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논란에 대한 유감(遺憾)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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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부식 아일랜드 거주/칼럼리스트 |
뒤에 안 일이지만, 한강 작가는 1970년생, 90학번으로 나와 대학 동문이자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녔다. 군 위탁생으로 늦깎이 대학생이 된 나는 백양로를 거닐며 마광수 교수의 국문학 강의, 김동길 교수의 서양사 강좌를 들었다. 그리고 당시 민주화와 사회적 이슈들을 두고 한 공간에서 비슷한 고민을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면서 마음 한구석에 엉뚱한 동질감이 차올랐다.
한편, 노벨상의 수상에 즈음하여 일부 인사들이 대한민국 스웨덴 대사관에 달려가 역사 왜곡 작가, 대한민국 적화에 부역하지 말라며 시위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일보를 통해 등단한 한 여성 작가는 “노벨상은 중국에 줬어야 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더니 급기야는 “좌파 조카에게 절연 당했다. 이념이 피보다 진하다”(한국일보, 2024.10.15.일자)며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마치 수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받지 못한 한 여성 연기자가 야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현장 취재기자로부터 사진기 세례를 받았던 일을 연상하게 된다. 나의 눈에는 그저 시기 질투 정도로 보인다.
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슬라이고는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시인인 예이츠(W. B. Yeats)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던 곳이다. 이니스프리의 호도(Lake Isle of Innisfree), 샐리 가든(Sally garden), 두니 바위 위에서 소풍을 즐기던 추억을 담은 Fiddler of Dooney 등 주옥같은 시들의 주 무대가 되고 있다. 특별히 그가 죽기 몇 달 전 써 내려간 마지막 시 「벤 불벤(Benbullben)산 기슭에서」는 그의 유언이 되어 프랑스에 묻혀 있던 그의 주검까지 아일랜드 슬라이고로 옮겨와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있다. 매년 7월 말부터 2주간 예이츠 학술대회가 열려 전세계 문학도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예이츠의 노벨상 수상 100주년 행사가 크게 열리기도 했다.
경주는 어떨까? 나는 어릴 적 교내 백일장에서 입상한 뒤 황성공원에서 개최된 백일장에 매번 학교 대표로 참가했지만 상을 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지금도 공원 한쪽의 김유신 장군 동상 아래 박목월 시인의 시비와 김동리 작가의 비석이 놓여 있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 눈여겨본 유튜버에서 한강 작가의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가 TV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은 김동리 선생을 은사로 모셨다고 말했다. 그의 대표작 ‘아제아제바라아제’는 국제 영화제에서 입상할 정도로 유명한데 김동리 작가의 등신불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그렇게 보면 한강 작가의 작품도 그의 부친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보았다.
이런 즐거움을 느껴도 시원찮은데 작가의 작품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거나 폄훼하는 일부 움직임은 지혜롭지 못 해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노벨상 발표 5일만에 국내에서 100만부의 책이 팔렸다고 한다. 누군가는 한국인의 냄비근성이라며 비판할 수 있겠으나 잠시나마 전자 기기(gadget)를 멀리하고 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종이로 만든 책을 읽는 즐거움도 쏠쏠할 것 같다. 문학이 주는 가치에 공감하는 한민족 특유의 ‘흥’과 ‘낭만’을 살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그마한 그러나 중요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가 이념 논쟁이라는 소모성 논쟁에 휩싸여 있을 게 아니라 우리의 문학적 재능과 선배들이 이룬 문학적 업적들을 발견하고 재조명하는 작업, 문화강국으로서 우리의 진면목을 보여줄 때가 왔다고 본다. 10여 년 전 국제펜클럽 대회 경주개최를 즈음하여 경주의 어느 전통찻집에서 박목월 등 경주의 유명 시인의 시를 영문으로 번역한 책자를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다. 한강 작가는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희망의 특성은 그것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른다. 살찐 낙관보다 가냘픈 희망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작가의 이 말은 경제적·사회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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