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경도놀이 아시나요?

윷놀이와 비슷한 전개 방식.. 먼저 최고벼슬에 이르는 편이 승리

손익영 기자 / 2011년 0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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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경주신문사
민족의 대 명절 설을 맞아 멀리 흩어져 지내던 가족·친지들이 한데 모였을 때 이런 민속놀이 한번 해보면 어떨까?
‘승경도(陞卿圖)놀이’.
또는 ‘종경도(從卿圖)놀이’, ‘종정도(從政圖)놀이’, ‘승정도(陞政圖)놀이’라고도 불리며 기자가 어렸을 때 부모님과 가족들이 함께 둘러앉아 “종경도 한번 놀자”란 말을 아버지로부터 듣고 놀았으니 이곳 경주 지역에서는 ‘종경도’라 불렸던 것 같다.
투호나 비석치기, 윷놀이에 비해 그리 알려져 있지 않아 젊은 층에는 생소한 놀이이다. 승경도가 언제 시작됐는지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조선의 성리학자 성현(成俔)의 「용재총화」에는 조선개국 초기의 학자 하륜(河崙, 1377~1416)이 처음 만들어 보급시켰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양반계층이 공부해야할 것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보학(譜學)·전고(典故)·관방(官方)이 있었으며 그중 관방은 무슨 관청에 어떤 관리가 배치되고, 무슨 관리가 어떤 일을 맡는가 등의 관직제도를 연구하는 것으로 꽤나 다양했다.
조선 관리의 총 수는 중앙과 지방을 합해 모두 3800명을 넘지 않았지만, 등급이 많고 칭호와 상관관계가 매우 복잡했다.
따라서 양반집에서는 어릴 때부터 관직에 대한 체계적인 관념을 자제들에게 익혀주기 위해 이 놀이를 장려했으며 사대부가의 자제들이나 부녀자들 사이에서 성행했던 실내놀이이다.

놀이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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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경도
승경도의 크기는 일정치 않으나 보통 길이 1.5m, 너비 1m의 크기에 전체면적 4분의 3에는 300여개의 간을 만들어 관직명을 써넣고 남은 공간에는 놀이의 규칙을 적어둔다.
도표의 사방으로 이른바 외직인 팔도의 감사·경사·수사·중요 고을의 수령을 배치하며, 중앙부의 맨 위에는 정1품을, 그 다음에는 종1품을 늘어놓고 맨 밑에 종9품이 온다.
승경도에 벼슬자리의 수를 모두 다 써 넣기도 어렵거니와 그렇게 하면 긴장감이 떨어지고 지루해질 수 있어 도표의 크기에 따라 중요관직만을 적당히 배치한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승경도 중에는 최저 150여 칸밖에 되지 않는 것도 있으나 최고는 그것의 2~3배 이상에 달하기도 한다.

▶윤목(輪木, 숫자방망이)과 말
윤목은 길이 15~20㎝ 전후, 굵기 3㎝ 정도로, 오각형의 모를 내고 그 마디마다 하나에서 다섯까지의 눈금을 새겨 만든 것이다. 하나로 된 윤목을 굴려서 마디에 새겨진 눈금만큼 말을 진행시켜 세우면 다양한 벼슬을 하는 놀이다. 말은 일정한 형태 없이 아무것으로 할 수 있으나 다른 편과 식별이 쉽도록 윷놀이의 말처럼 구별이 되는 것을 말로 쓴다.

놀이 방법
승경도놀이는 윷놀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진행되며, 4~8명의 인원이 노는 것이 적당하다.
조선의 관직명을 위계(位階) 차례로 유학(幼學)부터 영의정과 봉조하(奉朝賀)에 이르기까지 망라해서 그려 넣은 말판에 윤목을 던져 나온 끗수에 따라 말을 놓아 말직에서부터 차례로 승진하여 먼저 최고 관직에 이르는 편이 이긴다. 순조롭게 승진해 벼슬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파직이 되어 변방으로 밀려나거나 사약까지 받는 수도 있으므로 놀이의 긴장과 재미가 더한다.
문과(文科)는 영의정 자리를 거쳐 사궤장에 먼저 이르는 사람이, 무과(武科)는 도원수에 이른 다음 사퇴하는 편이 이긴다. 그러나 윤목의 끗수가 계속 1이 나올 경우 승진을 못하고 강등되어 파직에 이르게 되며 최악의 경우 사약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놀이규칙
여러 가지 놀이규칙 중 대표적인 것이 양사법(兩司法)과 은대법(銀臺法)이 있다. 양사는 사헌부와 사간원을 말하며, 이 자리에 있던 사람이 미리 규정된 수, 즉 2면 2, 3이면3을 얻으면 그 사람이 지정한 상대의 말은 움직이지 못한다.
다만, 역시 정해진 숫자인 4면 4, 5면 5를 얻어야 비로소 다른 자리로 옮겨갈 수 있다. 은대는 승정원으로 이 자리에 있던 사람이 규정된 수를 얻으면 당하(堂下)에 있는 모든 말들을 자기네가 굴려서 얻은 수를 쓰지 못하고 모두 이 사람에게 바쳐야 한다.
승경도놀이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조선시대 관직제도를 알 수 있고 긴장감도 있어 재미를 더한다. 아마도 이러한 놀이를 통해 사대부가의 자제들이나 아녀자들에게 관직의 개념이나 중요성을 일깨우고 성취욕구와 함께 강등이나 유배 등 벌칙도 심어 관리로서의 올바른 처신을 일깨웠던 것으로 여겨진다.

고 미디어 시대에 조선의 관직이나 세는 이런 놀이가 촌스런 옛 놀이로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화투장이나 던지는 어른들만의 놀이보다는 모처럼 온 가족이 둘러앉아 윷놀이와 비슷하게 전개되는 승경도를 펼쳐 놓고 윤목을 굴리며 편을 짜서 놀이를 해보자, 선조들의 지혜와 함께 자녀들에게 조선시대 조직에 대한 이해가 쉬워 학습에도 도움이 되며 사라져가는 우리 민속놀이를 해본다는 자부심과 함께 자녀들에게도 추억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기자가 어른이 된 후에도 명절에 온가족이 모일 때면 아버지께선 괘를 열어 콩기름이 입혀진 승경도를 꺼내서 우리 가운데 펼쳐 놓으시곤 하셨다. 명절이 다가오면서,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오래 전에 우리 곁을 떠나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 이번 설에 가족들이 다 모이면 아버지를 추억하며 즐거웠던 승경도놀이를 해봐야겠다.

“얘들아, 종경도("승경도"의 사투리) 한번 놀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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