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경주의 가을

1) 단석산의 가을

안영준 기자 / 2009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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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에


황명강



어젯밤 꿈은 하얀 빛이었다 텅 빈 내 고향
건천역을 열 번도 넘게 다녀왔다
떫은 감맛의 사투리 속에
역마다 하늘은 다른 빛깔로 익어가더라
이맘때쯤 띄워 보낸 편지들
완행열차 허리춤에 웅크리고 있는지
늘 같은 몸짓 떠날 길 재촉하는 레일이
가슴 가로질러 달리는데
길 잃은 바람의 노래에나 귀 기울이는
작은 창은 출구를 찾지 못해 흔들린다
저물녘 발목 잡힌 술래처럼
까치밥 꼭지 위에 시드는 우리의 가을,
편한 길 만들며 스스로 무너지는 언덕처럼
마음속 붉은잎 날려 보내는 시월에





신선사에 젖다


황 명 강


비탈길 오르느라 기울어진
마음의 난간
빗방울 굴러 내린다
주인 없는 절간 마당
바람 불자 수북수북 법문 채운 수국이
스님 대신
잘 익은 말씀 하나
내 발등에 툭, 떨어뜨려 준다
볕 나면 나는 대로
빗방울 들이치면 들이치는 대로
벌떼처럼 드나드는 저 무상의 법문들!

무릎 꿇은 돌탑이
득음의 목청 매단 채
후줄그레 합장하고 선 욕심을
빙그시 내려다 본다
껍질 벗지 못한 내 안으로
휘감겨드는 빗줄기,
생나무처럼 웅크린 한쪽이
점점 깊어지는데
수국수국
몸 열어 지상의 얼룩 지우는 소리
산비탈 움켜쥐고 올라온 청개구리도
제 어미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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