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에 대하여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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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철 교수
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20대 승객은 휴대폰으로 문자나 전화하느라 바쁘고, 아줌마들은 택시에서 내릴 때까지 휴대폰 찾느라고 바쁘다”

 택시 기사님이 오랜 경험으로 하는 말씀이다. 웃자고 하는 소리겠지만 삶은 나이 듦의 과정이란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나이를 먹는다는 게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경험이나 지혜는 주름살 수만큼 깊이만큼만 생기는 결과치다. 와인처럼 숙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살면서 직면하게 될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무기들을 얻는다. 안정감도 특권이다. 젊음의 성마름이 다 지나고 푹 쉬어져야 삶의 불확실성에도 초연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인생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도 세월이 가져다주는 행복이다. 나이가 들면서 인생의 의미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청춘들은 외려 얻기 힘든 것들이다. 하나 더. 노년은 어쩌면 인생의 완성인 죽음을 준비하는 절대 시간이다. 푸르른 봄을 경험하고, 지난한 뙤약볕의 여름을 감내하며, 가을의 결실을 맛보고 맞는 겨울, 그 침전과 사색의 시간이 주는 진리라고나 할까.

분위기가 살짝 어두워지니 분위기 좀 바꾸자. 일본의 어느 어르신은 삶에 대한 태도를 이렇게 시로 표현했다. “자, 출전이다/ 안경 보청기/ 틀니 챙겨라(79, 남성)” 자못 비장하다. 적장을 노려보고 있는 노장의 기백마저 느껴진다. 다른 어르신의 작품은 또 어떤가. “분위기 보고/ 노망 난 척해서/ 위기 넘긴다(71, 여)” 위기를 그야말로 기회로 뒤집어 버린 되치기 기술이다. 어르신들만의 해학과 넉살 좋은 눙에는 여유가 녹아있다. “눈에는 모기를/ 귀에는 매미를/ 기르고 있다(67, 여)” 한때는 치료의 대상이었을 비문증(飛蚊症)과 이명(耳鳴)이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가족이 된 셈이다. 병을 ‘기르고’ 있다니 웃기지만 슬픈 이 상황을 이처럼 귀엽게 묘사할 수 있나 싶다. 오랜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이자 삶을 바라보는 통찰이다.

다들 고매한 철학자이신가? 그렇지는 않다. “종이랑 펜/ 찾는 사이에/ 쓸 말 까먹네(73, 남)” 지금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 들은 병명/ 「노환입니다」(65, 여)” 늙고 쇠약해져서 생긴 병이라는 의미의 노환(老患)은 사실 치료 대상이 아니다. 치료하고 고쳐서 낫는 병이 아니다. 우리는 치료해서 쫓아낼 병도 있지만 남은 생을 함께 하는 병도 있음을 배우게 된다. “연명치료/ 필요 없다 써놓고/ 매일 병원 다닌다(70, 남)” 그래도, 그럼에도 확인하고 싶어진다. 우리는 그만큼 앞뒤가 안 맞다. 그래도 괜찮다. 인생이 다 그런 거다.

저 먼 별이 빛날 수 있는 건 둘러싼 온 온 세상이 까맣기 때문이다. 어르신의 세상에도 희망은 있다. 잔잔한 행복은 멈추지 않는다. “똑같은 푸념/ 진지하게 듣는 건/ 오직 개뿐(69, 여)” 상상이 간다.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니(본인은 처음이라 생각하겠지만) 질려버린 가족들은 다 도망가고 없는데, 그 곁을 지키는 반려견은 처음 듣는 듯 듣고 있다. 사람만 친구가 되라는 법은 없다.

따뜻한 지혜와 넉넉한 웃음도 어르신들과 궁합이 좋다. “손가락 하나로/ 스마트폰과 나를/ 부리는 아내(51, 여)” 이제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알아챘나 보다. 그러느라 얼굴엔 주름꽃이 활짝 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살아있기에 지금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젊어 보이시네요」/ 그 한마디에/ 모자 벗을 기회 놓쳤다(76, 남)” 아, 팽팽한 긴장감이 예술이다. 머리숱이 없는 나도 이 느낌이 뭔지 알 것 같다. 자존심이라기보단 그저 낭만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그래도 괜찮다. 아슬아슬하지만 오늘도 살아 있으니까.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75, 남)” 그래서 더 집중하고 싶다. 오늘을 더 부여잡고 싶다. 몸이 그걸 못 따라와 주지만 나름 방법이야 만들면 된다. “손자 증손자/ 이름 헷갈려/ 전부 부른다(40, 여)” 여기에 소개한 작품들은 센류(川柳)라고 하는, 5-7-5 음수율의 짧은 일본 시(詩)다. 이들 모두는 일본 전국 유료실버타운 협회가 주체한 응모전에 뽑힌 작품들이다. 풍자와 익살은 기본이고 일상에서 발견한 작은 순간이나 감정을 포착해 내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 모든 게 오랜 세월 켜켜이 축적된 삶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 순간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 “LED 전구/ 다 쓸 때까지/ 남지 않은 나의 수명(78,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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