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과 센 놈, 만만한 놈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9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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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영 작가
두두리출판기획 대표
“지금은 무조건 아프지 말아야 해!”

최근 사람들 사이에 이처럼 절박한 격려와 다짐이 없다. 의료대란, 의료공백이 현실인 시기에 큰 병원 신세질 만큼 아프거나 다치면 큰일이라는 위기의식이 퍼져 있다. 그런 한편 이 일이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도 짙어졌다. 3차 병원의 전공의들이 90% 가깝게 사직한 마당에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이 방치되고 제때 진료 받아야 할 중증 환자들이 시기를 놓쳐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니 그 1차적인 책임을 의사들에게 돌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의료대란을 5년 전 문재인 정권에서 예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반성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당시 문재인 정권은 의대생 숫자를 연간 400명씩 늘리는 계획을 세우고 의료계와 협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의료계의 극렬한 반발로 이 계획이 무산되었다. 당시 대부분 방송과 언론들은 문재인 정권을 맹비난했고 그런 분위기에 내몰린 국민들도 문재인 정권의 의료정책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걷어찼다.

윤석열 정권이 뜬금없는 의대생 2000명 증원정책을 내놓음으로써 똑같은 파국을 겪게 되었다. 400명도 어림없다고 퇴짜를 놓았던 의료계에 2000명을 들이밀었으니 이것은 대놓고 싸우자는 것과 다름없었다. 의사들 입장에서 문재인 정권 때 400명 증원이 기득권을 약간 침해당하는 기분이었다면 윤석열 정권의 2000명 증원은 대놓고 밥그릇을 빼앗기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사생결단, 죽자고 거부할 것이 뻔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의료대란이 길어질수록 방송과 언론은 꾸준히 의사들을 나무라고 국민들도 의사들의 무책임만 나무라는 형국이다. 윤석열 정권에 대해서는 심지어 ‘이번에는 절대로 물러서지 말고 의료계의 기득권과 난맥상을 뿌리 뽑아라’고 부채질하는 사람도 있다. 5년 전 문재인 정권은 의료파업이 일어나자 현재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고려해 정책을 철회했다. 미래의 안전을 위해 지금 당장의 위험을 감수할 배짱이 없었고 사방팔방에서 터져 나오는 ‘국민적 여론’을 받아들인 것이다.

반면 윤석열 정권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도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2000명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어이없게도 2000명일 때는 전국의 의과대학들이 그 인원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 의료계뿐 아니라 일반의 상식이지만 이런 것을 따지지도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누가 더 센 놈이고 누가 더 만만한 놈인가를 얼핏 떠올리게 된다. 세상살이가 참 묘해서 센 놈은 자신과 멀거나 상대하기 버겁고 만만한 놈은 자신과 조금 밀접하고 관계도 좋기 마련이다. 그래서 무슨 큰일이 생기면 센 놈에게는 찍소리도 못하고 만만한 놈에게 ‘네가 참아’라고 타이르거나 윽박지르기 일쑤다. 문제는 이럴 때 그 일의 당사자가 과연 무엇이 자기에게 합당하고 유리한가를 따지지 않고 진영논리나 눈앞의 해결만 따진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 때는 의사들이 센 놈이었다. 촛불로 일어선 문재인 정권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먼저 생각했지만 의사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에 매달렸다. 결국 국민들은 만만한 문재인 정권을 윽박질러 의료대란을 막았다.

지금은 어떤가? 윤석열 정권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정말 센 놈은 국민이어야 하는데 일시적으로 선거에서 이겼다고 자기 자신, 정권이 센 놈이라고 착각하는 형국이다. 그렇다 보니 만만한 놈이 이번에는 의료계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의사들의 파업을 집단 이기주의에 따른 집단행동으로 난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5년 전 자신들이 센 놈이라는 사실을 경험한 의료계가 호락호락 물러서겠는가?

이런 것들을 다 돌아보기에 지금 닥친 상황이 가혹할 만큼 아프고 어렵다. 어쩌겠는가? 5년 전 합당한 일을 팽개치고 만만한 놈을 두들겨 팬 잘못도 이참에 돌아봐야 하고, 지금 정권을 뽑아 세운 과오 역시 결국 국민이 져야 하지 않겠나? 누굴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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