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읍성 정비복원 기본계획 최종보고
2020년 605억원 투입, 동·북쪽 성체 1100m 및 동·북문 복원
경주신문 기자 / 2009년 01월 14일
|
공유 / URL복사 |
ⓒ 경주신문 |
경주읍성의 옛 모습을 복원해 관광자원화 하고자 오는 2020년까지 사업비 605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토지 2만6469㎡ 매입, 건물 150호 철거, 복원 기본계획 수립, 발굴조사, 동·북쪽 성체 1100m 및 동·북문 복원, 성내유적정비, 경관 및 주변 환경을 정비하는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이에 따라 시는 지난해 5월 용역비 1억2000만원을 들여 한국전통문화학교에 의뢰했던 △경주읍성 복원 이론적 검토와 정비방안 구상으로 복원계획 수립 △성벽 1100m, 치성 12개소 △동문 및 북문 복원 △경주관아 및 집경전지 등 성내 유적정비를 위한 기본계획수립 용역 최종 보고회를 9일 오후 4시 경주시청 영상회의실에서 개최했다.
또한 시는 지난해 사업비 27억4000여만원을 들여 토지 4503㎡를 매입하고 건물15호 철거 및 철거지역을 정비하며, 동부동 49-1번지 외 156필지 1만5153㎡에 대한 문화재 지정구역을 확대지정 신청했다.
지난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사업비 140억원을 투입해 토지 1만2801㎡ 매입, 건물56호 철거, 성체 75m 및 치성 1개소를 복원했다.
특히 월성이 신라 천년의 경주를 상징한다면 읍성은 신라 이후 천년의 경주를 상징한다는 의미가 있다.
시는 앞으로 사업비 437억원을 들여 토지 1만9141㎡ 매입, 건물철거 79호, 발굴조사 및 실시설계, 성체 1025m 및 치성복원, 동·북문 복원, 성내 유적정비, 경관 및 주변 환경을 정비해 경주읍성을 복원할 방침이다.
한편 사적 제96호로 지정된 경주읍성은 고려시대 이후 지방통치의 중심지로서 고려시대에는 동경유수관(東京留守館)이, 조선시대에는 경주부아(慶州府衙)가 읍성내에 있었다. 이 읍성은 고려 현종 3년(1012)에 축성됐으며, 고려 우왕 4년(1378), 조선 태종~세조년간에 개축하였고, 임진왜란 때 불타고 허물어진 것을 인조 10년(1632)에 중수하고 성문도 다시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이 읍성은 영조 22년(1746)에 다시 개축되었는데 당시 둘레가 약 2300m로 성문으로는 동쪽에 향일문, 서쪽에 망미문, 남쪽에 징례문, 북쪽에 공신문 등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 일부 남은 성체는 이때의 모습이다.
이 읍성은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 멸실 됐으며, 일부 남아있던 동편 약 75m의 옛 성벽이 허물어져 2004년 복원할 당시 경주읍성의 치(성곽방어를 위해 돌출시킨 부분)보수를 위해 읍성을 해체하자 지반석을 비롯한 성곽 축조 당시의 유구가 발견되기도 했으며, 이후 북쪽의 도로변 일부를 발굴한 결과 치의 기초가 그대로 확인되기도 했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