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노래하다
이재건의 미술칼럼
경주신문 기자 / 2008년 10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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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①
김환기는 박수근과 더불어 한국의 현대화단에서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친숙히 알려진 정겨운 그림의 작가이다.
박수근이 토속적인 정감의 우리 이웃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면 김환기는 한국적 정서의 자연을 노래한 서정시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무들과의 대화이듯 그의 아호부터가 시적이며 자연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엿보인다.
1913년 전라남도 신안의 가좌도라는 작은 섬마을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바다너머 육지를 그리며 어린시절을 보내고 서울의 중학교에 유학하게 되었지만 중학교도 채 마치기 전 14살의 어린나이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곳에서 중학을 마치고 동경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학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서구영향의 수용이 불가피하였으나 귀국 후 자신의 양식을 세울 필요를 느끼면서 자연풍경과 토속적 기물을 소재로 순수자연에로 귀화하게 된다.
토착적 소재에 대한 애착은 1956년 이후의 프랑스 체류를 통해 더욱 다져진다. 일본에서 서구의 조형교육을 받고 낯선 서양화의 본고장에 도착한 김환기는 한국적 정서의 상실을 걱정해 전람회로 가지 않을만큼 마음 단속을 하였다.
‘나는 동양사람이고 한국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한다 해도 내 이상의 것은 할 수가 없다. 내 그림은 동양사람의 그림이요 한국 사람의 그림일 수 밖에 없다. 세계적이기에는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그의 말에서처럼 김환기는 유화물감으로 우리그림(한국화)를 그린 순수한 한국의 화가였다.
보름달같은 백자항아리와 매화꽃 가지, 학과 구름, 나무와 산, 강물 그리고 달과 별. 이 모든 토착적 소재들은 그의 반문명적 회귀의 염원으로 그림속에 담기게 된다. 그리하여 형식적으로 구성된 화면에서 문학성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옛 선비화가들이 시서화(詩書畵)의 일체정신으로 문인화를 그렸듯이 김환기는 이러한 시적 서정으로 그림을 통해 자연을 구가한 것이다.
실제로 그의 몇몇 그림들은 화면에 싯귀를 써 넣어 마치 시회를 보는 것 같은 강한 문학성을 표현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는 자연을 그리워한 시인이었다. 남도의 작은 섬에서 자라나 미지의 것을 향한 그리움이 일본으로 프랑스로 미국으로 방랑벽처럼 일생을 떠돌게하여 끝내 이국땅에서 생을 마치며 고국강산을 그리워하던 화가 김환기, 그에겐 예술이 곧 자연이었다.
ⓒ 경주신문 |
김환기는 박수근과 더불어 한국의 현대화단에서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친숙히 알려진 정겨운 그림의 작가이다.
박수근이 토속적인 정감의 우리 이웃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면 김환기는 한국적 정서의 자연을 노래한 서정시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무들과의 대화이듯 그의 아호부터가 시적이며 자연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엿보인다.
1913년 전라남도 신안의 가좌도라는 작은 섬마을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바다너머 육지를 그리며 어린시절을 보내고 서울의 중학교에 유학하게 되었지만 중학교도 채 마치기 전 14살의 어린나이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곳에서 중학을 마치고 동경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학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서구영향의 수용이 불가피하였으나 귀국 후 자신의 양식을 세울 필요를 느끼면서 자연풍경과 토속적 기물을 소재로 순수자연에로 귀화하게 된다.
토착적 소재에 대한 애착은 1956년 이후의 프랑스 체류를 통해 더욱 다져진다. 일본에서 서구의 조형교육을 받고 낯선 서양화의 본고장에 도착한 김환기는 한국적 정서의 상실을 걱정해 전람회로 가지 않을만큼 마음 단속을 하였다.
‘나는 동양사람이고 한국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한다 해도 내 이상의 것은 할 수가 없다. 내 그림은 동양사람의 그림이요 한국 사람의 그림일 수 밖에 없다. 세계적이기에는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그의 말에서처럼 김환기는 유화물감으로 우리그림(한국화)를 그린 순수한 한국의 화가였다.
보름달같은 백자항아리와 매화꽃 가지, 학과 구름, 나무와 산, 강물 그리고 달과 별. 이 모든 토착적 소재들은 그의 반문명적 회귀의 염원으로 그림속에 담기게 된다. 그리하여 형식적으로 구성된 화면에서 문학성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옛 선비화가들이 시서화(詩書畵)의 일체정신으로 문인화를 그렸듯이 김환기는 이러한 시적 서정으로 그림을 통해 자연을 구가한 것이다.
실제로 그의 몇몇 그림들은 화면에 싯귀를 써 넣어 마치 시회를 보는 것 같은 강한 문학성을 표현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는 자연을 그리워한 시인이었다. 남도의 작은 섬에서 자라나 미지의 것을 향한 그리움이 일본으로 프랑스로 미국으로 방랑벽처럼 일생을 떠돌게하여 끝내 이국땅에서 생을 마치며 고국강산을 그리워하던 화가 김환기, 그에겐 예술이 곧 자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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