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해내는 샘못 북쪽마을 북토(北吐)

‘북토 가서 자식자랑 하지마라’

경주신문 기자 / 2008년 0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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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해내는 샘못 북쪽마을 북토(北吐)
‘북토 가서 자식자랑 하지마라’

마을을 찾아서

외동읍 북토리(北吐里)

ⓒ 경주신문

북토는 맷돌산(마석산 磨石山) 동쪽기슭에 자리한 마을로 신라 때부터 있었던 큰 못으로 알려진 샘못[토상지(吐上池) : 맷돌산이 머금었던 물을 토해내듯 솟아나는 샘물로 만들어진 못]의 북쪽에 위치해 ‘북토상(北吐上)’, ‘북토(北吐)’라 불렀다. 이 마을의 남쪽은 토상촌(제내리)과 냉천리에 이어져있고, 북쪽은 정래동 시래마을에 닿아 있다. 동쪽은 방어리와 죽동리, 서쪽은 마석산을 사이에 두고 내남면 명계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마을은 경주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불국사를 지나 괘릉리 육교에서 영지쪽으로 우회전하여 영지를 거쳐 방어리를 지나면 북토에 이른다. 불국사에서 경주여상이 있는 시래를 거쳐 이 마을로 가는 길도 있다. 경주시청 기준으로 19km, 28분 거리이다. 넓은 들판을 끼고 있는 이 마을은 방어리와 죽동리 경계지점인 동편에는 ‘순지마을’이 있고, 서편에는 ‘큰말’과 ‘말무덤’이 마석산기슭에 의지해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한우 1천여마리 사육

이 마을은 총 130가구에서 250여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으며 벼농사가 주 소득원이고, 그 외에 배, 정구지, 한우, 돼지를 기르고 있다. 배의 경우 5가구가 2만여 평, 정구지는 50가구, 2만여 평, 한우가 1천여 두에 이르고, 돼지도 1만여 두에 이른다. 특히 정구지와 한우가 많은 마을이다. 옛날에는 밀양박씨, 회덕황씨, 김해허씨 3성이 많이 살았으나 지금은 각성받이라고 한다. 또 순지마을은 영양남씨 집성촌이라고 한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순지에 사는 올해 93살의 권오남(둥굴댁) 할머니다. 아흔의 노구답지 않게 허리도 굽지 않고 꼿꼿한 권 할머니는 아직 남의 도움 없이 혼자 생활하며,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논밭을 누빌 정도로 건강하다고 한다. 집 앞에서 만난 권 할머니는 자그마한 체구에 웃음 띤 순박한 모습으로 반갑게 취재진을 맞았다. 부끄러워 사진 찍기를 쑥스러워하면서도 들어가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라며 한사코 소매를 잡아끌었다. 마치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박제상의 말 무덤

ⓒ 경주신문

북토(北吐) 마석산에서 토해내는 듯 샘솟는 토상지(吐上池)의 북쪽에 마을이 있다는 뜻으로 ‘북토(北吐)’, ‘북토상(北吐上)’, ‘동메마을’이라고도 한다. 말무덤·큰말·순지의 3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큰말 북토의 중심이 되는 가운데에 있는 큰 마을이다. 큰말은 다시 ‘음지말’, ‘장잣골’, ‘뒷말’로 구분할 수 있으나 사실상 한 마을로 그 구분이 어렵다.
음지말 장잣골 거랑 건너, 남쪽에 있는 마을. (30가구)
장잣골 장자(부자)가 살았다고 하는 마을로, 북토 중앙에 있다. (20가구)
뒷말 장잣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큰말의 뒤쪽에 있다. (30가구)
동제 큰말은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당목 당목은 65년 된 느티나무로 마을 동쪽 어귀의 새못둑에 있다.

말무덤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이 볼모로 잡혀간 왕자를 구하기 위해 왜국으로 떠날 때, 편지로 써서 말의 발목에 매어 집으로 보냈다. 말은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가 지쳐 이곳에 이르러 죽었다. 사람들이 말을 고이 묻어 주었는데 지금도 그 무덤이 이곳에 있다. 그래서 마을이름도 ‘말무덤’, ‘마릉(馬陵)’이라고 불렀다. 또 큰말 아래가 되므로 ‘아릿말’이라고도 부른다. (10가구)
동제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제를 지낸다. 최근에는 이 마을에 있는 영명사 스님을 제관으로 모셔서 지낸다고 한다.
당목 100여년 된 소나무로 마을 남쪽 들 가운데 홀로 서있다.
순지(筍池) 본래 이곳에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는데, 순(筍)이라는 거사가 밤나무를 심어 밤숲을 이루었으며 마을이름도 ‘율림(栗林)’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 순거사는 이곳에 못(밤숲못)을 팠다고 한다. 후일 이 순(筍)거사를 기려, 그의 이름 순(筍)자와 그가 판 못 지(池)자를 따서 마을이름도 ‘순지’ 혹은 ‘순못’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동제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제관은 스님을 모셔서 지낸다.
당목 본래 오래된 소나무가 있었는데 20년 전에 죽고, 그 옆에 있는 참나무를 당목으로 섬겼는데 이 나무도 훼손이 심해 다시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1500년 전 말 무덤

ⓒ 경주신문

석은재(石隱齋) 조선 인조 때 통정대부 첨지중추를 지낸 밀양인 석은 박이민(朴以敏)을 추모하여 세운 재실이다. 본래 이 건물은 일제 때 마을회관으로 지은 마을소유였으나 20여년 전 박씨 문중에서 매입해 재실로 사용하고 있다.
말무덤 북토 북쪽에 있는 신라 충신 박제상의 말 무덤이다. 박제상이 왜국으로 가면서 편지를 발목에 매어 집으로 보냈는데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가 이곳에 이르러 지쳐 죽었다. 마을사람들은 말이 쓰러진 곳에 큰 무덤을 만들어 묻어주었는데 지금도 그 무덤이 전해오고 있다. 마을사람들이 이 무덤의 흙(황토)을 파다가 부엌이나 벽을 바르기도 했는데 그러면 반드시 그 집에 탈이 생기곤 했다. 그래서 다시 흙을 북돋워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이 말무덤은 마을 동편 끝자락의 밭에 있다. 박제상의 집은 이 마을에서 남쪽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제내리 토상지에 있었다고 전한다.
마석산(磨石山) 모양이 마치 맷돌처럼 생긴 높이 535m의 석산으로 외동읍 제내리, 북토리, 내남면 명계리, 정래동 시래에 걸쳐 있다. ‘뺏돌산’, ‘맷돌산’이라고도 한다. 신라 6촌의 하나인 취산 진지촌의 ‘취산’에 해당한다. 맷돌이라는 산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상부에 있는 바위가 바닷물에 다 잠기고 맷돌만큼 남았다고도 한다. 또 신라시대에 군사들이 훈련하면서 칼을 갈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애수뱅이 여우가 많았다는 골짜기로 순지 동쪽에 있다. 지금은 논이 되어 있다.
돌딩이삐알 돌덩이가 많은 산으로 ‘돌덩이산’이라고도 한다. 마석산 기슭으로 말무덤 위, 북토 서북쪽이 된다.
양님삐알 북토 서쪽에 있는 산으로 ‘양림봉’이라고도 한다.

주검을 임시로 보관한 곳

괭이번디기 명산딩이 남쪽에 있는 버덩으로 ‘꽹꽤미반디기’라고도 한다.
너븐등 돌딩이삐알 남쪽에 있는 넓은 등성이로 마을 뒤에 있다.
명산(明山)딩이 명산이 있다고 하는 등성이로 점박골 남쪽에 있다. ‘맹산디’라고 한다. 나무하러 다닐 때 쉬면서 놀이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뻘건딩이 뱀거랑 동쪽에 있는 흙이 붉은 등성이로 ‘중뱅이’라고도 한다.
채봉골 채봉(초빈)을 하던 곳이었다고 전하는 골짜기로 너븐등 남쪽. 주검을 일시적으로 보관하던 곳으로 염하던 곳이다.
다라골 큰말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산밭골 예수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골짜기 안에 밭이 있다고 한다.
손골 산밭골 남쪽에 있는 좁은 골짜기. 경주말로 ‘손골’이라고 한다.
예수골 돌딩이삐알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예수(여우)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점복골 예수골 남쪽 골짜기로 신라 때 점불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손골 북쪽에 있다.

‘아들 하나 점지해 주소’

맷돌바위 마석산 정상에 있는 바위로 마치 맷돌의 손잡이처럼 우뚝 솟아 있다. 옛날 해일 때 바닷물이 다 차고 맷돌만큼 남았다고 한다. 바위 높이가 10m가 넘는다고 한다.
남근석(男根石) 마석산 중턱에 있는 남자의 성기처럼 생긴 바위로 ‘홍두깨바우’, ‘미륵바위’라고도 한다. 이곳에 불을 밝혀 치성을 드리면 사내아이를 얻는다 하여 아낙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북토 가서 자식 자랑 말고, 말방 가서 힘 자랑 마라’는 말이 있듯이 말방은 예로부터 장군이 많이 났고, 북토에는 인재가 많이 난 것도 다 이 남근석의 영향이라고 믿고 있다.
소세바우 모양이 마치 소의 세(혀)처럼 생긴 바위로, 북토 서쪽 남근석 부근에 있다.
화전바우 북토리와 제내리의 경계의 화전골에 있는 바위로 화전놀이를 했던 곳이다.
가시개바우 모양이 마치 엿장수 가시개(가위)처럼 생긴 바위로 소세바우 북쪽에 있다.
깨구리바우 모양이 개구리처럼 생긴 바위로 북토 서남쪽에 있다.
일조암 터 옛 절터로 이곳에는 이조암, 삼조암 등 절이 3개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탑재가 흩어져 있다고 한다. 맷돌바위 남서쪽 화전골에 있다.

대문채에 묘 쓰고 망해

고디이밭골 고불고불하게 마치 고디(고동)처럼 생긴 도랑이 있는 들이다.
대문앞 들 이곳에는 본래 천석군을 하던 김영김씨가 살았는데 어떤 풍수가 대문채가 명당이라고 해 대문채를 헐어내고 그 자리에 묘를 썼는데 집안이 망했다고 한다. 새못밑 북쪽 말무덤 북동쪽에 있다.
뒷골새 북토 뒤쪽의 말무덤과 큰마을 사이에 있는 들이다.
버멀딩이 한달뻔디기 남쪽에 있는 들로 ‘버말딩이’라고도 한다. 허허벌판으로 큰말회관 앞에 있다.
새못밑 새못 아래에 있는 들로 ‘새못들’이라고도 한다.
봇골새 앞에 큰 보가 있으며, 새못밑 남쪽에 있다.
장닭논 흉년에 닭 한 마리와 맞바꾸었다고 하는 버덩으로 큰말 동쪽에 있었는데 경지정리로 없어졌다.
한달 뻔디기 장닭논 부근의 들로 큰마을 동쪽에 있었는데 경지정리로 없어졌다.
새못 큰말 동쪽 어귀에 있는 못으로 본래 있던 못을 중수해서 ‘새못’이라고 했다.
순못 순지마을 동북쪽에 있는 못으로 순지(筍池)라고도 한다. 못둑에는 선정비 3기가 서 있다.
터진못 못둑이 잘 터졌다고 하는 못으로 너븐등 동북쪽에 있다. 지금은 못이 터지고 논이 되었다.

통일전 - 제내 간 도로 확포장

마석산 기슭에 자리한 이 마을은 산 좋고, 물도 좋고, 살기 좋을 뿐 아니라 마석산 정기를 받아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한다. 특히 이 마을 출신은 머리가 좋고, 불국중학교 장학금은 모두 북토 차지라고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이 마을주민들은 남산 통일전에서 제내까지를 연결하는 마을간 도로의 확포장이 하루 빨리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박준영(78·전 경주경찰서장), 황수택(77·전 부산시의회 부의장), 허남택(67·전 포항 양학중학교 교장), 허기행(64·전 경주고등학교 교장), 김원표(60·김원표치과), 황수배(62·울산제일여중 교장), 남경필(58·부산 중앙중학교 교장), 김성환(52·울산 변호사), 최정식(47·변호사), 박현갑(47·변호사), 박현중(45·성형외과 의사), 황수훈(47·국정원) 등이 있다.

김거름삶


사진 최병구 기자/ 정리 이채근 기자
자문 허계수(족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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