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바이러스 ‘독서의 창’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문예출판사)
황명강 기자 / 2008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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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앞의 생(에밀아자르/문예출판사) |
ⓒ 경주신문 |
자기 앞의 생, 우리는 애초에 그것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생의 슬픔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영문도 모르고 세상에 던져진다는 것이다. 그 던져진 자리가 숙명적 삶의 조건이 된다. 사시사철 싱싱한 과일이 자라는 자리도 있고 벌레가 우글거리는 더러운 진창도 있다. 그러므로 삶은 불공정한 게임이다.
그 속에서 선악과 우열을 가르고 승패를 논한다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니 세상에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다. 다만 상황과 조건에 반응하는 모양새가 다를 뿐이다. 상황과 조건, 즉 숙명에 압도되어 시들어 가는 사람과 그것을 자양분 삼아 성장해 가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아랍소년 모모는 정신병자인 아버지와 창녀인 어머니에 의해 이 세상에 던져진다. 어머니는 살해되고 아버지는 정신병원에 갇힌다. 세 살 나이에 ‘로자 부인’에게 맡겨진다. 그녀 또한 ‘궁둥이로 밥을 벌어먹다가’ 늙어서는 창녀들의 아이를 맡아 기르며 먹고사는 사람이다.
이 책은 빈곤하고 열악한 조건 속에서 한 소년이 자기 앞의 생을 헤치며 어떻게 삶의 뿌리를 내리는지를 감동적이며 절제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더러움은 더러움을 모른다. 전 우주에 자신의 더러움을 물들일 수 있다. 순수함만이 더러움을 관상하고 정화한다. 그러므로 순수함은 굉장한 힘이다. 주인공 모모는 진흙탕 속에서도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생의 ‘비참함’에 물들지 않는다. 세상의 어둠에 아랑곳하지 않고 환한 발광체가 되어 스스로 빛난다. 그 순수한 발광체의 성분은 사랑이다.
책의 마지막 문장 ‘사랑해야만 한다’와,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아밀 할아버지의 말처럼, 이 책의 전편에 흐르는 슬픔의 알갱이들은 모두 사랑이다. 죽은 로자 부인의 얼굴에 화장을 하고 향수를 뿌리는 소년이 눈물겹다. 어린 소년의 시선이라고 하기엔 좀 철학적이며 깊이가 있는 내용이지만, 시종 빛과 어둠을 알맞게 직조하여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낸다.
저자인 에밀 아자르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쓴 로맹가리임이 밝혀졌다. 그 소설 또한 매우 감동적이었다. 에밀 아자르는 로맹가리의 필명이었다. 애석하게도 그는 1980년 파리에서 권총으로 ‘자기 앞의 생’을 일순에 날려보냈다. 어른 모모는 마음이 몹시 추웠던 모양이다.
금이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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