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픔 담긴 ‘택시 운전사’

나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되물은 영화

경주신문 기자 / 2022년 0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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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택시운전사 포스터.

↑↑ 김인현 대표.
송강호 주연인 영화 ‘택시 운전사’의 원조 다큐멘터리가 있다. 필자가 중학교 1학년 때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 10월 27일 뉴스는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충격으로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학교에서 정신 나가 녀석이라며 빨리 학교로 오라고 했다 당시에 나는 학교에 간 사람들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는 사람들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통령 서거의 슬픔을 뒤로 하고 한 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언제인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서울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는데 사거리마다 군인들이 지프를 타고 지키고 있는 이상한 수도 서울을 목격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중학교 2학년인 나의 눈에 들어온 TV 뉴스는 헬기를 향해 총을 쏘는 시민들과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는 군인들, 불타는 방송국 영상 등이었다. 나에게 광주는 폭도들의 도시였고 무질서와 혼란의 도시였다, 당연히 그들 진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서 1986년이 되었다. 한 해 재수한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어수선한 대학에는 소수의 학생이 항상 데모를 하고 있었고 소위 닭장차라는 전경버스가 언제나 대학 근처에 대기 중이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광주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우리나라 헌법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는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찬성한 헌법에 문제가 없고 폭도들에 대한 진압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학 도서관에서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법전을 샀고 나만의 삶을 준비 했다.

대학교 1학년 생활은 도서관과 자취방을 왔다갔다했고 친구들과 서로의 학보를 주고받으며 대학의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가을쯤인가, 학생들이 학원 민주화 관련 데모로 도서관에 있던 총장실을 점거하고 있었다. 나는 데모와 상관없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친한 친구가 도서관에서 자면서 같이 밤을 새우자고 했다. 데모대 옆에서 자연스럽게 총장실을 구경했고 푹신한 카펫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데 새벽에 누군가가 비디오를 튼다고 했다.

호기심에서 본 그 비디오가 내 삶을 바꾸었다. 바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했던 서독 제1공영방송 북부독일방송(ARD-NDR) 영상기자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 1937~2016)가 독일 및 전 세계 방송사에 공개했던 다큐멘터리 비디오였다. 힌츠페터는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광주의 처참함을 카메라에 담았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계엄군에 의해 짓밟히는 모습은 1980년 5월 22일 서독의 저녁 뉴스를 통해 방영됐다. 이는 서방세계에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게 6년이나 지나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다친 군인들도 있었지만 수많은 광주 젊은이들의 죽음은 나의 뇌리에 너무나도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 당시 비디오는 어떤 조작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본 뉴스로 각인된 다친 계엄군의 잔상과 폭도들로 가득한 화면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진실의 이면에 숨어 있던 광주를 정면으로 다시 보았다. 이 영상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2017년 송광호 주연 ‘택시 운전사’로 무려 1,2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대학 때 본 비디오 한편은 그 후 ‘세상의 빛과 어둠을 구분하기 위해 많이 배워야 한다’는 자세로 굳어졌고 지금도 그런 자세를 지키려고 노력 중이다. 그만큼 이 다큐멘터리는 광주의 진실을 알린 동시에 필자의 삶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광주의 진실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진실을 진실로 보지 않거나 외면한 결과 우리 사회의 이념적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를 지킨 사람이 민주주의 파괴자라는 오명을 쓴 반면 80년 쿠데타 주역들로 광주를 짓밟은 사람들은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민주화를 이룬 주역들은 진압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갇혀 지내고 있는데 그들을 짓밟은 사람들은 원하는 바를 성취한 뒤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여운은 지금도 내 인생 전체를 휘감은 채 정의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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