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물결같은 기와 너머..고택의 정취에 취하다 '요석궁'

물결 같은 기와 너머···고택의 정취에 취하다

이필혁 기자 / 2012년 07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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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석궁 사랑채 마루에 차려진 ‘계림정식’.
ⓒ (주)경주신문사
“이리 오너라~”
시중드는 하인이 대문을 활짝 열어준다. 대문에 들어서자 가야금 소리와 나지막한 소나무가 한낮의 더위를 식혀준다. 사랑방으로 통하는 작은 문을 고개 숙여 들어가면 여인들의 다듬이질 소리와 작은 연못가에 발 담근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요석궁의 정취에 취해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인데 2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최씨 일가를 만난 듯하다. 지금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가야금 소리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큰 지팡이에 어깨를 기댄 소나무, 여인들의 다듬이질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들리진 않았지만 그 정취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경주 교동 59번지 경주향교에서 도보로 3분이면 만나는 경주 최부자 가정식 ‘요석궁’의 첫 느낌은 마치 춘몽(春夢)과 같았다.


요석궁을 이야기하기 전에 경주 최씨 일가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조선 말엽 최씨 일가가 교촌에 자리 잡을 당시 주위의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향교보다 작아야 한다 등의 이유로 반발이 있었지만 반대세력을 설득해 향교보다 높지 않게 지었다고 한다. 대신 흙을 파서 지형을 낮춰 작지 않은 집을 지었고 흙들은 집 뒤 작은 산을 만들어 인공 ‘배산임수’를 완성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요석궁 뒤쪽 나무가 울창한 작은 언덕이 그 ‘배산임수’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 (주)경주신문사


요석궁에 들어서면 사랑채로 통하는 작은 문이 나온다.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들어서지 못할 만큼 작은 문으로 항상 낮은 마음으로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작은 문을 통과하면 저절로 겸손해 진다. 겸손히 문을 통과하면 사랑채가 나온다. 사랑채 마루에 앉으면 작은 연못이 눈에 들어와 예로부터 귀한 손님을 모시던 곳으로 지금까지 요석궁의 VIP실로 애용되고 있다. 과거 의병대장 신돌석 장군이 은둔해 있으면서 사랑채의 대들보를 혼자 들어 올린 일화로 유명한 곳이다. 사랑채를 지나면 왼쪽으로 ‘ㄷ’자 구조의 안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안채 중 난실은 앞마당과 뒷마당이 모두 보이는 곳으로, 이 집 구조를 잘 아는 이들이 자주 찾는 요석궁 최고 명당이라고 주인장은 귀띔한다. “소중한 분들과 식사를 나누기에 난실이 가장 운치 있습니다”라고.

신관 별채는 120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요석궁 최대 별채라고 주인장은 전했다. 화재로 소실된 건물을 새로 지어 더욱 고급스럽고 한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새로 지은 지 40년이 넘었지만 200년 이상 된 본채에 비한다면 현대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자리에 앉자 고운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 줄지어 음식을 내어 온다. 먼저 최 씨 집안 전통 집장, 육장, 멸장을 찰밥과 함께 먹으니 속이 편해지는 기분이다. 최씨 며느리들이 담는 ‘사인지’, 구절판, 단호박과 연근을 갈아 만든 전, 도미살로 만든 만두, 최씨 집안 전통 양념으로 간을 한 육포, 대게찜, 비린내가 나지 않게 소라로 만든 밥 식혜, 구절판 등 20가지가 넘는 요리들이 입맛을 자극한다. 이 중 소중한 분에게 내어준다는 전통굴비는 이 곳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귀한 요리로 정평이 나 있다.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정성이 많이 들어간 귀한 음식입니다” “요석궁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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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굴비-영광에서 직접 공수해 온 전통굴비에는 요석궁의 정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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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석궁 맛의 평가는 극명하게 나뉜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대치가 높아서다. 음식 대접을 받으면 최고의 음식점으로, 돈을 주고 먹으면 기대치에 못 미치는 음식점으로 미식가들의 평가가 엇갈린다.

“가격이 높다 보니 요석궁에 기대치가 큽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구한 최고의 식재료와 최씨 집안 전통방식으로 만든 음식을 정성껏 내놓고 있습니다. 그래도 부족하게 느껴 질 수 있지요. 하지만 요석궁의 역사, 정경, 문화, 일화 등 집안 곳곳에 새겨진 의미를 알아 가신다면 결코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다. 결승에서 금메달을 놓친 선수가 은메달에 만족하지 못하듯 기대치가 높으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어찌 성에 차리오. 요석궁은 맛과 함께 분위기와 정취를 함께 맛보길 제안해본다. 요석궁의 역사를 보고, 듣고, 분위기에 취하고 최씨 집안 전통의 맛을 느낀다면 가격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돌아가리.


요석궁은 외국 손님들과 다른 지역 손님들로 항상 붐벼 예약제로 운영된다. 메뉴는 반월정식은 3만원, 계림정식은 6만원, 요석정식은 9만원(부가세 10% 미포함)으로 이 중 계림정식이 추천 메뉴로 사랑받고 있다. 교동 59번지 (054-772-3347~8).


사진_최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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