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찾아서

서면 도계리(道溪里)

경주신문 기자 / 2007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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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도계리(道溪里)

↑↑ 서면도계리
ⓒ 경주신문사
마을 향해 소리치니 크게 울려 ‘돔실’
주민들 비만 오면 철길 무단횡단

한해 중에 가장 밤이 길다는 동지를 지나면 어느 듯 봄이 기다려진다.
마치 동지가 춥고 긴 겨울의 정점으로 이를 돌아 나가면 따사로운 봄기운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돔실마을 주위로 올망졸망 솟은 야산 양지바른 기슭에는 성급한 춘란들이 벌써부터 꽃대를 밀어 올리며 봄단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도계는 오봉산 북벽 기슭에 자리한 마을이다. 오봉산을 경계로 남쪽은 건천읍 송선리와 신평리에 닿아 있고, 북쪽은 아화역을 사이에 두고 아화리, 동쪽은 사라리, 서쪽은 서오리와 천촌리에 맞닿아 있다.
우뚝 솟아 있는 오봉산을 바라보고 있는 이 마을은 경부고속도로가 마을을 관통하고 있고, 북쪽은 중앙선 철로가 지나가고 있는 지리적인 여건상 접근이 좀 불편하다. 이 마을의 유일한 접근로는 4번 국도에서 철길 아래로 난 굴다리를 통해서 들어가는 길이다. 경주에서 이 마을에 가기위해서는 4번 국도를 타고 서면으로 가다가 아화역 약 200m 전방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철로 밑으로 난 굴다리를 통과해야한다. 물론 서오리에서 오봉산 가는 산길을 따라 웃돔실로 돌아서 들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많이 돌아가는 길이다. 시청에서 약 22km, 30분 거리다.

마을 넓힌 계은공(溪隱公) 호 따서 ‘도계(道溪)’

도계(道溪)는 본래 신라 때 어느 관리가 오봉산 기슭에서 이 마을을 향해 소리를 지르니 크게 울린다고 해 ‘돔실’, ‘도음실’, ‘도음(道音)’, ‘도음곡리(道音谷里, 刀音谷里)’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돔’이 ‘도음(道音)’으로 표기된 것은 한자를 음차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돔’에 대한 이름값을 정확히 밝히는 일이 숙제로 남는다. 돔실이 도계가 된 것은 임진왜란 때 피난 온 황의민(黃義民)의 후손으로 공조좌랑(工曹佐郞)을 지낸 평해황씨 계은공(溪隱公) 황이근(黃以根)이 학문과 덕망이 높아 마을을 넓혔으므로, 그의 호를 따서 마을이름을 ‘도계(道溪)’라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도계리 주민들은 주로 벼농사에 의존하고 있고 포도, 한우, 수세미를 부산물로 생산하고 있다. 포도는 10여 가구가 2만㎡, 한우 300두, 수세미는 3가구가 재배하고 있다. 총 120가구에서 250여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김영수(92·서동댁) 할머니로 아직 바깥출입이 자유롭고 교회에 다닐 정도로 건강하다.

소년죽음 많아 동제 부활

동제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날 새벽에 동제를 지낸다. 1970년대에 들어서 마을에 교인들이 과반이 넘으면서 약 10년간 동제를 안 지내다가 20년 전부터 다시 지낸다. 동제를 다시 지내게 된 사연은 이렇다. 마을에 소년죽음(젊은 사람들의 죽음)이 많고 특히, 외지에 나간 젊은 청년 5~6명이 잇달아 죽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의논한 끝에 동제를 다시 지내기로 했다고 한다. 노인회장이 주관하고 제관은 마을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을 정한다. 제물은 닭을 사용한다.
↑↑ 당목
ⓒ 경주신문사
당목 이 마을은 느티나무, 팽나무 등 2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는 당나무숲을 섬기고 있다. 이곳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10여년 전에 쓰러져서 죽고, 썩은 그루터기가 제단 뒤에 남아있다.

평해황씨 집성촌이라 ‘황촌’

돔실[도계(道溪)] 마을전체를 뜻하기도 하지만 돔실의 중심마을이고 가장 큰 마을을 ‘돔실’이라고 부른다. 마을 전체로 볼 때 아래쪽이 됨으로 ‘아랫돔실’, ‘하리(下里)’라고도 부른다. 은진송씨, 달성서씨 제주고씨 등 3개 성씨가 주로 많이 살았으며 지금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55가구)
웃돔실 돔실의 위쪽에 있는 마을로 경부고속도로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평해황씨 집성촌이라 ‘황촌’이라고도 한다. 윗마을이라 ‘상동’이라고도 한다. (35가구)
다락골 이곳은 바다였는데 다리를 놓았다고 해 ‘다리골’, ‘다릿골’, ‘교곡(橋谷)’이라 불렀다고 하며, 마을 뒷산이 마치 반달처럼 생겨 ‘월하(月下)’라 불렀다고도 한다. 곤도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30가구)
중마실[중리(中里)] 돔실의 위쪽에 있으며 웃돔실과의 사이에 있어 ‘웃각단’, ‘중리’, ‘중마실’이라고 한다. (10가구)
곤도리 돔실의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부터 못이 있어 ‘곤제(昆堤)’ 또는 ‘곤도리’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이 퇴락하고 2가구가 살고 있다. (2가구)
능내[능천(陵川)] 이 마을에 능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에 ‘능천지’라는 못이 있고, 그 안에 마을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능의 흔적조차 찾을 길 없다. 한때 7가구까지 살았으나 지금은 1가구만 살고 있다.

게의 발처럼 생긴 ‘기발산’

↑↑ 계은정사
ⓒ 경주신문사
계은정사(溪隱精舍) 조선 숙종 때 공조좌랑을 지낸 평해황씨(平海黃氏) 계은(溪隱) 황이근(黃以根)을 추모해 그 후손들이 1936년 그가 공부하던 웃돔실에 세웠다. 정면 4칸의 팔작지붕으로 양쪽에 1칸은 방, 가운데 2칸은 마루를 배치했다.
기발산 마치 기(게)의 발처럼 생긴 산으로, 다락골 뒷산이다.
꽃밭등[설매산(雪梅山)] 오봉산의 술기미의 위쪽에 있는 산.
능내산(能川山) 능내들 위쪽에 있는 산.
동산삐알 다락골 북쪽에 있는 산으로, 산 밑에 장승이 있었다고 해 ‘장승삐알’, ‘장승벽’ 혹은 ‘동산삐알’이라고 한다.
꼬사리고개 웃돔실에서 천촌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꼬사리(고사리)가 많았다고 한다.
봉드기고개 돔실의 서북쪽에 있는 고개. 서오 봉드기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사리고개라고도 한다.
서당고개 옛날에 서당이 있었던 곳의 위에 있는 고개로 돔실에서 다락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서당은 100여년 전에 없어지고 지금은 없다.
살구재 돔실에서 서오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 이곳에 살구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차가 다니는 큰길이 나 있다.
서낭고개 돔실의 서북쪽에서 서오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서낭당이 있었으므로 서낭재라고도 한다.

꾀나물 많이 났던 ‘꾀밭양지’

자래등 다락골 서북쪽에 있는 등성이로, 지형이 마치 자래(자라)처럼 생겼다. 동산못 안에 있다.
꾀밭양지 꾀나물이 많이 났던 등성이로 초막골 절 밑에 있다.
넙덕등 초막골의 남쪽에 있는 넓적한 등성이.
홍디깻등 지형이 마치 홍디깨(홍두깨)처럼 생긴 등성이로, 초막골 서쪽에 있다.
감낭골 청석골의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야생의 감나무가 많이 있었으므로 감낭골(감나무골)이라 했다고 한다.
납닥골 납닥(널직한)바위가 있다는 골짜기. 다락골의 서쪽에 있다.
능천골 능천산에 있는 골짜기이다.
문동골 다락골의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큰골로 들어가다가 왼쪽골짜기이다. 골짜기가 깊어 문동병환자가 살았을 것이라고 한다.
샘골 다락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샘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논이 되어 있다.
수내깃골 돔실 동쪽 골짜기로 수렁이 있어 ‘수내기’, ‘쉬내기’, ‘쉬내깃골’이라고도 한다.
술기미 시무난골의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술구미’라고도 한다.
시무난골 돔실의 남쪽에 있는 골짜기.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시무나무(스무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주검을 보관하고 염하던 곳

염솟골 옛날에 장례를 치르기 전에 염을 하던 곳으로 묫자리를 정할 때까지 임시로 주검을 흙으로 덮어두는 토감(土坎)을 하던 곳이다. 술기미 동북쪽에 있다. 골이 깊고 곧다.
적은가래골 가래골의 작은 골짜기.
적은시무난골 시무난골의 작은 골짜기.
적은염솟골 염솟골의 작은 골짜기.
짝장골 계은정사 밑에 있는 골짜기.
절골 돔실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해 ‘절골’이라고 한다.
청석골 청석(靑石)이 있는 골짜기.
초막골 오봉산 자락으로 가장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차막골’이라고도 부른다.
큰골 오봉산 북쪽자락으로 가장 큰 골짜기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 주사암이다. 그 안에 호랑이 굴이 있었다고 한다.
누륵들 곤도리의 남쪽에 있는 들이다.
능내들 능내마을에 있는 들로 누륵들 서쪽에 있다.
돌배깃들 질밭들 서쪽에 있는 들로, 큰돌이 3개가 박혀 있다.
들배깃들보 돌배깃들에 있는 보.
뽕남배미 다락골 동북쪽의 논으로 전에 뽕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샘골 아래에 있다.

논 쌈을 재배했던 ‘삼밭들’

삼밭들 돔실의 동쪽에 있는 들로 논쌈을 재배했던 곳이다.
수내기들 방구배기의 동쪽에 있는 들로 수내깃골 아래에 있다.
안누륵들 누륵들의 안쪽에 있는 들로, 안누럭들이라고도 한다.
진밭들 돔실의 동북쪽에 있는 들로 현재 경부고속도로 옆에 긴 밭이다.
돔실못 오봉산 밑에 있는 못으로 ‘도음저 수지(道音貯水池)’, ‘새못’이라고도 한다. 본래 작은 못을 1960년대에 확장해서 새로 막았다.
동산저수지(東山貯水池) 동산삐알 밑에 있는 못으로 기발산 아래 있다.

가시연꽃 자생지 ‘곤도리못’

곤도리못 돔실 어귀에 있다. 곤도리에 있는 못으로, ‘곤도리저수지’라고도 한다. 이 못은 희귀식물로 분류되는 가시연꽃의 자생지로 알려지고 있다.
누륵들못 누륵들에 있는 못으로, 누럭들저수지라고도 한다. 못안에 또 못이 있어 못이 2개이다.
능내못 누륵들못 북쪽에 있다. ‘능천제(能川堤)’라고도 한다.
안누륵들못 안누륵들에 있는 못으로, 안누룩들저수지라고도 한다.
수내기못 수내깃골에 있는 못으로, ‘수내저수지’라고도 한다.
구진배리 옛날 이곳에 구진이라는 나루터와 마을이 있었다고 하며 ‘구진비리’, ‘구진동’이라고도 한다.
↑↑ 방구배기
ⓒ 경주신문사
방구배기 다락골 서쪽에 3개의 바위가 박혀 있는 곳을 말한다.
평풍바우 주사산에 있는 바위로, 마치 병풍을 둘러친 것 같이 생겼다고 한다.
불썬바우 불을 밝혀 치성을 드리면 소원 성취한다고 하는 영검한 바위로, 병풍바우 아래에 있다.
선바우 초막골 안에 우뚝 서 있는 바위로 흔들면 흔들린다고 ‘흔들바위’라고도 한다.
큰바우 큰골에 있는 큰 바위. 바위아래 물이 나는데 물이 좋다고 한다.
대밭 돔실마을 뒤에 있는 대밭이다.

굴다리 확장이나 농로 연결

↑↑ 굴다리
ⓒ 경주신문사
이 마을은 중앙선 철로 아래 굴다리를 통해서 통행하는데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굴다리가 침수되어 마을로의 진출입이 불가능하다. 철도 밑으로 뚫은 굴다리인지라 지대가 낮고 거랑바닥과 길바닥의 높이가 불과 50cm밖에 차이가 없어 거의 비만 오면 거랑물이 범람해 사람은 물론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마을주민들은 부득이 위험한 철길을 무단횡단해서 아화역으로 넘어 다닐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 굴다리를 기술적으로 진단해 확장해 주민들의 통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부득이 어려우면 심곡저수지 수로를 따라 나 있는 농로를 서오리쪽과 연결하는 공사라도 해서 아화역쪽으로 횡단하는 길과 연결해야 한다. 이 공사는 서오리에서 내려오는 도랑에 다리공사만 하면 나머지 부분은 포장공사가 다 되어 있는 상태이다.
마을 진입로가 침수되어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철길을 불법횡단하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마을 출신으로는 고임길(77·전 포항역장), 황영(61·예비역 육군 중령), 방원팔(53·육군 준장), 박태수(52·현곡면장), 황정섭(52·예비역 해군 중령), 김삼환(51·창원우체국장), 황병도(50·서울 변리사), 서영선(39·계명대 동산의료원 가정의학과) 등이다.
취재에 협조해주신 송재헌 이장과 서영달 노인회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여러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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