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식 시인의 경주인문학산책] 경주 국보탑 순례

경주의 석탑… 불국토 향한 역사와 예술혼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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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항리 5층석탑(출처: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에서 국보로 지정하고 있는 석탑 29기 가운데 9기가 경주에 소재 하고 있다. 무려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신라의 서라벌은 말 그대로 불국토를 꿈꾼 도시였다. 부처님의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흔적은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서라벌 땅에 조성했던 칠처가람(七處伽藍)을 들 수 있다. 부처님의 정법을 실현하기 위한 칠처가람은 대부분 왕궁 가까이 터 좋은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경주 남산은 평민들이 꿈꾸던 불국토의 공간이었다. 골짝마다 바위마다 불상을 새기거나 앉혔다. 불국사도 법화경을 바탕으로 건축되었고 설명이 가능하다. 

석굴암 또한 불교세계의 이상향을 축약한 곳이다. 그런가하면 왕관을 벗고 머리를 깎은 대왕도 있고 왕비도 있다. 비단옷을 버리고 먹물 옷으로 갈아입은 왕자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신라 멸망 후 경주를 찾은 문사들의 글에는 민가와 절이 반반이었다는 표현이 곧잘 등장한다. 결코 과장된 표현만은 아니었다.

국보로 지정된 탑을 마주하면 지나간 역사가 보이고 예술혼이 보인다. 탑 하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해도 하루가 부족할 만큼 다양한 스토리가 존재한다. 아홉 개의 탑을 천천히 찾아가본다. 수박 겉핱기식으로 둘러본다면 하루면 족하겠지만 마음으로 본다면 열흘도 모자랄 것이다.

↑↑ 감은사지 동·서탑(출처:국가유산청)


지정 순서별

국보 1호로 상징성을 지녔던 숭례문(남대문)이 방화로 소실된 이후 국보 몇 호라는 숫자는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몇 가지로 추정해 볼 수는 있지만 말함보다는 말 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경주지역의 국보로 지정된 석탑을 지정 일자 순은 아래와 같다.

① 국보 20호 : 불국사 다보탑
② 국보 21호 :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③ 국보 30호 : 분황사 모전석탑
④ 국보 37호 : 황복사지 삼층석탑
⑤ 국보 38호 : 고선사지 삼층석탑
⑥ 국보 39호 : 나원리 오층석탑
⑦ 국보 40호 :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⑧ 국보 112호 :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⑨ 국보 236호 : 장항리 동서 오층석탑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이 제일 먼저 지정되었고, 장항리 오층탑이 가장 나중 지정되었다. 나원리 5층석탑과 장항리 5층석탑은 절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며 마을 이름을 따서 부르고 있다, 두 탑은 경주에서는 보기드문 5층 석탑이다. 경주에 산재한 탑들은 대부분 3층 석탑들이다.


건립 시기별

① 분황사 모전석탑(선덕여왕 3년, 634년)
②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신문왕 2년, 682년)
③ 고선사지 삼층석탑(원효스님 입적이전 686년)
④ 황복사지 삼층석탑(효소왕 원년 692년)
⑤ 불국사 다보탑 (경덕왕 10년, 751년)
⑥ 불국사 석가탑 (경덕왕 10년, 751년)
⑦ 장항리 동서 오층석탑(8세기 전반 추정)
⑧ 나원리 오층석탑(8세기 중후반 추정)
⑨ 정혜사지 십삼층석탑(9세기 추정)

건립된 시기순은 위와 같다. 정확하게 연도가 판명이 되는 탑과 그렇지 않은 탑도 있다. 몇 기는 탑의 양식과 역사적 사건과 기록에 따라 건립년도를 추정했다. 자료는 없으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 정혜사지 13층 석탑(출처: 국가유산청)


크기 별

①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13.4m)
② 불국사 다보탑(10.4m)
③ 고선사지 삼층석탑(10.2m)
④ 나원리 삼층석탑(9.76m)
⑤ 분황사 모전석탑(9.3m)
⑥ 장항리 동서 오층석탑(9.1m)
⑦ 불국사 석가탑(8.2m)
⑧ 황복사지 삼층석탑(7.3m)
⑨ 정혜사지 십삼층석탑(5.9m)

참고로 크기 순으로 적어 보았는데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으면 싶다. 감은사지 동·서탑 앞에 서면 신라 최고 전성기의 기개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남자들이여 감은사지로 가라 이왕이면 달밤에’ 이렇게 권유하고 싶다. 호연지기를 키울만한 곳이다.


위치별 (동→서,북)

①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② 장항리 동·서 오층석탑
③ 불국사 석가탑
④ 불국사 다보탑
⑤ 고선사지 삼층석탑
⑥ 황복사지 삼층석탑
⑦ 분황사 모전석탑
⑧ 나원리 오층석탑
⑨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석탑을 순례하는 여행자들을 위해서 위치별로 이동 코스를 정리했다.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탑의 위치는 나원리 5층 석탑과 정혜사지 13층 석탑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쪽에 있다. 왕궁을 중심으로, 또는 시내를 중심으로 동쪽에 많다. 특히 토함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있다. 분황사 모전석탑, 황복사지 석탑, 그리고 황룡사 9층목탑이 소실되지 않았더라면 최고의 탑, 최대의 탑을 지척의 거리에서 한꺼번에 만나 볼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쉽다.

↑↑ 나원리 5층 석탑.


탑, 불교 최초의 건축물

탑은 산스크리트어로 스투파에서 음역된 것이다. 탑은 붓다 열반 후 진신사리를 8개의 탑으로 나눠 세워진 최초로 건축물인 만큼 중요한 곳이다. 지금은 법당 중심의 예배이지만, 그 이전에는 탑이 중심 역할을 했다. 탑 하나 하나마다 깃든 설화와 스님들에 얽힌 이야기를 다 말할려면 열흘도 더 걸리겠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거나 찾는 발걸음이 많지 않은 탑을 중심으로 찾아가 본다.

[황복사지 삼층석탑]
652년에 왕족이던 의상대사가 출가한 사찰이며, 황복사에서 경문왕의 화장을 치렀다는 내용과 효소왕이 신문왕의 명복을 빌었던 사찰하는 전해지는 곳으로 볼 때 왕실과 밀접한 사찰로 짐작된다. 경주의 절 가운데 황룡사, 분황사, 황복사 등 ‘황’자가 들어간 절이 대개 그러한 사찰이다.

[나원리 오층석탑]
세원이 흘러도 이끼가 끼지 않는다하여 일명 ‘나원백탑(羅原白塔)’으로 불린다. 예로부터 신라 3기8괴(三奇八怪)의 하나로 여겨져왔다. 1, 2층을 지붕돌과 몸돌을 제외한 나머지 층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독특한 탑이다. 화강암 석질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가져와서 만들었다. 1996년 개·보수 시 금동사리장엄구, 무구정경이 나왔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짜임새 있는 구조와 비례가 아름다운 키가 큰 이태리 청년을 닮은 탑이다.

[장항리 동·서 오층석탑]
절터의 원래 이름과 연혁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자료나 구전조차 없다. 장항리 동·서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유일의 오층 쌍탑 가람이다. 1923년 4월 사리 장엄구를 탈취할 목적으로 광산에서 쓰이던 폭약으로 서쪽 석탑과 불상을 폭파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불운한 상처의 흔적을 가진 슬픈 탑이다. 탑에는 금강역사상, 도깨비 조각 등 다른 탑에서 볼 수 없는 조각을 만나 볼 수 있다. 김명리 시인의 대표작이자 시집의 제목이 되기도 한 「적멸의 즐거움」이 태어난 곳이다.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정형에서 벗어난 이형석탑(異形石塔) 형태의 독특한 양식의 탑이다. 옥산서원 독락당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회재 이언적이 이 절에서 공부했다는 이야가 전해진다. 목탑 양식을 지닌 13층 탑이지만 규모가 크지 않다. 국보탑이지만 탑을 보러오는 사람은 적다. 옥산서원과 독락당을 찾아왔다가 덤으로 구경하고 가는 탑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선사지 삼층석탑]
원효가 주석했던 절이다. 1975년 덕동댐 수몰로 인해 박물관 뒷뜰 한쪽 구석에 실향민 모습으로 서 있다. 모조탑으로 민들어진 석가탑, 다보탑에 밀린 모습이라 씁쓸하다. 가품에 밀린 진품의 비애를 학자들과 관계자들은 알까? 조금 안타깝다. 필자는 박물관 갈 때마다 고향 어른 찾아뵙듯 안부를 묻고 오는 탑이다. 수몰로 인해 친구들이 뿔뿔이 전학을 갔듯이 이 탑도 고향 떠난 실향민과 다름없다.


탑, 붓다의 상징

경주에는 탑이 너무 많아서 상대적으로 존재가치를 인정 못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방법은 지역민이 더 많이 사랑해 주고 보살펴야 한다. 탑을 만들고자 했던 간절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염원했던 붓다의 나라, 그 터전 위에 육신과 영혼을 물려받은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다. 혹시라도 텅 빈 절터의 탑을 찾는다면 우측으로 탑을 끼고 세바퀴 돌며 축원하기를···. 옛 시절에는 탑돌이가 일상이었고 성행했다.

우요삼잡(右繞三匝, 탑(부처님)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세바퀴를 도는 예경) 행위 자체가 붓다에 대한 예경이자 축복과 성취를 기원하는 행위이다.



 




전인식 시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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