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선행은 아이의 학습을 망친다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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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미 경주아줌마 |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학원에 다닌다. 몸으로 놀 시간도 친구도 없다. 학원과 학원을 이동할 때 혼자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학교는 심심하다. 선행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선생님이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는 학교가 재미없다.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를 보면 한심스럽고 바보 같다. 선행으로 모든 교과목을 익힌 아이들에게 학교는 심심하고 지루한 장소이고 고문의 시간일 뿐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선행이 끝나면 그다음 학년의 선행을 또 한다. 그렇게 학교는 점점 더 지루한 고문관이 되어간다.
그 시간에 복습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엄마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엄마가 아침 9시부터 저녁 3시까지 주 5일간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구구단 등 이미 내가 아는 것들에 관한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수업 시간에는 딴짓을 못 하고 꼼짝없이 앉아서 무조건 들어야 한다면 하루라도 재미가 있을까? 그런 과정이 일주일, 한 달, 일 년, 이 년이라면…, 엄마는 제정신으로 그 시간을 오롯이 보낼 수 있을까?
특히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하는 선행을 아줌마가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또한 선행의 의미를 많은 부모가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통 선행을,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면 과목을 이야기하고, 어디까지 무엇을 했냐고 재차 물어보면, 몇 학년 것까지 했다는 답이 돌아온다.
가슴이 답답하다.
아줌마의 답답함이 이해되지 않는가?
수학을 예로 들어보자. 초등 수학은 중학 수학의 단원을 쪼개서 학년별로 구분해놨다. 중학교 때부터는 학년별로 모든 단원을 다 익혀야 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단계가 높아진다. 일차방정식, 이차방정식, 고차방정식, 이렇게.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집합부터 통계까지 모든 단원을 다 익혔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어떤 단원은 재미있고 어떤 단원은 어려워한다. 물론 모두 다 잘하고 모두 다 재밌을 수도 있지만, 보통의 아이들은 호불호 단원이 생긴다. 수학을 엄청 좋아했던 아줌마도 싫어하는 단원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무시하고 모든 단원을 2~3년 선행하는 것은 아이의 성장을 그르치는 길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일차방정식을 좋아하면 한두 단계를 넘어 이차방정식, 삼차방정식까지 선행하는 것은, 아이의 호기심과 성장에 불을 넣는 것이다. 그런데 함수를 싫어해서 일차함수도 겨우겨우 하는 아이에게 한 단계 넘어선 이차함수까지 선행하는 것은 아이의 호기심과 성장 동력을 끊어버리는 게 된다.
올바른 선행은 아이의 학습 능력과 호기심이 결합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서울에서 많은 서울 내 대학 입학생들이 나온다는 것은 사실이다. 타지역 대비 수도권이나 도심권에서 지방보다 높은 비율로 신입생을 배출하지만, 그 원인은 선행이 아니다. 초등학교 의예과반이 생겼다느니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험을 보고 그 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다시 학원을 보낸다는, 그런 뉴스에 나오는 선행을 장려한 학원가에서 서울 내 대학이나 의예과에 더 많은 학생을 입학시켰다는 통계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부모들은 아이에게 무분별한 선행을 강요한다.
누구를 위한 선행인가?
무엇을 위한 선행인가?
제대로 된 교육철학을 갖고서 아이를 대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자문해봐라.
다른 아이들도 다 해서, 우리 아이만 뒤처질까 봐한다고 답한다면, 다시 생각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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