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③

경주신문 기자 / 2008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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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녁에’ 김광섭 詩>

김환기의 뉴욕생활 7년째인 그의 나이 58세가 되던 해 그는 200호 상당의 푸른 점 그림하나를 완성하였다.

이 그림은 당시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되어 대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림의 제목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광섭의 ‘저녁에’란 시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뉴욕에 정착한 김환기는 60년대 후반부터 거의 모든 작업을 푸른 점을 반복하여 찍는 일에 몰두했던 것이다.

이제까지 어떤 구성을 하고 구획지어진 공간에 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오직 화면 전체를 순수한 사각형속의 점으로만 채워나가는 것이었다. 의식적인 구성이 아니라 거의 무의식적인 순수의 감정으로 그냥 그려 간 것이다.

그의 이러한 순수 추상에로의 세계는 오히려 자연을 향한 깊은 정신적 항상성을 보여주면서 오묘한 진리에 이르고자 한 것이리라.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저녁의 시간이 빛과 어둠으로 분리될 때 나와 별은 사라진다고 하는 이 슬프고 아름다운 별의 패러독스를 김환기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성과 소멸을 점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얀 캔버스에 무심히 찍어가는 무수한 점들이 화면 전체를 덮어버리면 그것은 오히려 공허한 하늘이 된다.

1974년 61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고독한 뉴욕의 하늘밑에서 그는 고향의 밤하늘을 그리워하며 별을 헤아리며 푸른 점을 찍어갔다. 그의 마지막 작업은 적멸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종교적 숭고함까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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