허리띠 끄른 채로 따뜻한 밥에 비비면 아마 저세상 맛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어느 코멘트도 적절하다. 이탈리아에서 푸른빛이 도는 꽃게가 생태계 파괴자 취급을 받아 버려지고 있다는 기사가 난 적 있다. 그러자 국내에서 “꽃게를 버릴 거면 차라리 내 입에 버려 달라!”며 수입을 추진하기도 했다는 후속 기사도 난 적 있다. 과연 게장에 진심인 우리 민족답다.

다음으로 산낙지. 사진마저 살아 꿈틀대는 듯 실감 난다. 그 밑에 낙지를 잘게 썰어 즉석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일부 조각이 접시 위에서 꿈틀거리는 게 흥미롭다는 설명이 달렸다. 예상한 대로 영화 《올드보이(2003)》에서 주인공이 산낙지를 먹는 장면을 소개하며 외국인들이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꼽는다고도 했다. 산낙지는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가장 경악하는 음식으로 악명 높지만, 틱톡과 유튜브 문화가 퍼지면서 가장 궁금하고 재미있을 것 같은 음식이란 평도 동시에 받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장 먹어보고 싶은 이색 한식 1위에 뽑혔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어쨌거나 테이스트 아틀라스에서는 산낙지를 세계 최악의 해산물(worst rated seafood) 중 28등, 세계 최악의 길거리 음식 중에서 31등, 최악의 한국 음식 부문에서 8등에 올려놓았다. 외국인 입맛에 산낙지보다 더 심각(?)한 한국 음식들이 뭘까 궁금해서 관련 사이트를 눌렀더니 갓김치가 1등이고 홍어가 2등이다. 그 뒤를 약식, 번데기, 엿, 오징어젓갈, 콩나물국 등이 선정되었다. 음식 랭킹 시스템은 다양한 현지 음식을 홍보하고, 전통 요리에 대한 자부심을 심으며, 먹어보지 않은 요리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라 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그저 애교로 봐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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