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특별함을 담아내는‘숙영식당’

淑英, 경주의 맛 특별함을 담아 문화를 퍼트리다

이필혁 기자 / 2012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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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경주신문사
‘-’가 떨어져 나간 ‘숙영식딩’에
어룽어룽 빗방울들, 매달리네
-중략-
유복자일까, 계산대 중년의 아들에게 물어보아도
그는 넉살좋은 웃음만 덤으로 끼얹어 준다네
손진은 시 ‘숙영식딩’ 중에서.

시내를 한 발짝만 물러나면 세월을 비켜난 듯한 옛 시대의 유적들이 산재해 있는 경주.
가장 가까이 천마총 돌담길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출출함이 느껴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들리는 찰보리밥 전문점 ‘숙영식당’은 가장 가까이 있어 우리에겐 유명한 ‘맛집’이라기 보다 친근한 단골집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이상순(79) 여사의 뒤를 이어 이선우(51) 대표가 운영하는 숙영식당은 이제는 공허함 마저 들게 하는 쪽샘 골목을 터줏대감처럼 지키고 있다. 조금은 허름한 외관과 달리 세련된 찰보리밥으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음식으로 경주 문화를 전파하고 있는 곳이다.

이 대표는 음식이야말로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음식은 일종의 문화라 생각합니다. 음식에 문화와 얼을 담아 전한다는 생각, 경주를 알린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시골 향 나는 숙영식당
숙영식당의 모습은 허름한 시골집을 연상시킨다. 남들이야 멋으로 그 집만의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예전 주택을 수리해 사용하지만, 숙영식당은 조금 다르다. 역사보존지구에 묶여 내부 수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유다. 그 이유야 어찌 됐든 손님들에겐 전통적인 한옥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외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역시 간판이다. 숙영식당의 간판은 흰색 바탕의 화선지에다 ‘숙영’이란 글을 써놓은 것처럼 느껴져 한옥에 세련미를 더해준다.

내부는 전통 한옥 그대로의 모습이다. 좁은 통로를 지나면 작은 정원이 나타나고 여닫이문이 열리는 모습, 숙영식당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팔순을 바라보는 이상순 여사 모습에서 시골 할머니 모습을 아른거리게 한다.

숙영식당은 1974년 숙영식당의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숙영식당 이전엔 작은 분식집으로 시작했다고 하니 40년이 훌쩍 넘어간다. 초기엔 민속주점의 형태였다. 작은 분식집으로 시작해 민속주점을 거쳐 현재의 찰보리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으로 변모한 것이다. ‘숙영식당’의 숙영은 이 여사의 어릴 적 집에서 부르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지었다고 한다.

숙영식당은 세월에 따라 변화된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처음 민속주점으로 시작해 현재 찰보리밥 전문점으로 변모하면서 손님의 입맛에 맞춰 연구하고 변화를 주면서 현재의 숙영식당이 완성되었다.

민속주점을 운영할 때도 맛으로 경주뿐 아니라 타지방에서도 입소문이 자자했다. 김호길 전 포항공대 총장이 숙영식당의 맛에 끌려 포항에서 경주까지 찾아오는 단골이 됐고 고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은 숙영식당을 서울 포항제철의 행사에 초대해 비빔밥과 직접 빚은 동동주, 논고동, 더덕무침 등을 선보이게 할 정도였다.
↑↑ 찰보리밥을 주문하면 거하게 한 상이 차려진다. 10가지가 넘는 찬들로 손님의 선택 폭을 넓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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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보리밥을 찾는 손님이 많아져 민속주점에서 찰보리밥 전문점으로 변했다. 세월에 따라 입맛이 변하듯 입맛에 따라 숙영식당은 그렇게 변화하고 완성되어 가는 곳이다.
숙영식당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아 보리밥을 먹으려면 번호가 적힌 주걱을 받아들기 일쑤다.

이 대표의 보리밥은 일반 꽁보리밥이 아닌 찰보리밥으로 맛을 내고 있다. 건천 찰보리가 20%가량 들어가고 찹쌀이 20%, 멥쌀이 60% 정도 들어가는 게 황금비율이라고 이 대표는 전한다. 일반꽁보리밥은 들뜨는 느낌이 나는데 숙영식당 찰보리밥은 입에 착 달라붙는다.

찰보리밥의 또 다른 특징으로 일반 비빔밥은 버무린 나물로 사용하는데 숙영식당은 큰 비빔 그릇 안에 7가지 정도의 생야채를 사용하고 있다. 상추, 새싹, 치커리, 쌈배추 등에다 무생채를 화룡점정으로 올려놓아 멋을 부렸다.

익힌 나물이 아니라 생채를 넣어 부드러운 밥맛과 생채의 씹히는 맛이 조화를 이룬다. 비빔밥과 함께 나오는 된장찌개에는 된장에다 청국장, 연두부, 우렁 등을 넣어 순한 맛을 낸다. 전체적으로 음식들이 자극적이지 않고 순해 외국인 입맛에도 좋은 그런 집이다.

거기다 비빔밥을 내세우는 집들을 둘러보면 비빔밥 이외 반찬이 5가지를 넘지 않지만, 숙영식당은 10가지가 넘는 반찬들로 선택의 폭을 다양하게 한다.
↑↑ (좌)-논고동 더덕무침 :김해산 우렁과 경주 주변 지역에서 구입한 더덕을 버무리면 새콤달콤하면서 시원한 맛이 난다.
(우)파전 : 파를 촘촘히 넣고 밀가루를 조금만 넣어 바삭 구워낸 순수파전. 고소한 파 맛이 입안에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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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영식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집에서 직접 담그는 동동주와 순수 파전이 바로 그것이다. 시원하고 달곰한 맛을 내는 동동주는 세월이 변하고 손님의 입맛이 변해도 변함없는 맛으로 단골들을 유혹하고 있다. 식당에서 동동주를 들이키는 손님은 숙영식당 단골이라 봐도 무방하다.

특별할 것 없는 비빔밥에 특별함을 담아내고 있는 숙영식당. 여기저기서 한식의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는데 멀리서 찾을 필요가 있을까? 가까운 숙영식당에서 한식의 세계화를 찾아보길 바란다.

▶주소 황남동 13-5번지, 문의 054-772-3369




글=이필혁 기자 / 사진=최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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