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경주바라기들’

경주신문 기자 / 2023년 0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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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갑식
영국 Fashion Food 21
대표, 음식 칼럼리스트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차량이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가 있다. 그 도시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서울로 치면 광화문 정도로 항상 사람과 자동차들의 통행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이런 곳은 그 위치의 중요도 때문에 비즈니를 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건물도 비싸고 조그만 구멍가게조차도 엄청나게 임대료가 높다. 무엇을 해도 되는 곳이고 어떤 일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부동의 상권이다. 이런 위치 때문에 이런 곳에는 항상 옥외광고판이 있다. 그것도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큰 광고이고 아마도 광고료 또한 무지 비싸게 지불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체들은 그 비싼 광고를 기꺼이 지불하고 그곳에 자사의 로고가 선명하게 들어간 제품들을 광고한다. 그만큼 노출의 빈도가 높기 때문에 광고효과 또한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런던에도 그런 곳이 있다. 바로 피카델리스커라는 곳이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피카델리 로타리 정도이다. 서울의 종로 혹은 광화문, 경주의 팔우정 로타리 같은 곳이다. 차들이 많이 몰리고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이 몰리는 요지이다. 이곳에는 영국에서 가장 비싼 옥외광고들이 있다. 혹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옥외광고라 말하기도 한다. 약 15~20여년 전 이곳에 한국 기업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자사의 제품들을 광고하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셋이었다. 그 주인공들은 삼성, 현대, LG였다. 광고를 할 수 있는 공간이 기껏해야 5~6개 정도 옥외광고이고 전 세계의 메이저 회사들이 들어온 그곳에 모국의 회사 광고들이 줄줄이 사람들의 시선들을 한 몸에 받는 그 모습을 볼 때, 가슴이 찡하고 자랑스러움은 어떤 것에도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그곳에는 이제 삼성도 현대도 LG도 광고를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여전히 그 자리에 수많은 광고가 있고 사람들도 여전히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대한민국 막강 세 광고가 왜 사라졌을까? 기업들이 돈이 없나? 세상 사람들은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은 심플하다. ‘이제 이 기업들은 더 이상 기업광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이다. 이미 전 세계 사람들은 이 기업들을 잘 알고 있고, 이 기업들은 긴 세월 자사의 제품을 통해서 그 기업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대한민국, KOREA라는 국가의 브랜드가 이미 전 세계 사람들에게 깊이 그리고 아주 명료하게 각인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은 좋다는 평가이다. 그것이 제품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이든지, 문화적 상품이든지 간에 다 좋다는 평가이다.


모국이 대접받고 힘이 세면 그 나라 사람들 또한 자연히 그 나라의 평가에 편승하면서 대우받는다. 영국에는 한국 사람들이 약 4~5만명 정도 살고 있다. 참으로 반갑게도 경주 사람들도 약 20여 명 정도 된다. 타지에서 모국 사람들만 만나도 반가운데 고향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더 큰 기쁨이다.


한국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에게 한국 자랑을 하지만, 경주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에게 경주 자랑을 한다. 경주가 고향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경주 자랑은 정말 많다. 사실 그 경주 자랑을 그 사람이 이해를 할 수 있을까? 경주가 로마도 아닌데 우리들의 경주 자랑을 그 사람들이 인정할까? 그런데 이런 우려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랑하는 당사자들에게는 자랑할 수 있는 그 사실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향 바라기 우리들은 ‘역사문화관광지 경주’ 혹은 ‘한국에 가면 반드시 가야 하는 도시 경주’라는 식의 그 평범한 멘트를 가장 편하게 영국 사람들에게 무조건 던지고야 만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필자로부터 그런 말들은 듣고 경주에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시 고민에 빠져 있다. 경주를 좀 더 편하게 그리고 더 많은 영국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다. 그래서 이곳에 살고 있는 경주 사람들이 더 잘 살고 더 자랑스럽고 더 멋지게 영국에 살고 있는 경주인이 될 수 있는 길을 말이다.


간혹은 그런 생각도 해 본다. 런던 시내 그 중앙 피카델리 서커스에 내 고향 경주의 광고가 선명하게 올라올 그날이 있을까? 아 저곳에 경주 불국사가, 첨성대가, 대릉원이, 황리단길이, 황남빵이 슬라이드처럼 휘날려 뽐내게 될 날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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