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절대적인 행복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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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미 경주 아줌마 |
그런데 많은 이들은 상대적인 행복을 느낀다. 남들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은 의식주가 해결되어도 불행함을 느낀다. 그래서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의 행복 지수는 낮다. 선진국보다 가난한 나라의 행복 지수가 높은 이유다. 물론 전쟁 중이거나 초 빈국은 제외다.
2020년대의 대한민국은 1970년대의 대한민국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두 시대의 행복 지수를 조사한다면 1970년대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 지수가 높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빈부격차가 생기고 미디어의 발달과 인터넷, 스마트폰의 개발은, 알려고 하지 않아도 굳이 알게 되는 다른 이들의 삶과 나를 더욱 비교하게 되고 나의 자존감도 행복 지수도 박살을 내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갖고 싶었던 것을 구매하게 되었다고 하자. 몇 년을 기다리고 고대했던 소장의 기쁨은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감은 생각만큼 길지 않다. 또한 그 행복의 깊이는 또 어떤가? 몇 년을 저축하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소장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누가 더 고가의, 최신상을 구매한다면, 나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줬던 상품에 대한 애정은 금세 식는다.
그것이 어떤 물품이 되었든, 고가의 자동차든, 보석이든, 집이든 문제의 본질은 같다.
더 좋은 것과 비교하는 순간, 남과 비교하여 얻은, 상대적인 행복은 오히려 불행이 된다.
아줌마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이렇다.
내 인생에 찾아온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육아 지옥이던 시절, 단 서너 시간만이라도 잠 좀 자봤으면 하는 나날의 연속이지만,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엄마라고 눈 맞춰주는 아이의 눈을 바라볼 때.
이제는 좀 컸다고 이부자리도 정리하고, 빨래도 정리하고, 나름의 역할을 해내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세 아이가 기분이 좋다고 꺼지지 않는 체력으로 계속 조잘대는 모습도, 온 식구가 막춤을 추는 순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각자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거실 구석구석을 차지한 모습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순간에 가장 많이 행복한 순간순간을 깨닫는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오늘이지만, 특별할 것이 없는 하루지만, 연한 녹색을 띤 나뭇잎을 보게 될 때도 행복을 느끼고, 사계절을 창밖의 논을 바라보며 평온함을 느낄 때, 책에서 가슴을 울리는 한 줄의 문구에도 행복감이 밀려든다. 대체로 고요의 순간, 평온의 순간, 깨달음의 순간에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행복감을 온몸으로 느낀다.
아줌마의 행복은 절대적이다.
비교 대상이 없다.
상대적인 행복의 기준은 ‘남과의 비교’다
비교는 물건을 구매할 때 가성비나 품질을 따질 때 주로 사용하는 생활의 지혜다. 그런데 그것을 행복에 갖다 대면 상대적인 행복이 생겨나고, 쉽게 파괴되는 순간의 행복감만 있을 뿐이다. 다른 이의 성공이나 뜻밖의 행운은 나의 행복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진정한 축하보다는 시기와 질투를 하게 된다.
절대적인 행복은 오롯이 나의 기준이다. 그래서 나의 행복이 다른 이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아줌마는 생각한다.
상대적인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니라고!
진짜 행복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상대적인 행복은, 행복의 탈을 쓴 쾌락이 아닐까?
무엇보다 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행복이라면 ‘노-땡큐’다.
아줌마는 오늘도 행복하다.
시끌벅적한 아침이 지나고 아줌마만의 고독이 시간이 찾아왔다.
밀린 일들을 해야 하지만, 커피 한 잔과 고요의 순간은 또 행복이다.
오늘은 또 어떤 순간의 행복들이 찾아올까?
행복이란 무엇인가?
갖고 싶었던 것을 구매하게 되었다고 하자. 몇 년을 기다리고 고대했던 소장의 기쁨은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감은 생각만큼 길지 않다. 또한 그 행복의 깊이는 또 어떤가? 몇 년을 저축하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소장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누가 더 고가의, 최신상을 구매한다면, 나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줬던 상품에 대한 애정은 금세 식는다.
그것이 어떤 물품이 되었든, 고가의 자동차든, 보석이든, 집이든 문제의 본질은 같다.
더 좋은 것과 비교하는 순간, 남과 비교하여 얻은, 상대적인 행복은 오히려 불행이 된다.
아줌마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이렇다.
내 인생에 찾아온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육아 지옥이던 시절, 단 서너 시간만이라도 잠 좀 자봤으면 하는 나날의 연속이지만,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엄마라고 눈 맞춰주는 아이의 눈을 바라볼 때.
이제는 좀 컸다고 이부자리도 정리하고, 빨래도 정리하고, 나름의 역할을 해내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세 아이가 기분이 좋다고 꺼지지 않는 체력으로 계속 조잘대는 모습도, 온 식구가 막춤을 추는 순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각자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거실 구석구석을 차지한 모습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순간에 가장 많이 행복한 순간순간을 깨닫는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오늘이지만, 특별할 것이 없는 하루지만, 연한 녹색을 띤 나뭇잎을 보게 될 때도 행복을 느끼고, 사계절을 창밖의 논을 바라보며 평온함을 느낄 때, 책에서 가슴을 울리는 한 줄의 문구에도 행복감이 밀려든다. 대체로 고요의 순간, 평온의 순간, 깨달음의 순간에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행복감을 온몸으로 느낀다.
아줌마의 행복은 절대적이다.
비교 대상이 없다.
상대적인 행복의 기준은 ‘남과의 비교’다
비교는 물건을 구매할 때 가성비나 품질을 따질 때 주로 사용하는 생활의 지혜다. 그런데 그것을 행복에 갖다 대면 상대적인 행복이 생겨나고, 쉽게 파괴되는 순간의 행복감만 있을 뿐이다. 다른 이의 성공이나 뜻밖의 행운은 나의 행복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진정한 축하보다는 시기와 질투를 하게 된다.
절대적인 행복은 오롯이 나의 기준이다. 그래서 나의 행복이 다른 이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아줌마는 생각한다.
상대적인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니라고!
진짜 행복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상대적인 행복은, 행복의 탈을 쓴 쾌락이 아닐까?
무엇보다 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행복이라면 ‘노-땡큐’다.
아줌마는 오늘도 행복하다.
시끌벅적한 아침이 지나고 아줌마만의 고독이 시간이 찾아왔다.
밀린 일들을 해야 하지만, 커피 한 잔과 고요의 순간은 또 행복이다.
오늘은 또 어떤 순간의 행복들이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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