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의 영웅들을 기리며…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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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미 경주 아줌마
천 번의 호미질, 만 번의 붓질.

땅속의 영웅들을 찾는 손길은 조심스럽다.
열 밤만 자고 돌아온다던 아비가 딸의 품으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 새색시를 두고 얼른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던 새신랑이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 아들의 생환을 마지막까지 기다린 부모의 묘지로 아들이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 7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70여년.
어수선한 전장에서 유해마저 챙기지 못한 이들이 많다. 수많은 전장이 한반도 곳곳에 있었고 미처 챙기지 못한 주검이 세월의 흐름 속에, 땅속에 잠들어 있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아줌마가 10년 넘게 지원하던 해외아동 결연 아이가 갑자기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후원이 중단되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아동과 새롭게 결연을 신청하게 되었는데, 지원단체에서 혹시 원하는 나라가 있느냐란 물음에 ‘에티오피아’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몇 년 전에 우연히 아프리카에서도 한국전에 참전했고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은 것을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순간 들었나보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6·25를 잘 모른다. 2002 월드컵 3, 4위전에 만난 터키가 참전국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머나먼 아프리카에서도 참전했다는 것을 몰랐다. 우연히 본 프로그램이나 책 몇 권이 전부다. 나라마다 사정이 있고 국제정세에 따른 지원이 있었을지언정, 변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희생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작년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유해 발굴 작업 중에 ‘경주중학교’ 배지를 발굴했다. 그래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포항과 경주에서 학도병들이 지원했고 사진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유해의 가족을 찾았을까?

70년이다.
유해를 찾아도 가족의 유전자 자료가 없으면, 유해의 신원을 확인할 수가 없다. 대다수의 유해가 포탄으로 인해 뼈 일부분만 발견되기 때문이다. 으스러지고 깨진 조각으로만 남은 유해로 그들의 신분을 찾을 수는 없지만, 유전자 정보는 찾을 수 있다. 남은, 생존 가족들의 유전자 정보로 인해 유해의 신분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2000년부터 시작된 유해 발굴 작업. 다행히 경주시는 유가족 찾기 지원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쳐서 작년에 표창까지 받았다니, 아줌마는 뿌듯하고 다행이다 싶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유월이다. 일 년의 한 달은, 이 땅에서 수없이 많은 피가 뿌려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아흔이 넘은 한국전 프랑스 참전용사가 전우들이 있는, 제2 고향 대한민국에 묻히고 싶다고 한다. 그와 함께 전장을 누빈 전우들은 모두 전사했다.

2021년 칠곡의 한 초등학생이 미 엘리엇 중위의 유해를 찾아달라며 편지를 썼다. 호국의 다리에 있는 추모비를 통해 엘리엇 중위의 유해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칠곡 군수에게 편지를 썼고, 그 편지는 복사되어 칠곡 유해발굴 담당 장병들의 지갑 안에 담기게 되었으며 미 엘리엇 중위의 가족에게까지 알려진다. 그리고 올해 칠곡의 한 어린이집 친구들이, 올해 유해가 발견되어 가족의 품에 안기게 된 김희정 중위를 추모하는 편지를 유가족에게 보낸다. 관심이 관심을 부르고, 선한 영향력이 사회를 물들인 아름다운 사례다.

무더운 유월.
유해발굴감식단과 군인들은 오늘도 삽과 호미, 붓을 들고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뼛조각 하나를 발굴하기 위해 천 번의 호미질과 만 번의 붓질을 한다. 그들이 땅속의 영웅을 마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잊혀진 영웅을 기억하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은 과거의 전장을 돌며 땅속의 영웅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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