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동리·목월 작품의 배경을 찾아서
박현주 기자 / 2008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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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 선생님이 생명을 준 무녀가 몸을 던진 그 강물이 그 다리 아래로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어미를 닮아 얼룩인 송아지가 황성공원 한켠에서 목월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었다.
색을 솎아낸 밑그림처럼 풋풋하고도 희미한 선을 따라, 얇은 책장을 들추듯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간 길. 고향 경주를 소설로, 시로, 노래로 담아야 했던 것이 두 거장의 숙명이었다면 희미해져가는 그들의 자취를 더 굵고 진하게 기억하는 일이 그들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의 숙명이 아닐까.
동리목월문학관이 준비한 ‘동리목월의 작품배경을 찾아가는 문학기행’이 지난 5일 아침 황성공원 시계탑 앞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참가자 130명을 실은 3대의 버스가 힘차게 출발하자 서영수 시인, 정민호 시인, 장윤익 총장이 각각 버스 안에서 그들이 기억하는 동리·목월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달 달 무슨 달 목월 선생 읊던 달
첫번째로 찾은 곳은 보문 유원지 홍도공원.
박목월 시비 앞에 둘러앉은 일행은 김성춘 교수의 지휘에 맞춰 목월 선생의 시 ‘달’에 작곡가 백영운이 곡을 붙여 만든 가곡을 배워 불렀다.
‘배꽃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노랫말처럼 잔잔한 선율을 따라 작품 안으로 내딛는 첫발자국은 보슬비가 나려도 포근했다.
거센 파도를 호령하는 대왕암
다음으로 찾은 곳은 양북면 문무대왕암. 김동리 선생의 장편 역사소설 ‘삼국기’의 후편 ‘대왕암’의 무대가 된 해변에서는 마치 소설의 삽화인 냥 신굿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주 찾는 바닷가였지만 작품과 겹쳐진 오늘의 대왕암은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황토기의 고향 황토골
버스는 다시 달려 일행을 통일전 가는 길의 황금들녘 앞에 내려놓았다.
안내를 맡은 세분의 선생님들이 차례로 묵은 이야기를 끄집어 내 공간을 채워 나갔다. 동리 선생의 유년기에는 산과 들녘이 온통 황톳빛이라 칠불암 꼭대기에서 바라보면 용 두 마리가 싸우는 듯한 모습이었다는 황토골, 그 소설 ‘황토기’의 고향이었다.
저 평범한 들녘이 품은 사연을 누가 알까. 표지판 하나 없는 그 길을 나는 몇 번이나 무심히 지나쳤을까.
화면으로 만난 동리·목월
동리목월문학관에서는 영상으로 두 선생을 만났다.
각각의 기념관에 마련된 생전의 서재에는 책, 연필 등 긴 시간 함께했을 주인의 지문을 간직한 물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린이들 선생들의 사진에 몸을 기대어 열심히 공책에 기록하고 있었고 나는 먼 훗날 내 아이와 함께 오늘의 이 길을 더듬게 될 것을 생각하며 생가복원청원서에 내 이름을 꾹꾹 눌러적었다.
산을 보며 꿈을 키운 소년
건천읍 모량리의 목월생가. 실개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 오르니 낮은 담벼락에 붙은 안내판과 감나무, 호박덩굴, 갓 낳은 듯한 계란이 3개 놓여진 아담한 닭장을 가진 작은 집에 이르렀다. 산 가까이 있는 작은 이 집에서 목월 선생은 초등학교 2학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여기서도 세분 선생님들은 많은 이야기를 풀어 놓으셨다.
마당깊은 곳 우물
강변을 따라 달리다 이번에는 동리선생의 생가를 찾았다.
성건동 주택가에 위치한 동리선생의 생가. 버스에서 내려 잠시 걸음을 옮기는 중 동네 주민들은 신기한 듯 행렬을 바라보다가 기자를 붙잡고 우르르 몰려서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김동리 선생님 생가에 간다는 말에 몇 번이나 되묻고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 주민을 지나쳐 몇 발자국 옮기지 않아 생가의 텃밭이 나왔다. 마당안쪽, 동네 사람들의 공동우물이었다는 깊고 좁은 우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어린 동리선생의 얼굴이 비치는 듯 했다.
이웃주민에게조차 생소한 거장의 생가라니 아쉬운 마음이 점점 커진다.
명주실 한타래를 풀어도 끝이 닿지 않는 예기청소
강 깊은 곳에는 이무기가 살아 매년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무당을 불러 위로했다는 예기청소.. “동리 선생이 이곳에서 도깨비를 봤다고 했다. 술 먹었을 때는 더 잘 보인다 더라”는 설명에 한차례 웃고 나자 희미하던 동리 선생의 모습이 어깨 옆으로 다가온 듯 친근하게 느껴졌다.
무녀도, 까치소리 등 서영수, 정민호 선생님 작품 설명과 장윤익 회장님 무녀도 평론을 들은 후 배경들을 사진에 담았다.
박목월선생 송아지 시비 방문
마지막 기행지로 출발지인 황성공원으로 돌아와 공원 내 송아지 시비 앞에 자리잡은 일행은 송아지 노래를 시작으로 앞 다투어 노래솜씨를 뽐냈다. 동리·목월 문학작품의 배경을 담아오느라 묵직해진 가슴에 따끈한 손부두와 막걸리가 더해지니 흥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색을 솎아낸 밑그림처럼 풋풋하고도 희미한 선을 따라, 얇은 책장을 들추듯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간 길. 고향 경주를 소설로, 시로, 노래로 담아야 했던 것이 두 거장의 숙명이었다면 희미해져가는 그들의 자취를 더 굵고 진하게 기억하는 일이 그들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의 숙명이 아닐까.
동리목월문학관이 준비한 ‘동리목월의 작품배경을 찾아가는 문학기행’이 지난 5일 아침 황성공원 시계탑 앞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참가자 130명을 실은 3대의 버스가 힘차게 출발하자 서영수 시인, 정민호 시인, 장윤익 총장이 각각 버스 안에서 그들이 기억하는 동리·목월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 홍도공원에서 '달' 노래를 배우고 있다. |
ⓒ 박현주 기자 |
첫번째로 찾은 곳은 보문 유원지 홍도공원.
박목월 시비 앞에 둘러앉은 일행은 김성춘 교수의 지휘에 맞춰 목월 선생의 시 ‘달’에 작곡가 백영운이 곡을 붙여 만든 가곡을 배워 불렀다.
‘배꽃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노랫말처럼 잔잔한 선율을 따라 작품 안으로 내딛는 첫발자국은 보슬비가 나려도 포근했다.
↑↑ 김동리 선생의 장편 역사소설 '삼국기' 후편 '대왕암'의 무대. |
ⓒ 박현주 기자 |
다음으로 찾은 곳은 양북면 문무대왕암. 김동리 선생의 장편 역사소설 ‘삼국기’의 후편 ‘대왕암’의 무대가 된 해변에서는 마치 소설의 삽화인 냥 신굿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주 찾는 바닷가였지만 작품과 겹쳐진 오늘의 대왕암은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 황토기의 배경지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
ⓒ 박현주 기자 |
버스는 다시 달려 일행을 통일전 가는 길의 황금들녘 앞에 내려놓았다.
안내를 맡은 세분의 선생님들이 차례로 묵은 이야기를 끄집어 내 공간을 채워 나갔다. 동리 선생의 유년기에는 산과 들녘이 온통 황톳빛이라 칠불암 꼭대기에서 바라보면 용 두 마리가 싸우는 듯한 모습이었다는 황토골, 그 소설 ‘황토기’의 고향이었다.
저 평범한 들녘이 품은 사연을 누가 알까. 표지판 하나 없는 그 길을 나는 몇 번이나 무심히 지나쳤을까.
↑↑ 동리목월문학관에 전시된 유품을 감상하고 있다. |
ⓒ 박현주 기자 |
↑↑ 열심히 메모중인 어린이. |
ⓒ 박현주 기자 |
동리목월문학관에서는 영상으로 두 선생을 만났다.
각각의 기념관에 마련된 생전의 서재에는 책, 연필 등 긴 시간 함께했을 주인의 지문을 간직한 물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린이들 선생들의 사진에 몸을 기대어 열심히 공책에 기록하고 있었고 나는 먼 훗날 내 아이와 함께 오늘의 이 길을 더듬게 될 것을 생각하며 생가복원청원서에 내 이름을 꾹꾹 눌러적었다.
↑↑ 박목월 선생의 생가. 닭장안에 갓 낳은 듯한 달걀 3개가 놓여 있다. |
ⓒ 경주신문 |
건천읍 모량리의 목월생가. 실개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 오르니 낮은 담벼락에 붙은 안내판과 감나무, 호박덩굴, 갓 낳은 듯한 계란이 3개 놓여진 아담한 닭장을 가진 작은 집에 이르렀다. 산 가까이 있는 작은 이 집에서 목월 선생은 초등학교 2학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여기서도 세분 선생님들은 많은 이야기를 풀어 놓으셨다.
↑↑ 김동리 선생의 생가에 있는 우물 |
ⓒ 박현주 기자 |
강변을 따라 달리다 이번에는 동리선생의 생가를 찾았다.
성건동 주택가에 위치한 동리선생의 생가. 버스에서 내려 잠시 걸음을 옮기는 중 동네 주민들은 신기한 듯 행렬을 바라보다가 기자를 붙잡고 우르르 몰려서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김동리 선생님 생가에 간다는 말에 몇 번이나 되묻고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 주민을 지나쳐 몇 발자국 옮기지 않아 생가의 텃밭이 나왔다. 마당안쪽, 동네 사람들의 공동우물이었다는 깊고 좁은 우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어린 동리선생의 얼굴이 비치는 듯 했다.
이웃주민에게조차 생소한 거장의 생가라니 아쉬운 마음이 점점 커진다.
↑↑ 예기청소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
ⓒ 박현주 기자 |
강 깊은 곳에는 이무기가 살아 매년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무당을 불러 위로했다는 예기청소.. “동리 선생이 이곳에서 도깨비를 봤다고 했다. 술 먹었을 때는 더 잘 보인다 더라”는 설명에 한차례 웃고 나자 희미하던 동리 선생의 모습이 어깨 옆으로 다가온 듯 친근하게 느껴졌다.
무녀도, 까치소리 등 서영수, 정민호 선생님 작품 설명과 장윤익 회장님 무녀도 평론을 들은 후 배경들을 사진에 담았다.
↑↑ 황성공원 내 얼룩송아지 노래비 |
ⓒ 박현주 기자 |
마지막 기행지로 출발지인 황성공원으로 돌아와 공원 내 송아지 시비 앞에 자리잡은 일행은 송아지 노래를 시작으로 앞 다투어 노래솜씨를 뽐냈다. 동리·목월 문학작품의 배경을 담아오느라 묵직해진 가슴에 따끈한 손부두와 막걸리가 더해지니 흥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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