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입니까?”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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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철 교수
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드디어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동의를 바라진 않지만, 올림픽은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가 열광하는 ‘제로섬 게임’의 전형이다. 올림픽이 막 끝난 시점에 좀 뜬금없는 주장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우리 선수의 승리가 상대방의 실수에서 비롯되는’ 방식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그래서 가위바위보가 인간 존엄에 더 부합하는 게임이라고 좋아했다. 주먹만 내기 때문에 주로 지는 편이지만 그래도 영원한 승자도 또 영원한 패자도 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야구, 축구, 사격이나 수영 등 우리를 흥분시키는 세상 모든 경기의 본질은, 승과 패를 다 더해(sum) 보면 제로(zero)로 수렴된다. 여기에 올림픽 특수를 그냥 넘겨 보낼 수 없는 나이키는 한 편의 광고로 도발을 시도했다. 결과는 그다지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파리 올림픽 개막에 맞춰 선보인 광고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상대 선수의 눈을 노려보는 도발적인 얼굴을 한 선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장면과 함께. “내가 나쁜 사람입니까(Am I a bad person)?” 쇠를 긁는 듯한 거슬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악당역으로 유명한 미국 배우 윌렘 데포(Willem Dafoe)였다.

경기가 막 시작되기 직전, 농구나 탁구 선수들의 비장한 모습을 교차로 비추며 광고는 그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남을 기만하고 이기적인 나는 그럼 나쁜 사람입니까?” 성우 목소리와 세계 일류 선수인 르브론 제임스(농구)나 음바페(축구)의 얼굴이 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우리(시청자)를 무찔러야 할 상대인 양 도발했다. “난 공감할 줄 모르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아!” 레슬링 선수(맥락상 유명 선수일 텐데 누군지 모르겠다)가 상대방의 목을 사정없이 조르고 있고, 림을 향해 상대가 쏜 공을 무자비하게 블로킹하며 그 과정에서 바닥에 쓰러진 상대 선수를 조롱하는 농구 선수(웸반 야마)의 웃는 모습이 화면을 채웠다.

쇳소리가 더욱 거슬린다. “난 제멋대로고 동정심 따윈 없지, 이런 내가 나쁩니까?” 미국 단거리 육상계의 마녀 샤캐리 리처드슨과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너무나 유명했던 코비 브라이언트의 일그러진 얼굴은 화면을 뚫고 나올 기세다. 나이키가 작정을 하고 승리의 여신을 악당으로 프레임을 덧씌울 의도가 아니라면 이쯤에서 반전이 나와야 할 텐데...

하지만 반전은 없었다. 광고는 이런 메시지로 끝을 맺는다. ‘누구나 오를 수 없는 승자의 자리(Winning isn’t for Everyone)’ 나이키에 대한 호감도나 판매실적이 예전 같지 않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승리의 여신 니케가 옛 인기를 이으려 ‘무자비한 악당’이라는 부캐로 거듭나려는 시도가 불편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이 광고에 달린 많은 댓글 중에는 “승리는 노력하고 결단력을 가지고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는(challenging yourself) 것이지, 남을 짓밟는(tearing others down) 게 아니”라고 꼬집는 댓글들이 다수다.

이번 파리 올림픽은 시작부터 많은 이슈를 몰고 왔다. 가령 센강 개막식에서 호화 대형 선수단을 보유한 미국이나 중국과 적은 수의 선수가 참여한 콩고의 등장만 해도 그렇다. ‘대형 크루즈’와 ‘모터보트’의 선명한 대조는 나이키 광고의 파리 올림픽 버전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올림픽 개회식 행사가 열린 트로카데로 광장에 오륜기(五輪旗)가 거꾸로 나부끼고 우리나라를 북한(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으로 소개하는 건 좀 큰 실수라고 봐주자. 이미 벌어진 해프닝이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이 어느 58세 중국계 탁구 선수에게는 데뷔전이었다. 놀랍고 반가운 뉴스였다. 탁구 신동에서 이젠 국가대표 에이스가 된 신유빈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아깝게 패했지만 먼저 상대 선수를 일으켜 세우고 껴안아 주던 장면이 좋았다. “상대가 나보다 더 뛰어났다”라고 당당히 인정하고 “더 배워 도전하겠다”는 성숙한 각오가 보기 좋았다. 양궁 10연패 장면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세계 사람들이 숨죽이며 지켜봤을 결승전에서 선수들이 휴식이나 낮잠 잘 때의 심박수(70~80 bpm)를 유지했다는 게 지금도 안 믿긴다. 승리는 남이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 거라는 강력한 증거다. ‘은메달밖에 못 땄다’고 외려 미안해하던 시대가 저물고 이제 선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상대방을 무찔러야 할 적으로 몰아가는, 나이키식 광고는 이제 전략을 바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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