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예술계의 거목···지산 정진용 선생 타계
지역 서예 예술인들 깊은 애도 - 서예발전에 큰 기여
손익영 기자 / 2010년 0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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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포항에서 출생한 선생은 동아대학교 법정대를 졸업하고 다시 영어를 전공해 1967년부터 경주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1999년 퇴직하기까지 혼신의 정성으로 후학을 지도했다.
대화의 화두에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식견의 폭을 높이고 영어 어미에는 한문이나 한시를 음영해 그 깊이를 더했으며 동서양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막힘없는 화술은 항상 좌중을 압도했다고 지인들은 회고했다.
1972년경, 향산 이정갑 선생을 만나 서예에 입문하게 되고, 한국미술대상전에서 우수상의 영예를 차지하며 도쿄와 베이징에서 저명작가 초대전과 SALON DE PARIS 국제 초대전등에 출품하고 신라문화대상, 신라서화대전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지산의 글씨는 그의 준수한 외모와 호방한 성격 그대로 일정한 서법에 얽매이지 않고 강약을 자유자제로 펼치는 강인한 글씨의 이른바 ‘지산체’라고 불리는 서예세계를 구축했다.
경주 서도학원장과 한국 서협 경주지회 초대회장을 역임한 선생은 경주서예가연합회를 결성해서 서예인구 저변확대와 서예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경주서예가연합회 정수암 회장은 “경주 서예인들, 아니 예술인 모두가 거목을 잃었음에 애도하고 있다. 선생의 그 호탕한 웃음과 유유자적한 성품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고 선생의 영면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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