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4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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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주 편집국장 |
‘못생겨서 미안합니다’ ‘뭔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등 숱한 유행어를 남겨 코미디계의 제왕으로 불렸던 고 이주일 씨가 4년 동안 국회 안에서 본 한국정치와 정치인의 행태가 가당찮았기에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28년이 지난 오늘날의 한국정치 수준은 어떤가?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코미디도 따라가지 못하는 난장판이다. 국민들은 그동안 정치폐단을 지켜보면서 국민수준에 맞는 정치개혁을 갈망해 왔다. 여당과 진보계열 군소정당들은 이러한 여론을 등에 업고 지난 연말 다변화된 사회,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다당제가 필요하다며 패스트트랙을 발동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과시켰다. 그리고 국민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다당제와 정당 간 협치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진보계열 군소야당들은 국회의석을 몇 개라도 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키웠다. 그러나 그 같은 기대는 거대 정당의 꼼수로 일장춘몽에 그치고 말았다.
먼저 거대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보수 세력을 규합해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미래한국당’이라는 비례대표투표를 위한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한 명의 국회의원이라도 더 만들겠다며 선수를 친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이에 뒤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미래통합당이 만든 위성정당을 정치적 꼼수라며 신랄하게 비판하던 민주당은 한층 더 진일보(?) 한 위성정당을 만들어 선거판을 뒤흔들었다. 각 당에서 온 비례대표 후보들이 연합정당에 모이고 비례 연합정당 이름으로 정당투표를 하자며 전략적 임시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꼼수는 비례대표 앞 순번을 받기 위한 정쟁의 장으로 변했고, 한 배를 타기로 했던 군소정당들은 몫도 챙기지 못하고 말았다.
이들 거대 양당들에겐 애초부터 정치개혁을 여망하는 국민들의 기대도, 군소정당에 대한 배려도, 유권자들의 바람도 안중에 없어 보였다. 47석의 비례의석 쟁탈전을 위해 급조된 일회성 정당이다 보니 제대로 된 공약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야말로 유권자들에게 “그냥, 당 이름만 보고 찍으시면 됩니다”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치인들이 꽃을 꺾어 버리는 행위를 스스럼없이 한 것이다. 아마도 이번 4.15총선에 등장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한국 정치사에 가장 최악의 선례로 남을 것이며, 총선이 끝나면 정치개혁을 향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정치권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4.15총선에서 거대 양당이 뒤흔든 선거판 때문에 유권자들만 더 혼란을 겪게 됐다. 꼼수정치가 만든 비례투표용지도 황당하다. 투표용지에 무려 35개 비례정당이 이름을 올렸다. 길이만 48.1cm에 달해 2002년 이후 18년 만에 다시 수개표를 해야 하는 촌극이 벌어지게 됐다. 거대 양당들이 처음부터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선택의 폭을 좁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지 의문이 든다.
위성정당 논란 못지않게 거대 양당의 공천과정도 가관이다. 특히 통합당의 이번 총선공천은 제1야당의 참신함도, 경쟁력도 찾을 수 없다. 과연 공천 규정이 있었는가 싶다. TK지역에는 공천만 주면 당선될 것이라 여기고 있는 통합당은 애초부터 지역민들의 바람은 관심도 없어 보였다. 특히 경주공천은 더 심했다. 컷오프 때부터 논란을 일으키더니 경선-결정-철회-재경선-결정 등으로 후보등록 마감일을 불과 하루 남겨두고 공천을 했다. 통합당은 지난 열흘 동안 경주시민들을 ‘들었다놨다’ 마음대로 했다. 통합당에겐 공천 문제로 갈라질 경주민심 따위는 안중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4.15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4년 임기를 마치고 국회를 떠나며 “4년 동안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며 정치판을 향해 일갈한 고 이주일 씨의 말이 더욱 가슴 깊이 와 닿는다.
2일부터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유권자들은 또 선택의 기로에 섰다. ‘깜깜이’ 선거판이 10여일 남은 기간 동안 훤하게 보이기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유권자들은 두 눈 부릅뜨고 후보자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공약도 촘촘히 살펴보아야 한다. 유권자들에게는 국회의원을 선택할 소중한 권리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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