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건의 미술칼럼 <17> ●

불확실성 시대의 심리적 색채

경주신문 기자 / 2008년 0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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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신문

거리에 검은 색깔의 차량들이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검은색의 차는 보통 차체가 길고 직선적인 디자인의 고급 세단일 경우가 많은데, 품위가 있고 권위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검은 색깔의 물체는 다른 색깔에 비해 절대적인 강함이 느껴지며, 이는, 차량은 물론 의상, 가구 등도 같은 이미지를 주는데 어떤 면에서는 귀족적이며 고급스러운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검정은 극단적으로 상반된 이미지를 표출하기도 하는데, 위와 같은 긍정적인 면과 한편으로는 타협될 수 없는 독단적인 절대성과 희망이 없음 같은 부정적인 인상을 느껴지게도 한다.

요즈음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스포츠 유틸리티(SUV) 차량들은 보통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차종이다. 지난 봄부터인가 SUV 차종도 검은 색깔이 상당히 많이 늘어나고 있어서 이것이 현실의 상황을 반영하는 한 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 지금이 경기 저점을 지나는 불확실성의 시대임이 틀림없구나.’

SUV 차량의 원조격인 짚(Jeep)은 전통적으로 녹색을 모델로 하여 왔으며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색깔의 전통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짚이 한가지 색깔로 지금까지 고집하고 있는 이유는 다른 어떤 색깔도 이 디자인에 대체 될 수 있는 색이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녹색은 가장 자연과 잘 조화되며, 늠름함과 견고함을 동시에 보여주며 시각적으로도 가장 거부감이 없는 색깔이기도 하다.

근래에는 승용차들이 곡선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이에 맞는 변화로운 색깔들이 등장하고 있다. 회청색, 은회색, 황갈색, 붉은 커피색, 진주빛 백색 등 개성이 강하고 아름다운 색깔들이 개발되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름다운 색상을 마다하고 독단적이고 절대강자격인 검정을 선호할까?
인간은 환경에 대해 불만족 또는 상실된 부분을 보상받고자 하는 이른바 ‘보상심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검정을 택하는 것은, 현실은 어둡고 불확실하며 더욱이 경제는 앞이 캄캄하다고 할 정도로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대하여, 정신적으로는 강하고 흐트러짐이 없는 품위 유지의 색, 모든 색깔 중에서 가장 확실하다고 느껴지는 검정색을 선택한 것이리라.

지금 거리에는 개인택시까지도 검은색 일색이다. 내가 느끼기로는 불과 두어달 사이에 갑자기 바뀐 것 같다.

어느 날, 검은 개인택시를 잡아타고 운전사에게 왜 검은 색깔의 차로 바꾸었냐고 물어보았다.

“고급스러워 보이고 닦아 놓았을 때 광택이 잘 난다”고 했다.

이 대답이 바로 암울한 현실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나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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