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超)연결 사회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11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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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철 교수 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
학생 등에서 요동치는 가방은 마침 열려 있었고 공교롭게도 그 사이로 삐져나온 빨간색 필통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뒤에서 걸어가던 나는 황급히 필통을 주워서는 뛰어가는 여학생 뒤통수에다 멈추라고 소리를 질렀다. 말도 안 되는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면서...
그 짧은 순간, ‘와, 이거 청춘 드라마 한 편 찍는 거 아냐?’ 하는 상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필통을 급하게 낚아채 가는 여학생 얼굴이 기대(?) 이상으로 못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화는 내지 마, 학생. 나도 만만치 않았잖아) 그럼 그렇지, 갓 제대한 나에게 세상은 순수하고 로맨틱한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필통을 건네주는 그 짧은 순간에 퍼뜩 떠오르는 생각은 지금도 선명했다. ‘이 필통 주워주려고 나는 제대를 해야 했고, 또 그전에 시간을 벌려고 재수를 해야 했나?’ 한마디로 우연(偶然)을 가장한 필연(必然)이었다. 보이지 않는 선으로 잇고 또 연결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흔한 일상이다.
사이즈가 훨씬 큰 사례가 이번에 발생했다. 올 7월이 반 정도 지나갈 무렵, 마이크로소프트(MS) 사의 클라우드 서버에 오류 발생으로 전 세계는 마비가 되었다. 사소한 오류인데 결과는 참담했다. 미국, 호주 항공편이 지연되거나 결항되었고, 기차나 버스 등 다른 운송 수단들도 서버렸다. 영국 방송사는 생방송을 보낼 수가 없었다, 그뿐 아니라 은행, 병원들, 그리고 증권회사도 업무가 올스톱되어 버렸다.
그 짧은 순간, ‘와, 이거 청춘 드라마 한 편 찍는 거 아냐?’ 하는 상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필통을 급하게 낚아채 가는 여학생 얼굴이 기대(?) 이상으로 못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화는 내지 마, 학생. 나도 만만치 않았잖아) 그럼 그렇지, 갓 제대한 나에게 세상은 순수하고 로맨틱한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필통을 건네주는 그 짧은 순간에 퍼뜩 떠오르는 생각은 지금도 선명했다. ‘이 필통 주워주려고 나는 제대를 해야 했고, 또 그전에 시간을 벌려고 재수를 해야 했나?’ 한마디로 우연(偶然)을 가장한 필연(必然)이었다. 보이지 않는 선으로 잇고 또 연결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흔한 일상이다.
사이즈가 훨씬 큰 사례가 이번에 발생했다. 올 7월이 반 정도 지나갈 무렵, 마이크로소프트(MS) 사의 클라우드 서버에 오류 발생으로 전 세계는 마비가 되었다. 사소한 오류인데 결과는 참담했다. 미국, 호주 항공편이 지연되거나 결항되었고, 기차나 버스 등 다른 운송 수단들도 서버렸다. 영국 방송사는 생방송을 보낼 수가 없었다, 그뿐 아니라 은행, 병원들, 그리고 증권회사도 업무가 올스톱되어 버렸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딱 하나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윈도 운영체제(OS)를 사용하는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대규모 네트워크의 위험성과 중요성을 한방에 이해시켜 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건이 터진 지 이틀 만에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성명을 통해 혼란의 책임은 자사가 아닌 업데이트 오류를 야기한 특정 보안기업(CROWDSTRIKE)임을 밝혔지만 ‘자동차에 오염된 연료를 넣어 엔진이 영향을 받듯이’ 사소한 오류도 IT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자백했다. 이번 사태를 뉴욕 타임스는 ‘세계 경제가 특정 소프트웨어에 얼마나 취약하게 의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충격적 사례’라고 꼬집었다. 부정적 사례이긴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야흐로 초(超)연결 사회임을 선언한 셈이다.
전 세계 퍼스널 컴퓨터(PC)의 과반이 윈도 체재라면 우리에게는 카카오톡이 있다. 버스든 백화점이든 사람이 모인 곳에서 “카톡!” 하고 알람이 울리면 일제히 각자 핸드폰을 집어 든다. 달라진 모습이다. 예전 같았으면 누가 진동모드로 안 바꾸었는지 그 매너 없는 얼굴이라도 보자는 심산이었다면 이젠 완전히 달라졌다. 앱(app) 하나가 우리의 소통 체계를 바꾸어놓았다. 이렇게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는 새로운 기준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고, 이를 통한 우리의 연결망은 더욱 촘촘하고 견고해졌다.
페이스북(2004), 트위터(2006), 그리고 요즘 애들의 주요 놀이터 인스타그램(2010)에 이르기까지 SNS 등장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세계인들의 소통 문화를 전격적으로 바꿀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인간의 뇌 구조도 한몫하지 않나 싶다.
사건이 터진 지 이틀 만에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성명을 통해 혼란의 책임은 자사가 아닌 업데이트 오류를 야기한 특정 보안기업(CROWDSTRIKE)임을 밝혔지만 ‘자동차에 오염된 연료를 넣어 엔진이 영향을 받듯이’ 사소한 오류도 IT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자백했다. 이번 사태를 뉴욕 타임스는 ‘세계 경제가 특정 소프트웨어에 얼마나 취약하게 의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충격적 사례’라고 꼬집었다. 부정적 사례이긴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야흐로 초(超)연결 사회임을 선언한 셈이다.
전 세계 퍼스널 컴퓨터(PC)의 과반이 윈도 체재라면 우리에게는 카카오톡이 있다. 버스든 백화점이든 사람이 모인 곳에서 “카톡!” 하고 알람이 울리면 일제히 각자 핸드폰을 집어 든다. 달라진 모습이다. 예전 같았으면 누가 진동모드로 안 바꾸었는지 그 매너 없는 얼굴이라도 보자는 심산이었다면 이젠 완전히 달라졌다. 앱(app) 하나가 우리의 소통 체계를 바꾸어놓았다. 이렇게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는 새로운 기준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고, 이를 통한 우리의 연결망은 더욱 촘촘하고 견고해졌다.
페이스북(2004), 트위터(2006), 그리고 요즘 애들의 주요 놀이터 인스타그램(2010)에 이르기까지 SNS 등장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세계인들의 소통 문화를 전격적으로 바꿀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인간의 뇌 구조도 한몫하지 않나 싶다.
뇌는 사회적(S) 교류(N), 글자 그대로 SNS의 최적화된 모델로 진화되어 온 핵심 영역이다. 생각해 보자. 험한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호모사피엔스는 무리 지어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무리에서의 이탈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회성은 생존에 있어 무엇보다 우선하는 덕목이다. 오늘날 사피엔스들이 알림 문자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남의 SNS을 보며 울고 웃는 건 어쩌면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몸부림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SNS가 인간의 관계망 형성을 명분으로 그 전통적 방식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카톡 같은 문자형 대화방식은 얼굴 표정이나 손짓 등 비언어적 요소는 전혀 전달하지 못한다.
앞에서 언급한 뇌로 표현하자면 메시지 파악을 위해 좌뇌는 필요한데 비언어적 정보를 해독하는 우뇌는 할 일이 없어졌다는 의미다. 초연결 사회를 실현하고자 뇌의 반을 사용할 수 없다니 우리 뇌가 진화상 오류(!)인 웃지 못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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