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코리아나 이애숙

“서울올림픽 주제가는 세계적인 그룹 ‘칭키스칸’에게 넘어갈 뻔”

손익영 기자 / 2010년 0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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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경주신문사
지난 4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열린 ‘제4회 동리목월을 찾아가는 강연과 음악회’에서 코리아나 이애숙 씨를 만났다.

이애숙(캐시리)은 88서울올림픽을 대표하는 그룹 코리아나(멤버 이승규, 이용규, 홍화자, 이애숙 남매 가족 그룹)로 유럽에서 동양의 아바로 비교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앨범발매 1200만장이 판매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씨는 동리목월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동리목월음악제’와 ‘강연과 음악축제’에 첫 회부터 공연해왔으며 이날 김동리의 시에 작곡가 김희갑이 곡을 붙인 <은하>, <무지개>, 자신의 히트곡 등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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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 주제가는 세계적인 그룹 ‘칭키스칸’에게 넘어갈 뻔”

▶올해 4년째 동리목월기념사업회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데 특별한 인연이라도?

=동리선생님의 제자가 양인자 선생님이고 나는 양인자 선생님의 제자로 동리목월음악제에 함께 참여하게 됐다. 선생님들과의 특별한 연으로 해서 지금까지 공연하게 됐는데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문화사업을 펼치는 장윤익 회장님의 모습에 감동해서 그만 코가 꿰어진 것 같다.(웃음)

▶이 무대에서는 동리 시의 노래를 부른다
=느낌이 아주 다르다. 시의 의미를 노래로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르기가 어렵다. 다른 무대에서 동리 시의 노래를 부르면 ‘신곡’ 쯤으로 생각하는 어려움이 있어서 부르지를 못했다.

▶데뷔는 언제? 유럽에서 ‘동양의 아바(ABBA)’로 불리며, 88올림픽 주제곡(손에 손잡고)으로 국내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다섯 살 때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 가수는 ‘딴따라’라는 편견이 심한 때여서 미8군에서 활동하다 어머니께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라고 1978년 동남아로 진출시켰다. 나는 노래가 좋아서 부른 게 아니고 성악을 하신 어머니께서 못다한 꿈을 우리 남매에게 이루려 하셨다. 어머닌 노래공부를 아주 혹독하게 시키셨다. 무대에서 노래하고 내려오면 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그대로 혼쭐을 내셨다. 노래가 좋아서 부른 적이 없다. 혼나지 않으려고 노래한 기억뿐이다. 1973년 중동으로 진출했다가 다시 유럽으로 옮겼다. 1977년 명문 폴리돌 레코드의 프로듀스 ‘빅터 펠리’에게 발탁되어 그룹명을 ‘아리랑싱어즈’로 바꾸고 활동했다. 최초의 싱글 ‘I love Rock & Roll music 과 song of Arirang 발표, 국내외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아바, 듀란듀란, 칭키즈칸 등과 함께 유럽 10대 그룹으로 선정되어 전 유럽에 방영되었다. 'Koreana'로 다시 개명해서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를 부르며 서울올림픽 주제가로 선정되었다. 서울올림픽 주제가는 당시 독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그룹 ‘칭키스칸’에게 넘어갈 뻔했다.

▶자녀 중에서 노래를 하겠다면?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이 있는데 노래를 하겠다고 한다. 가능하면 음악을 시키고 싶지 않다.
노래 한 곡으로 반짝하는 그런 가수가 될 거면 애초에 그만두고 작곡과 악기 연주 등 모든 음악을 아우를 수 있는 음악인이 되라고 이른다. 현재 미국에서 뮤지컬을 공부하고 있다.

▶코리아나 전 멤버들의 근황, 앞으로의 계획은?

=오빠들은 사업을 하고 있다. 가끔씩 노래도 부르지만 내게 오빠는 훌륭한 드러머로 더 기억된다. 2월에 유럽에서 공연을 마치고 왔다. 유럽 쪽엔 ‘Hand in Hand'이 아직도 앨범 챠트 62위에 선정되어 한번 반짝하고 지나가는 국내 분위기에 만감이 교차했다. 4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공연을 했다. 내년에는 이 땅에 평화정착을 기원하는 의미로 판문점에서 공연계획이 잡혀 있다. ‘Hand in Hand'이 지니고 있는 평화의 이미지를 실현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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