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도자기 가마 '새등이요' 취재 5박 6일

철학을 곁들인 도예가 최차란 선생

황명강 기자 / 2009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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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시내에서 보문단지를 거쳐 불국사로 향하는 보불로를 달리다보면 좌측에 민속공예촌이 있고 조금 더 지나서 우측에 ‘새등이요’ 간판이 나온다.
‘새등이요’는 팔순 노구의 무초 최차란 선생이 직접 도자기를 빚고 가마에 불을 지펴 굽는,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전통요다.
자서전 ‘막사발에 목숨을 쏟아놓고’ 에서처럼 기이한 생의 연속이었던 선생의 삶은 현재까지 멈추지 않고 진행된다. 여전히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선생을 만나면 시공을 초월한 모습에 마음이 설렌다. 밤에는 우주원리에 기인한 도자기와 다도 철학을 정립해 세상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원고를 정리하고, 낮에는 물레 앞에서 흙을 만지는 무초 최차란 선생. 작은 도자기 하나가 우주 속의 별과 같은 존재임을 여러 체험과 이론을 곁들여 설명한다.

1년에 두세 번에 그치는 ‘새등이요’ 가마에 불을 지피는 날이다. 무초 최차란 선생께서 힘들까봐 수제자 현천 최종식 교무는 노심초사다. 토함산 자락에 가을 찬바람이 내리니 84세 난 스승의 건강이 염려되는 것이다.
10월 13일 0시 40분에 한 개비의 성냥이 불을 당긴다. 모든 일의 시작이 한 점이요 찰나이듯 가마에 든 천여 개 이상의 기물이 작은 불씨 하나로 새로운 탄생을 맞게 된다는 건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불을 지피는 순간부터는 기다림과 기도의 시간이다. 욕심을 버리고 오로지 불의 조화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 13일 오전, 장작 하나가 가마을 데우고 있다. 불 지핀지 11시간 경과 모습
ⓒ 경주신문

13일 오전 11시경이다. 불을 지핀지 12시간이 경과 했지만 그저 가마를 데우기 위한 정도의 불이다. 이런 불로 1000도가 넘는 불을 이룰 수 있을까 궁금하다. 장작은 여전히 가마 입구 쪽 1단에 머물고 있다. 가마 벽 좌우로 불이 조금씩 묻어있는 정도다.


↑↑ 14일 - 불을 지핀지 2틀이 경과했다.
ⓒ 경주신문

14일 오전. 불을 지핀지 거의 이틀이 경과했다. 그러나 어제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장작불이 2단으로 올라갔으며 가마 중앙부에 따뜻한 기운이 만져진다. 조금 두꺼워진 불이 가마의 좌우 벽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 14일 자정, 가마입구에 불길이 환하다.
ⓒ 경주신문

14일 밤 12시, 가마 입구가 환하다. 세력을 얻은 불이 타들어간다. 좌우 그리고 가운데로 넘실거리는 불이 도자기에 닿고 있다. 두 번째 세 번째 가마가 많이 뜨거워졌다. 입구에서 불을 지피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가. 도자기가 구워지면서 스스로 불을 전달하는 전도체가 된다는 선생의 설명이다. 황토 또는 돌 부순 흙을 반죽해 도자기를 빚고 가마에서 구워 완성작을 내면서 우주원리를 깨우쳤다는 선생의 이론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 경주신문



↑↑ 15일 가마 앞에서 불을 살피는 최차란 선생의 모습
ⓒ 경주신문

15일 오전, 불을 살피는 최차란 선생의 모습이 보인다. 불이 골고루 들어가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설명과 함께 장작을 올려놓는다. 선생은 작은 경험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관심을 가지고 관찰한다. 도자기를 빚을 때 물레 가운데에 놓고 돌리면 아무리 빠른 회전에도 물체가 떨어지지 않지만 중심이 약간만 벗어나도 두세 바퀴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 회전원리를 깨우쳤다고 한다. 순리에 따라 살아야 하는 인간의 삶에도 선생의 회전원리는 적용된다. 가마에 불을 지피는 마음도 이와 같이 본심 본성이어야 한다는 것이 선생의 지론이다.


↑↑ 15일 오후 창불을 넣을 작은 창에 불이 새어나온다.
ⓒ 경주신문

15일 오후, 창불을 넣기 위해 낸 가마의 창구멍에서 불이 넘실거리며 새어나온다. 가마 속을 들여다보니 도자기가 하얗게 변해 있다. 모든 도자기가 흰색이다. 놀랍도록 신비롭다.


↑↑ 16일 밤 12시 -곧 창불을 넣어야 할 듯. 한불이 들어가고 있다.
ⓒ 경주신문

16일 밤 12시, 한불이 들어가고 있다. 한불은 장작불을 세로로 넣는다. 불이 강하게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곧 창불을 넣어야 할 듯하다. 창불은 도자기에 불이 골고루 가는 효과와 함께 불을 끌어당기는 목적도 있다.


↑↑ 불기가 식은 가마에서 기물을 꺼내기 위해 황토를 뜯어낸다
ⓒ 경주신문

17일 새벽에 창불까지 마무리하고 가마를 식힌다.
19일, 20일 양일 간 가마에서 완성된 도자기를 꺼내는 작업도 만만찮다.
도자기를 꺼내기 위해 황토를 뜯어내고 있는 모습이다.


↑↑ 가마 속에서 완성된 도자기를 살피는 수제자 현천 교무
ⓒ 경주신문

최차란 선생의 수제자 현천 교무가 가마 속에서 완성된 도자기를 살피고 있다. 다완, 찻잔을 비롯한 다기세트와 커피잔, 항아리, 접시 등의 생활다기 모두 저마다의 모양과 빛깔로 앉아 다음 세상을 기다리고 있다.


↑↑ 가마에서 방금 꺼낸 도자기들.
ⓒ 경주신문

가마에서 방금 꺼낸 도자기들이 보인다. 지난여름 동안 빚은 작품들이다.
어느 가정에서 또는 바다 건너 외국으로 가서 생을 마칠 도자기들이 신비로운 빛으로 반짝인다. 최차란 선생은 우주원리를 설할 때, 흙에서 탄생하는 도자기나, 인류나 별의 생성이 일치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 논리에 입각한 선생의 다도교육 또한 그래서 깊이가 있고 근원적인 인간 본연의 자세부터 가르치고 있는지 모른다.

선생은 “우주에서 별이 생성되는 것과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 다완(도자기)이다. 그 이유는 지구는 지구가 되기 이전에 태양의 일부에서 떨어져 나온 석구였다. 세월이 가면서 석구가 섞어서 생성된 것이 지구의 흙이다. 흙으로 형태를 빚어 가마에서 굽고 그것이 새로운 도자기로 탄생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이 된다. 가마에서 나온 이 다완은 그냥 보면 다완일 뿐이지만 크게 보면 별의 대물인 것이다.”라며 짧은 시간에 많은 설명을 해주신다.

정호다완을 재현하기 위해 20여년을 매달렸고 마침내 그 형태의 재현에 성공한 선생의 신념은 그로부터 또 많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젊음을 접고 목숨을 내놓은 선생의 장인정신과 그에 관한 철학은 현대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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