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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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부식
아일랜드 거주
칼럼리스트
지난해 4월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나름 서너 개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한 바 있다. 그중 하나가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중 토트넘(Tottenham Hotspurs)팀의 경기를 직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3월 말 런던 토트넘 홈에서 열리는 손 선수 경기를 잠시 미루고 국내에 들어와 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어떤 형태로든 참가하는 일이 또 하나의 선택지로 떠올랐다. 당시 필자가 지지하는 정당이 공천잡음과 당 대표 피습 등의 이슈로 지지율이 요동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에겐 작지만, 토트넘 경기 직관으로 소요되는 시간과 돈만 투자한다면, 그래서 이번 선거에 작지만 내 나름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기꺼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난 3월 중순 한 달 남짓한 휴가를 보내기 위해 런던행이 아닌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우선 ‘에어비엔비(Airbnb)’ 사이트를 통해 숙소를 예약하고 황남동에 베이스캠프를 쳤다. 덕분에 시간을 두고 경주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호사를 누렸다. 첫날, 천변을 따라 걷다가 황성공원을 거쳐 모교인 신라중학교 교정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다 공원 일대를 둘러본 필자는 3~40년 전의 울창한 소나무, 참나무는 간 데 없고 공연장, 축구 보조경기장, 아스팔트 도로가 들어서 있어 큰 상실감을 느꼈다. 소나무 숲의 울창함은 간데없고, 간신히 남은 솔숲 오솔길을 따라 김유신 장군 동상 아래, 목월 시인의 얼룩소 시비를 겨우 발견할 수 있었다. 소위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난개발을 진행하기보다 수많은 이야기와 추억이 담긴 소중한 이곳을 잘 보존했었더라면 나의 추억여행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쪽 정치세력만 지지해온 내 고향 경주는 정치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주지 못하고, 중앙정치의 들러리로 전락한 지 오래됐다는 한계를 절감했다.

그날 저녁 Airbnb에서 경주의 야경을 둘러보고 들어온 이태리 여행객 Lisa(여, 32)를 만났다. 방금 동궁과월지와 월정교 야경을 둘러본 그녀에게 경주에 대한 첫인상을 물으니 “현대식으로 개조된 왕궁터는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고도인데 왜 이렇게 식당과 빵집들이 많은지 의아하다”며 경주는 하루만 체류하고 내일 아침 다음 여행지인 부산으로 떠날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경주의 모습은 필자가 느끼는 경주에 대한 인상과 다르지 않았다. 난개발된 황성공원 지구, 경주의 멋과 아름다움이 잘 간직된 것이 아닌 값싼 외래자본으로 치장된 기와지붕과 맛집들, 외지인만 가득한 도심은 30여년 만에 찾은 내게 다소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일주일 뒤 지인이 출마한 지역구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하면서 침울했던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지난 21대 선거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신 후보이자 필자의 군 선배이면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분이다 보니 바닥 정서가 나쁘진 않은 곳이었다. 개소식 마지막 순서로 시민 세 분이 자원해서 지지발언 했는데, 필자는 500만 재외교포를 대신한다며 자원해서 발언대에 올랐다. 군에서 가다듬은 목소리로 5분 스피치를 했더니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멋진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었다. 

이번 4.10 선거에서 방관자가 아닌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선택했고 이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결과적으로 지지한 후보 중 한 분은 경주에서 지난 총선 대비 10% 정도 득표율을 끌어올려 선전했고 또 다른 한 후보의 경우 500표 차 이하로 낙선되는 뼈아픈 결과를 안았으나 험지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는 길’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훗날에...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시인의 표현처럼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지는 못했으나 이상과 꿈을 위해 달려온 그들의 열정과 노력은 우리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오래도록 사람들 사이에 이야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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