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식 시인의 경주인문학산책] 박노해 시인과 경주 남산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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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해 옥중시집 에세이

경주 남산 약수골은 금오봉으로 오르는 최단 코스이다. 초입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경주교도소 철책 울타리를 끼고 산행이 시작된다. 교도소 내부에는 계곡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울타리 너머 점심 식후 산책 중인 교도관에게 수감자도 산책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강한 어조로 ‘노’라고 말한다. 물었던 이유는 박노해 시인 때문이었다. 그의 사색은 독방 안에서만 가능했을까 아니면 산책의 시간도 가졌을까? 그의 사유는 어디서 나왔을까? 궁금했기에 급히 물었던 이유였지만 그는 분명 봄날 뻐꾸기 소리를 들었을 것이며, 저 멀리 단석산 위 맑은 가을 하늘과 흘러가는 흰 구름도 보았을 것이다. 비 오는 날엔 형산강으로 달려가는 약수골 계곡 물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상선암 목탁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는 밤엔 경주 남산 바위 속 마애불과 목 없는 불상들과도 대화도 나눴을 것이다.

경주 남산에 교도소가 있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외지인들이 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국립공원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립공원은 1968년도 지정되었고 경주교도소는 1973년 이곳에 설치되었다. 불국토 남산의 정기가 어린, 공기 좋고 산세 좋은 곳이여서 일까 이곳은 국내 최초 실버 교도소로 선정되어 65세 이상 고령 수형자들이 새로운 사회생활 시작을 준비하는 곳이다. 예전에는 초범 재소자와 미결수, 시국사범들이 주로 수형생활 하던 곳이다. 특히 박노해 시인은 이곳에서 7년 6개월을 독방에서 수감 생활했다. 그의 시집 『참된 시작』과 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이곳 수감 중에 출간한 책들이다. 내용 속 경주 남산이 많이 등장한다. 투사에서 사색가로 사상적 전향과 삶의 행로가 달라진 것은 경주 남산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가 쓴 글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이곳으로 오기 전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을 창립을 주도했고,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결성주동자로 7년여 수배 끝에 체포되었다. 24일간의 고문 끝에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경주교도소로 왔다.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진 박노해 시인은 박해받는 노동자(勞) 해방(解)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본래의 이름은 박기평이다.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은 출판사 풀빛에서 판화 본으로 세상에 나왔다. 27살 버스회사 수습 정비공 시절 나온 시집이다. 군사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불구하고 100만 부가 팔린 책이다. 『노동의 새벽』은 1980년대를 건너온 사람들은 모두가 기억할 만큼 유명한 책이다. 노동현장에 있던 사람은 물론, 문학인, 지식인에게도 강렬했던 한방이었다.

↑↑ 경주교도소 수감시설(출처: 경주교도소).


감은암(感恩庵)

경주교도소 한 평도 안 되는 0.75평, 침침한 관속 같은 독방을 살아있음의 감사와 은총이라는 뜻으로 스스로 ‘감은암(感恩庵)으로 지었다. 출가 수행자처럼 참구參究하며 이곳을 수행처로 삼았다. 그는 책에서 밝혔듯이 이곳에서 침묵, 절필, 삭발, 정진의 삶을 실천했다. 이곳에서 복역하다 나온 사람에 의하면 그는 새벽 3시에 일어나 명상하고 아침은 단식, 점심과 저녁은 채식하며 하루 10km 이상 교도소 운동장을 뛰며 심신을 단련했다고 전한다. 이곳에서 근무한 교도관은 그가 읽은 책이 족히 일 만권은 넘을 것이라고 했다. 운동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 책을 읽었다. 

독서와 사색이야말로 투쟁의 시간을 끝내고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첫째의 일일 것이다. 그가 읽은 책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윌든』, 노자와 장자를 읽었으며 그리고 붓다를 읽었다. 특히 그의 글에는 붓다를 만난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난다. 시와 산문에서 불교 용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수감생활 동안 빨리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알차게 보냈다. 출가승의 자세로, 구도자의 자세로 임했기에, 다 내려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곳 남산자락에서 그는 움켜쥐었던 주먹을 슬며시 내려놓으며 뜨겁게 흐르던 피를 식힐 수 있었고 외부로 향했던 시선을 자기 안으로 방향을 바꿀 수 있었던 곳이다.

세례명이 가스파르인 시인은 원래 신부가 꿈이었다. 자기보다 먼저 형이 신부가 된 카톨릭 집안이지만 그는 경주 남산자락에 암자를 하나 짓고 구도자의 삶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경주 남산에 자신을 묻은 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출발점이었다.

↑↑ 경주교도소 전경.(출처-경주교도소)


경주 남산에 나를 묻다

수감생활 중에 시집 『참된 시작』과 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책 속에는 경주 남산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수감생활 중이던 1993년 6월 출판된 시집 『참된 시작』(1993년 창비)은 1. 2부는 수감생활 중에 쓴 시, 3~4부는 《노동해방문학》과 무크지 《노동문학》에 발표했던, 수감 이전에 쓴 시로 구성되어 있다. 편차, 골곡이 다소 있는 구성으로 엮어져 있다. 시집의 첫 페이지는 시 「경주 남산 자락에 나를 묻은 건」으로 시작한다.

바람 찬 날이다/ 경주 남산/민들레 꽃씨는 바람에 날리고/ 바람 속에서/ 바람을 품고/ 천 년의 긴 호흡으로/ 경주 남산 자락에 나를 묻은 건/ 바람이었나 하늘이었나//

밤새 독거방 낡은 창은 덜컹대고/ 감시등 불빛 아래/유유히 떠도는 민들레 꽃씨처럼/ 내 영혼은/ 저문 들길 지나 낯선 산굽이를 돌아서는/ 출가승의 옷자락처럼 허허로운데/ 무겁구나 지나온 날/ 깊어가는 상처는 그칠 줄 모르고//

사흘 밤낮 몹시 아픈 날/ 스스로 삭발을 하고/ 찬 마룻바닥에 모로 누워/ 나직이 토해내는 신열의 부르짖음/ 무너졌다. 패배했다. 이렇게/ 흐르는 눈물 흐르는 대로/ 그래, 지금 침묵의 무덤을 파고/나를 묻는다/ 나를 암장한다//

숨죽인 호곡처럼/ 머리 푼 밤바람은 쓰러지는데/ 어둠 속으로 얼굴들이 흐르고/ 해가 길어지고 해가 짧아지고/이 슬 내리고 눈이 내리고/ 죄닦음이 다하고 눈 맑아진 어느 날/ 내 속 어딘가에 숨어있던 씨앗 하나/ 피투성이 목숨으로 품어온 씨앗 하나//

마침내 싹이 틀까/ 젖어드는 눈 감으면 벽 그림자/ 상처 속에 싹트는 씨앗 하나로/ 경주 남산 자락에 나를 묻은 건/ 아아 바람이었나 하늘이었나
- 시 「경주 남산 자락에 나를 묻은 건」 전문



이 시는 경주교도소로 이감 직후인 1992년 4월 시인의 누나가 접견창구에서 받은 시이다. 경주 남산에서 처음 쓴 시라 할 수 있다. 독방에 갇혀있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를 묻는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의 다짐이었다. 또 다른 시 「그해 겨울나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해 겨울 / 나의 시작은 패배였다’로 시작해서 ‘그해 겨울 /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라고 맺는다. 패배는 무기수라는 인간으로서의 패배와 사회주의 몰락이 가져온 이념의 패배는 볼 수 있다. 시집 속에는 「강철 새잎」, 「모과향기」, 「민들레처럼」 같은 생명과 생존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는 시들이 많다. 세월 지나도 많은 사람이 인용하며 사랑한 시들이기도 하다.


세 가지 신물信物-진평왕릉, 에밀레 종, 감은사 탑

이 시집에서 주목한 것은 따로 있었다. 마지막에 수록된 산문 「삶의 대지에 뿌리박은 팽창된 힘」은 펄쩍 놀라게 만든 글이다. 문화유산을 읽는 생각이 깊고 남다르다. 이를 통해 자신과 연결시켜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용을 다 인용하고 싶지만, 부분부분 몇 줄씩 발췌해 본다.

경주 남산 자락에 나를 묻으며 내 마음 깊은 곳에 세 가지 신물信物을 모셨습니다.

진평왕릉은 내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우쳐줍니다. 화려해야 눈에 들어오고, 장식이 많고 특출한 형상을 해야만 대단한 것으로 우러르는 이 시대의 천박한 안목으로는 진평왕릉의 격조가 잡히지 않습니다. (중략) 항시 나에게 열려있으라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옵니다. (중략)

에밀레종은 뼈아픈 내 침묵, 절필 이후에 새롭게 시작할 나의 시가 어떤 울림을 지녀야 하는지를 깨우쳐 줍니다. 장중하면 맑기 어렵고, 맑으면 장중하기 힘든 법이건만 엄청나게 큰 소리이면서 이슬처럼 영롱하고 맑은 울림. 참된 시는 날카로운 외침이 아니라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둥근소리‘여야 하지 않겠느냐, 길고 긴 여운을 지닌 소리여야 하지 않겠느냐, (중략)


감은사탑은 나의 참된 시작이 어떠해야 하는지, 내 사상과 운동이 무엇으로 쌓아져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단순하면서도 강인한 힘으로 생동하는 아름다운 모습. 결코 허세를 부리는 억지 상승이 아닌, 삶의 대지에 뿌리박은 팽창된 힘으로 유지되어 있어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엄청난 기품이 서려 있는 감은사탑. (중략)

진평왕릉과 에밀레종 그리고 감은사지 탑을 통해 자기 신념으로 비추어보는 통찰력이 깊고 아름답다. 최소한 경주사람만이라도 읽었으면 좋겠다. 이 땅의 노동해방을 부르짖던 사람이 차가운 독방에서 건져 올린 아름다운 문장은 붓다의 마지막 말을 곁들이며 끝을 맺는다.

경주 남산 자락에 파묻힌 이 침침한 관속같은 독방에서, 저는 매일같이 새벽 묵상 때마다. 진평왕릉과 에밀레종과 감은사탑을 내 마음속 부드러운 자리에 모시면서 성성한 화두처럼 궁글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부처 최후의 말씀) -1993년 5월 경주교도소에서


“모든 것은 변한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붓다의 유훈은 시 「불변의 진리」에 또다시 인용하고 있다. 붓다의 유훈을 자등명 법등명 自燈明 法燈明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표현은 또한 다른 글에서 보인다. 아마도 시인이 좋아하는 문장 이전에 끝없이 부지런히 정진 노력하려는 본인의 철학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의 가르침을 알아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살아온 삶의 가파른 내력들을 보면 얼핏 그런 생각이 든다.

그는 캄캄한 독방에서 붓다와 독대하고 참구하며 사유했다. 글 속에는 불교 경전을 탐독한 글을 쉽게 엿볼 수 있다. 경주 남산에 자락에서 그는 많은 것을 알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새롭게 시작할 시詩가 어떤 울림을 지녀야 하는지, 그것은 날카로운 외침이 아니라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둥근 에밀레종 소리를 닮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만 것일까. 일성원음一聲圓音의 소리를 통해 이근원통耳根圓通의 지혜를 얻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성이 있는 자는 여기 경주 남산에 오면 얼른 알아차리는지도 모른다. 영험한 남산 골짝마다 바위마다 억 만개 아승지겁阿僧祗怯의 마음들이 깃들어 있을 것이기에


사람만이 희망이다

1997년 옥중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122편 시와 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노해가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단지 외부의 적을 향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상과 투쟁에서 나아가 삶의 안쪽에서 자기 자신과도 치열하게 투쟁하는 진정한 혁명적 삶이라는 것을 깊이 깨우친 사람으로 사는 동안 알게 모르게 너무 많은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으로 다가옵니다”라는 故 김수환 추기경님은 일독을 권하는 추천사를 썼다. 내적 성찰이 담겨있는 책에는 자연과 생태주의, 여성, 농민에 대해 두루 이야기하고 있다. 책 제목에서 보듯 휴머니스트로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출판 선인세로 받은 일천만원을 북한동포돕기에 기부했다. 생각과 행동이 다르지 않음을 실천하는 사람답다.

1998년 7년 6개월 수감 끝에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8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이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됐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의 길을 뒤로하고 비영리단체 ‘나눔 문화’를 설립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나라, 가난한 나라를 가서 반전 평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존경받기엔 충분하다. 체 게바라가 혁명의 성공에도 푹신한 권력의 자리에 앉지 않고 다시 아프리카 밀림으로 들어갔던 것처럼 그는 현실 정치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세계의 분쟁지역과 오지를 헤메이며 사진으로 세상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평화 인권운동가로, 사진작가로, 꾸준히 활동하며 찍은 그의 사진은 ’라 카페 갤러리‘에서 상설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시집과 산문, 사진집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 제주 올레길에서 만난 그의 『걷는 독서』 속 한 문장은 지친 걸음에 휴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눔으로 실천하는 그의 삶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노동자, 얼굴없는 시인, 수배자, 혁명가, 777번 무기수, 사색가, 사진작가, 사상가, 평화 인권운동가 살아온 삶의 여정을 보면 입전수수入廛垂手, 화광동진和光同塵 같은 말이 떠 오른다. 경주 남산은 한 사람의 내적 성찰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경주 남산은 민초들의 산이고 평범한 민초들의 염원들이 깃들어져 있고 새겨진 산이다.

“꿈은 혼자서 꾸면 단순히 꿈에 그치지만, 모두가 함께 온몸으로 꾸면 현실이 된다” 경주교도소를 출소하던 날 경주 인근 식당에서 200여 명의 마중객 앞에서 한 말이다. 덕분에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알고 보면 혁명도, 사랑도, 사는 일이 다 한 밥상에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이 먹는 것,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닌 것 같다. 시인이 지은 따뜻한 밥 한 그릇 함께 먹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한 밥상에

또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침침한 독방에 홀로 앉아서
벽에 뚫린 식구통으로
식은 저녁밥을 받습니다
푸실한 밥 한 술 입에 떠넣고
눈을 감고 꼭꼭 씹었습니다
담장 너머 경주 남산 어느 암자에선지
저녁 공양 알리는 소리인 듯 종 울림소리
더엉 더엉 더엉
문득 가슴 받히는 한 슬픔이 있어
그냥 목이, 목이 메입니다
함께 밥 먹고 싶어!
사랑하는 그대와 함께
한 밥상에 둘러 앉아서
사는 게 별거야
혁명이 별난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늘 땅에 떳떳이
따뜻한 저녁밥을 함께 먹는 거지
나 생을 바쳐 얼마나 열망해 왔어
온 지상의 식구들이 아무나 차별 없이
한 밥상에 둘러 앉은 평화로운 세상을
아 함께 밥 먹고 싶어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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