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미신적 풍습으로 인식, 점점 잊혀져가는 세시풍속

음력 2월 초하루 ‘영등날’을 기억하나요?바람신 영등에게 고사.. 액을 면하기 위한 상징적·표현적인 믿음, 사진은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2009년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제주지

손익영 기자 / 2011년 0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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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2월 초하루, 그러니까 올해는 3월5일이다.
이날은 ‘영등(靈登)할미’가 오는 날이라 하여 ‘영등일’ 또는 ‘영등할미날’이라 불리는 사라져가는 우리 세시풍속 중의 하나이다.
하늘에 있는 영등할미가 이날 땅으로 내려와 머물다 스무날이면 다시 올라간다고 여겼다.
영등신앙은 주로 영남과 제주도 지방에서 전승되고 있는데 중화절(中和節)이라고 한다.
↑↑ 김영태 '영등할머니 맞이'
ⓒ (주)경주신문사

원래 중국에서 중화절을 명절로 삼아왔는데 조선 정조 때(1795년) 중국 당나라의 중화절을 본떠 농사일을 시작하는 날로 삼았다. 나라에서는 문무백관으로 하여금 농사짓는 법을 적은 농서를 올리게 하고 중화척을 재상과 시종에게 나누어주는데 이는 농사의 치적을 척도로 계산한다는 뜻으로 곧 농사를 그만큼 널리 권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이날을 머슴날이라 하여 가을 추수가 끝나 농사일을 마치고 쉬던 머슴들이 2월이 되면 다시 농사일을 해야 함으로 주인집에서는 머슴들을 위해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마을 잔치를 벌였다.
또한 그해 스무 살이 된 머슴은 성인 머슴에게 술을 한턱내야 다음부터 어른 취급을 받아 성인 머슴들과 품앗이를 할 수 있었다. ‘동국세시기’에는 2월 초하루가 노비일(奴婢日)로서 노비들에게 나이수대로 떡을 주었다고 전한다.

전래신앙으로 무속인들은 2월 초하루를 ‘영등날’이라 했다. ‘영등’은 바람신으로 농촌에서는 영등신이 지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 우순풍조가 이루어지도록 초하룻날 고사를 지내고 매일 아침 정화수를 장독대에 올려놓고 한 해의 태평과 소원을 빌며 소지를 올렸다. 어촌에서는 설날보다도 더 큰 행사로 여겨 영등할미에게 빌면 태평무사하다고 믿었다.
쑥떡과 나물을 장만하여 여성 중 상위자가 목욕재개하고 영등할미에게 제사를 올리고 이른 새벽 바가지로 정화수를 길어 장독대, 광, 부엌 등에 올려놓고 광주리에 밥과 떡을 담아 가족 수대로 소지를 올리며 주문을 외웠다.
바닷가에 사는 아낙들이 바람을 일으키지 않게 제수를 차려 해신제를 지내면 풍랑을 면하고 고기가 많이 잡혔다. 액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행사로 5색 헝겊으로 인형을 만들어 물동이나 뜰에 서있는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집집마다 붉은 흙을 파서 대문 앞 양쪽에 놓고 불을 놓을 뿐만 아니라 연장 연모를 용왕 앞에 놓고 빌며 조리에 밥을 얹고 요강에 음식을 담아 부정을 치고 아침 일찍 대문에서 기도하고 저녁에 제물을 차려 신을 불러 치성을 올렸다.
↑↑ 김영태 '영등굿놀이'
ⓒ (주)경주신문사

보통 2월 초하루 때부터 꽃을 시샘하는 바람, 즉 꽃샘바람이 부는데 영등할미가 인간 세상에 올 때는 며느리나 딸을 데리고 다니는데 이날 며느리(비영등)를 데리고 오면 비가 오고 딸(바람영등)을 데리고 오면 바람이 분다고 한다.
즉 영등할미가 딸을 데리고 오면 다홍치마를 휘날리게 하느라고 바람이 불어 흉년이 들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며느리가 미워서 다홍치마를 얼룩지게 하느라고 비가 내려 풍년이 든다는 것.
이는 친정어머니와 딸은 서로 좋아하고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는 불화와 갈등이 많은 인간세상의 모습이 그대로 추영된 것으로 사람들은 영등의 딸보다 며느리를 더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인간들은 성질이 까탈스럽고 변덕이 심한 바람의 신이자 흉·풍년을 결정할 힘과 영험을 지닌 영등의 비위를 맞추느라 온갖 정성을 다했다. 물건을 사고 파는 일, 심지어는 빨래도 하지 않는 등 엄격한 금기를 했다. 이날 각 부락에는 농악이 벌어져 집집마다 찾아가서 한마당씩 밟아주며 태평을 빌어주는 풍습도 있다.
경상도 지역에는 2월 초하룻날, 오곡밥을 짓고 오곡나물을 하고 비늘이 없는 생선인 동태에 무를 넣고 끓인 찌개를 먹었으며 쑥떡을 빚어먹고 간식으로 콩을 볶아 먹는 풍습이 전해내려와 아직도 어르신들이 계신 집에서는 이 풍습을 지키는 가정이 있다.
어쨌거나 2월 초하루는 액운을 쫒고 무병장수와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날로 바람의 신인 ‘영등신’을 받드는 풍속이 전해지고 있는 만큼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날이다.
아직도 제주지방이나 어촌마을에서는 바람신 영등할미를 위한 ‘영등굿’을 치성으로 올리는 지방이 많다.
오늘날 2월 영등행사는 액을 면하기 위한 상징적이며 표현적인 믿음이 점점 사라져가며 미신적 풍습으로 인식돼 우리에게서 잊혀져가는 미풍양속이 되어가고 있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영등날’, 의미라도 되새겨보며 사라져 가는 옛 풍습을 한번쯤 상기해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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