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윤광조 선생 ‘경암학술상’ 수상

흙에 불어넣은 예술혼, 국내·외에서 인정받아

황명강 기자 / 2008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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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신문
한국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경암학술상’에 경주의 도예가 윤광조 선생이 선정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인문사회분야, 자연과학분야, 생명과학분야, 공학분야, 예술분야에서 국가발전과 인류사회에 기여한 각 1명을 선정하는데, 윤광조 선생이 예술분야로 선정됐다.
수상자에게는 각 1억원의 상금과 상패가 주어지며 시상식은 7일 오후 3시 부산의 누리마루 하우스에서 열렸다.

도예가 윤광조 선생은 1994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바람골에 ‘급월당’을 지으면서 경주사람이 된다. 1946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한 선생은 1.4후퇴 때 부모님을 따라 남으로 왔다.
홍익대학교 공예학부를 졸업하고 분청사기에 매료돼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던 혜곡 최순우 선생의 지도를 받았고 대학을 졸업하던 1973년에는 제7회 동아공예대전 대상을 수상한다.

평생을 국내외에서 활발한 작품·전시 활동을 벌여온 윤광조 선생은 멀리 미국이나 유럽에까지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작가다. 스케치북을 놓지 않을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고뇌하고 연구하는 예술인인 선생은 분청사기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40여년 해왔다.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런지 그 답을 선생의 육성으로 들어본다.

“머리와 가슴은 구름 위에 두고, 발만 땅을 딛고 살아야 참 예술인이라 할 것입니다. 큰 상을 수상하게 된 일은 기쁘지만 그다지 떠들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의 평가 이전에 도예가로서 정도를 걷다가 떠난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예술은 기술이 아니므로 정직한 예술의 길을 캐며 외롭지만 기쁘게 가고 있습니다”라며 수상소감을 남겼다.

지난 2003년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현대도예전에서 동양 최초로 전시된 윤광조 선생의 작품은 거래가 1억원 대를 넘었고 뉴사우스웨일즈 국립미술관, 퀸즐랜드미술관, 빅토리아국립미술관, 대영박물관,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벨기에 마리몽 로열 미술관 등에 선생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경주에 뿌리를 내린지 14년. 그러나 경주에서 선생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1년에 완성작 몇 점 내기가 어렵다는 치열한 예술혼. 걸어 잠근 작업실 안의 불꽃같은 혼이 경주의 가을을 지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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