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도를 찾은 응우옌, 화려한 ‘왕조의 나들이’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베트남 마지막 황실의 보물’
손익영 기자 / 2011년 03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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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전‘베트남 마지막 황실 보물’ 개막에 앞서 지난달 28일 가진 언론공개회에서 윤지연 학예연구사(오른쪽)가 기자들에게 전시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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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 1일부터 오는 5월 15일까지 ‘베트남 마지막 황실의 보물’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 2월 6일까지 서울 고궁박물관에서도 열려 많은 관심을 모았던 전시로, 베트남 마지막 왕조 응우옌 왕조(Nguyen Dynasty, 阮朝.1802~1945)의 문화유산을 접할 수 있다.
응우옌 왕조는 1802년 베트남 전 국토를 통합한 최초의 왕조이자 마지막 봉건왕조로서 중부지역인 후에(Hue)에 새로운 왕도를 건설하고 참파왕국이 자리했던 남부까지 점령하며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이루며 현재의 베트남 영토를 확립했다. 최전성기에 국호를 ‘비엣남(越南)’에서 ‘다이남(大南)’으로 바꾸고 중국 청나라와 대등한 황제국임을 자부했으나 그후 19세기 중반 이후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식민화되면서, 왕조의 운명도 점차 몰락의 길을 걸어 1945년 권력의 상징인 황금보검을 베트남 독립동맹회인 ‘베트민(越盟)’에게 넘겨주면서 몰락했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같은 유교와 한자 문화권에 속하며 수천 년 동안 중국과 접하면서 고유하고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했으며 제국주의의 침략, 남북 분단 등 아픈 역사를 경험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한 후에시는 경주시와 마찬가지로 전통 왕조의 수도로서 번성했던 역사문화도시로 1993년 황릉을 비롯해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바 있으며, 경주시가 후에시와 2007년 9월 자매결연을 맺고 활발히 교류하고 있어 이번 전시가 경주시와 후에시의 활발한 교류와 우호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전시는 응우옌 왕조의 유물을 소장한 베트남 후에 궁정박물관(Hue Royal Antiquities Museum)에서 무료 대여한 19세기 황태자 보좌 외에 용무늬 종이에 새겨진 황제칙서, 금과 옥, 산호로 꾸민 분재형 장식(金枝玉葉)을 비롯해 병풍, 황태자 용포, 향로, 계정년간 산수문 항아리 등 대표적 유물 165점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황성과 역사유적지를 각종 영상물과 사진으로 소개·전시하며 화려했던 황실의 생활문화를 보여준다.
응우옌 왕조의 유물 대부분에서 용문이 새겨져 있고 왕실을 상징하는 태양과 용, 붉은색과 황금칠로 화려하면서도 위엄을 갖추고 또한 실용성을 강조했으며 베트남의 자존심과 황제국으로서의 위엄과 의지를 표명하려는 왕조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윤지연 학예연구사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 응우옌의 수도였던 후에와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서 이번 전시가 열리는 것은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베트남과의 두 나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베트남과 응우옌 왕조(Nguyen Dynasty)
베트남은 북서부 지역의 홍강 델타 유역에서 발생한 청동기 문화를 시작으로 기원전 2세기에 이르는 중국의 지배기를 지나 최초의 독립 국가인 응오(Ngo, 吳.939~944) 왕조를 설립한 이후 독자적인 전통 왕조시대를 이어갔다.
19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오랜 대립의 역사를 종식시키고 응우옌(Nguyen, 阮.1802~1945) 왕조가 세워졌다.
베트남 최초로 완전한 남북통합을 이룬 응우옌 왕조는 남북의 문화를 유교적으로 통일시켜 현재와 같은 베트남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청과 서구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력을 강화시키고 베트남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확보했다.
중국에 대해 책봉과 조공의 관계를 유지했지만 대내적으로는 황제국임을 칭하고 별도의 연호를 사용하는 ‘외왕내제(外王內帝)’ 정책을 택했다. 응우옌 왕조 역시 황제국임을 자부하며 참파, 라오스, 캄보디아 등 주변국에게 조공을 받으며 동남아시아의 중심이라는 자긍심을 가졌다. 왕을 황제, 왕성을 황성, 왕명을 칙명이라 하모 능제도 황릉을 사용하는 등 천자의 제도를 사용했으며 144년 역사상 총 13명의 황제가 재위했다. 통치 질서와 새 왕조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수도 후에에 남교단, 사직단, 문묘 등을 세우고 하늘과 땅, 조상 그리고 유가의 선현들에게 제사를 올렸다.
1993년 총 16개의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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