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찾아서...
서면 도리1리... 도의(道義)를 소중하게 여겨 ‘도리’
경주신문 기자 / 2005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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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찾아서...
서면 도리1리...
도의(道義)를 소중하게 여겨 ‘도리’
2천여 년 전부터 마을 이루어
도리는 아화에서 921번 지방도를 따라 고경방면으로 약 4km 정도 들어가면 시원하게 펼쳐진 심곡저수지(일명 도리못)의 상류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영천 북안과 경계를 이루는 고깔산[394m 관산(冠山), 고관산(高冠山)]과 구미산 자락에 해당하는 이내산[260m 인내산, 인출산(印出山)]이 감싸는 아늑한 골짜기에 해당하는 이 마을은 신라건국 이전인 약 2천여 년 전부터 이미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옛날부터 주민들이 향회(鄕會)를 열어 모든 일을 서로 의논하며 도의(道義)를 지키고 살았다는 뜻에서 ‘도의(道義)’, ‘도실’, ‘도질(道叱)’, ‘도동(道洞)’으로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도리(道里)’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물 좋고, 인심 좋고, 도의(道義)를 소중하게 여겼던 이 마을은 최근까지도 향회가 열렸으며 도리향회는 곧 경주향회로 불릴 만큼 그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도(道)의 고장이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최근까지 이곳을 후곡(後谷)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이것은 도실, 도골이 돗실, 돗골로 불리다가 다시 됫골이 뒷골로 변해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 봄배추와 고추 재배
도리는 심곡지가 끝나는 곳에서 현재 농협연수원 건설공사가 한창인 동쪽 골짜기에 펼쳐진 오밭골, 중마을, 웃마을이 1리를 이루고 있고, 이곳에서 고경방면(황수탕)으로 넘어가는 도로를 따라 펼쳐진 고래[회리(回里)], 아골[아리(牙里)], 마채[하리(下里)]가 2리를 구성하고 있다.
도리1리 총 87세대 185명으로 남자 93명, 여자 92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봄배추와 고추를 많이 재배하고, 그 외에는 논농사에 의존하고 있다. 웃마을 골짜기에는 우렁이농법으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다.
300년 된 당나무의 울음소리
* 오밭골[오전동(五田洞)]은 도리1리 마을회관이 있는 첫 부락이다. 산골마을이지만 그나마 밭이 많은 넓은 지역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마을에는 27가구가 살고 있다.
* 중마을은 도리의 한가운데 있는 마을로 ‘중말’, ‘중리(中里)’라 불렀다고 한다. 경주김씨 집성촌으로 30가구 중에 경주 김씨가 24가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동몽교관(童蒙敎官) 김지련(金之鍊)의 빈민구제 등 자선사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경주김씨 후손들이 건립한 *관인정(冠印亭)이 이 마을에 있다.
* 웃마을은 돗실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웃마을’ 또는 ‘상리(上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어귀에는 경주시 보호나무로 지정된 수령 300년이 넘은 당나무(느티나무) 4그루(한 그루는 이미 고사상태)가 서 있다. 옛날에 홍수로 인하여 이 마을 중심에 있던 이 당나무가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떠내려갔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또 이 마을 위쪽에는 효청못이라는 큰 못이 있다. 곡산한씨의 집성촌으로 20가구가 생활하고 있다.
∎ 30년간 방치한 은행나무 밭
이 마을에는 30년 전에 조성한 은행나무 묘목장이 마을 곳곳에 있다. 임협시험장에 근무했던 김 모씨가 심은 것인데 30년이 넘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바람에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인근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길게 뻗은 뿌리들이 땅기운을 다 빨아들여 주위가 메말라간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이 여러 차례 대책을 요구했지만 방치되어 있어 마을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고 한다. 마을을 들어서면서 은행나무숲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지나치면 결국 주위에 피해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을 진입로가 좁아서 차량의 교행은 물론 버스진입이 어려워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고 한다. 또 산골마을이라 휴대전화가 잘 안된다고 한다.
∎죽으나 사나 일만 해
이 마을 최고령자는 죽으나 사나 일밖에 모르셨다는 웃마을의 한동창(88) 할아버지와 영천 소내[우천(牛川)]에서 18살에 이곳으로 시집와 평생을 살아온 조기선(84 소내댁) 할머니 부부이다.
슬하에 5남 1녀를 두고 평생을 함께했건만 아직도 같이 앉는 것조차 부끄러운지 다정하게 손잡고 포즈를 취해달라는 기자의 주문에 영 어색해 했다. 자그마한 체구에 아주 맑은 얼굴을 간직한 두 노부부는 채식위주로 규칙적으로 적게 먹는 게 건강의 비결이라고 한다. 취재에 협조해주신 김억수(51) 이장님을 비롯한 마을 어른들과 마을유래에 대해 말씀해주신 권택수(88 도리2리)할아버지와 김칠헌(76) 노인회장님께 감사드린다. 특히 이 마을의 영원한 새댁으로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알뜰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희숙(47) 부녀회장의 따뜻한 차만큼이나 따뜻한 환대에 감사드린다.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개울이 마을 앞을 흐르는 도리1리는 아직 사람들 간에 인정이 살아있는 조용하고 따뜻한 마을이었다.
삼성프로야구단 김재하(53) 단장과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김동일(36)씨가 이 마을 출신이다.
∎ 마을주요인물
이장 김억수(51)
새마을지도자 한성기(49)
부녀회장 이희숙(47)
노인회장 김칠헌(76)
도움말씀 권택수(88)
최고령자 부부 한동창(88), 조기선(84 소내댁)
서면 도리1리...
도의(道義)를 소중하게 여겨 ‘도리’
2천여 년 전부터 마을 이루어
도리는 아화에서 921번 지방도를 따라 고경방면으로 약 4km 정도 들어가면 시원하게 펼쳐진 심곡저수지(일명 도리못)의 상류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영천 북안과 경계를 이루는 고깔산[394m 관산(冠山), 고관산(高冠山)]과 구미산 자락에 해당하는 이내산[260m 인내산, 인출산(印出山)]이 감싸는 아늑한 골짜기에 해당하는 이 마을은 신라건국 이전인 약 2천여 년 전부터 이미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옛날부터 주민들이 향회(鄕會)를 열어 모든 일을 서로 의논하며 도의(道義)를 지키고 살았다는 뜻에서 ‘도의(道義)’, ‘도실’, ‘도질(道叱)’, ‘도동(道洞)’으로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도리(道里)’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물 좋고, 인심 좋고, 도의(道義)를 소중하게 여겼던 이 마을은 최근까지도 향회가 열렸으며 도리향회는 곧 경주향회로 불릴 만큼 그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도(道)의 고장이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최근까지 이곳을 후곡(後谷)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이것은 도실, 도골이 돗실, 돗골로 불리다가 다시 됫골이 뒷골로 변해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 봄배추와 고추 재배
도리는 심곡지가 끝나는 곳에서 현재 농협연수원 건설공사가 한창인 동쪽 골짜기에 펼쳐진 오밭골, 중마을, 웃마을이 1리를 이루고 있고, 이곳에서 고경방면(황수탕)으로 넘어가는 도로를 따라 펼쳐진 고래[회리(回里)], 아골[아리(牙里)], 마채[하리(下里)]가 2리를 구성하고 있다.
도리1리 총 87세대 185명으로 남자 93명, 여자 92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봄배추와 고추를 많이 재배하고, 그 외에는 논농사에 의존하고 있다. 웃마을 골짜기에는 우렁이농법으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다.
300년 된 당나무의 울음소리
* 오밭골[오전동(五田洞)]은 도리1리 마을회관이 있는 첫 부락이다. 산골마을이지만 그나마 밭이 많은 넓은 지역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마을에는 27가구가 살고 있다.
* 중마을은 도리의 한가운데 있는 마을로 ‘중말’, ‘중리(中里)’라 불렀다고 한다. 경주김씨 집성촌으로 30가구 중에 경주 김씨가 24가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동몽교관(童蒙敎官) 김지련(金之鍊)의 빈민구제 등 자선사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경주김씨 후손들이 건립한 *관인정(冠印亭)이 이 마을에 있다.
* 웃마을은 돗실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웃마을’ 또는 ‘상리(上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어귀에는 경주시 보호나무로 지정된 수령 300년이 넘은 당나무(느티나무) 4그루(한 그루는 이미 고사상태)가 서 있다. 옛날에 홍수로 인하여 이 마을 중심에 있던 이 당나무가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떠내려갔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또 이 마을 위쪽에는 효청못이라는 큰 못이 있다. 곡산한씨의 집성촌으로 20가구가 생활하고 있다.
∎ 30년간 방치한 은행나무 밭
이 마을에는 30년 전에 조성한 은행나무 묘목장이 마을 곳곳에 있다. 임협시험장에 근무했던 김 모씨가 심은 것인데 30년이 넘도록 그대로 방치하는 바람에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인근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길게 뻗은 뿌리들이 땅기운을 다 빨아들여 주위가 메말라간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이 여러 차례 대책을 요구했지만 방치되어 있어 마을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고 한다. 마을을 들어서면서 은행나무숲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지나치면 결국 주위에 피해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을 진입로가 좁아서 차량의 교행은 물론 버스진입이 어려워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고 한다. 또 산골마을이라 휴대전화가 잘 안된다고 한다.
∎죽으나 사나 일만 해
이 마을 최고령자는 죽으나 사나 일밖에 모르셨다는 웃마을의 한동창(88) 할아버지와 영천 소내[우천(牛川)]에서 18살에 이곳으로 시집와 평생을 살아온 조기선(84 소내댁) 할머니 부부이다.
슬하에 5남 1녀를 두고 평생을 함께했건만 아직도 같이 앉는 것조차 부끄러운지 다정하게 손잡고 포즈를 취해달라는 기자의 주문에 영 어색해 했다. 자그마한 체구에 아주 맑은 얼굴을 간직한 두 노부부는 채식위주로 규칙적으로 적게 먹는 게 건강의 비결이라고 한다. 취재에 협조해주신 김억수(51) 이장님을 비롯한 마을 어른들과 마을유래에 대해 말씀해주신 권택수(88 도리2리)할아버지와 김칠헌(76) 노인회장님께 감사드린다. 특히 이 마을의 영원한 새댁으로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알뜰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희숙(47) 부녀회장의 따뜻한 차만큼이나 따뜻한 환대에 감사드린다.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개울이 마을 앞을 흐르는 도리1리는 아직 사람들 간에 인정이 살아있는 조용하고 따뜻한 마을이었다.
삼성프로야구단 김재하(53) 단장과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김동일(36)씨가 이 마을 출신이다.
∎ 마을주요인물
이장 김억수(51)
새마을지도자 한성기(49)
부녀회장 이희숙(47)
노인회장 김칠헌(76)
도움말씀 권택수(88)
최고령자 부부 한동창(88), 조기선(84 소내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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