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궁중요리 ‘수리뫼’

가장 한국적인 맛… 궁중음식을 일상으로 초대하다

이필혁 기자 / 2012년 0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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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리뫼 전경. 남산의 전경과 어우러진 한옥이 운치를 자아낸다.
ⓒ (주)경주신문사

궁중음식.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 음식 중 하나다. TV매체가 궁중요리를 일상의 요리로 끌어 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에선 궁중요리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궁중음식을 흉내 낸 일부 음식점들은 오히려 정통 궁중요리의 궁금증만 갖게 한다.

남산의 용산서원 옆에 자리한 수리뫼는 그런 궁금증을 말끔히 없애 주는 곳이다.
박미숙(49·중요 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음식 기능이수자) 원장이 운영하고 있는 수리뫼는 궁중음식과 전통음식을 익숙하고 친근한 음식으로 다가 오게 한다.

●궁중요리를 이어가다.

조선시대 왕족들이 먹던 음식이나 중요 의전 때에 차려진 음식들을 궁중요리라고 부른다. 최고의 반과 찬을 이용한 요리들은 우리나라 음식문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궁중요리의 발전은 조선왕조 마지막 상궁이었던 고 한희순 씨의 역할이 컸다. 어릴 적 궁에 들어가 상궁으로서 고종과 순종의 음식을 도맡았던 한 씨는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자 조리기술을 일반인들에게 전수했다.

정부에서 궁중요리의 중요성을 인식해 1971년 한 씨를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1대 기능보유자로 지정했다. 뒤를 이어 고 황혜선 씨가 2대 기능보유자로 지정됐고 3대는 한복려, 정길자 씨가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박 원장은 2대 기능보유자 고 황혜성 씨로부터 궁중음식을 전수받아 전통 궁중요리 보급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궁중음식 기능보유자, 이수자, 전수자는 전국에 20여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경상도에는 남·북도를 통틀어 박 원장이 유일하다. 박 원장은 30년이 넘는 시간을 궁중요리 한길만을 걸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궁중요리를 널리 알려 모두가 즐기고 사랑하는 요리로 만들고 싶어 한다.

박 원장은 전통음식 교육에 앞장서면서도 전통음식 전문점에 대한 갈망이 깊었다고 한다.
“음식다운 음식, 정성스런 음식, 가정에서 먹기 어려운 음식,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30년을 준비해 수리뫼를 완성했지요. 저만큼 오랜 기간 준비해 음식점을 차린 사람도 드물 거에요”라는 말투에 자부심과 함께 열정이 묻어난다.

수리뫼의 음식은 전체요리로 흑임자죽과 구절판이 나온다. 흑임자죽으로 속을 편하게 달랜다. 구절판은 소고기, 숙주, 당근, 달걀, 표고버섯 야채 등 9가지 재료가 청, 적, 황, 백, 흑의 오방색五方色으로 멋을 내고 있다. 재료를 밀전병에 싸서 겨자 장에 찍어 먹으면 조화로운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 전통음식과 궁중음식을 앞에 두면 마치 왕과 왕비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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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리에는 어린 돼지고기를 이용한 연저육찜, 죽순채, 대하 잣 무침, 섭산삼, 쇠갈비찜 구이와 수삼생채, 승기약탕 등이 한 상 가득 올려진다.

그중 죽순채가 가장 인상적이다. 소고기와 배, 달걀, 미나리 등을 버무린 죽순채에 홍시 소스를 첨가해 단듯하면서도 상큼한 맛을 낸다.

대장금 드라마 명장면 중 장금이의 미각을 표현한 “어찌 홍시라 생각했냐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라는 장면에 나왔던 요리라 홍시 맛을 한 번 더 음미하게 한다.

식사로 흑미 밥에 아욱국, 김치와 더덕장아찌, 생선조림, 도라지 생채 등과 후식은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남산을 병풍 삼고 맑은 자연을 벗 삼아 음식을 음미하며 먹으면 많은 양도 많지 않게 느껴진다.

수리뫼 음식은 궁중요리를 기반으로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거의 장으로 맛을 내는데 그중에서 간장이 가장 중요하게 사용된다.

수리뫼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장독대인데 5~7년 전부터 담겨 온 장들이 장독대마다 가득하다.

박 원장이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이조리로 옮겨 온 것도 장을 담기 위해서라고 하니 장이 궁중요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짐작케 한다. 간장으로 맛을 낸 요리들은 슴슴 하면서도 알맞게 조화를 이뤄 자극적이지 않다.

↑↑ 오방색으로 멋을 낸 구절판, 홍시 소스를 첨가해 맛을 낸 죽순채, 부드럽고 바삭한 식감을 내는 야채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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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식동원藥食同源

박 원장은 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다고 한다. 좋은 음식을 먹으면 약과 같은 효능을 낸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음식을 먹고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음식은 만든 사람이 뜻과 정성을 담아 내는 것이 때문이라고 했다.

●한식 세계화에 작은 보탬이 되고파

박 원장은 그동안 궁중요리와 전통음식을 알리고 보급하는데 쉼이 없었다. 많은 이들에게 요리를 알리기 위해 ‘박미숙 요리학원’을 운영했고 현재는 경북기술원에서 운영하는 전통음식 해설사들을 교육하고 있다. 또 여성회관에서 17년 동안 강의를 이어오며 궁중요리와 전통음식 알리기에 두팔을 걷고 있다.

최근엔 전 세계에 방영되는 ‘디스커버리’ 채널에 한국을 대표하는 5가지에 박 원장의 궁중요리가 선정됐다. 박 원장은 음식 부문에서 전통음식을 발전시키고 널리 알린 노력이 높게 평가된 것 같다고 했다.

박 원장은 한국의 궁중음식과 전통음식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세계화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박 원장은 5년 후 호주 멜버른에 한국 음식을 알리는 한식당을 열려는 것도 한식 세계화를 위한 포석이라고 했다. 가장 한국적인 맛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박 원장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 한식이 진정한 세계화를 이룰 것이라고 했다.

용산서원 옆에 위치한 수리뫼는 최상의 요리를 제공하기 위해 예약제로 운영된다.
●주소내남면 이조3리 657번지
●문의054)748-2507

글=이필혁 기자 / 사진=최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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