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미 작가의 피로회복 영화 ‘카모메 식당’

‘그저 싫어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뿐이죠’

박근영 기자 / 2022년 0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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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카모메 식당 포스터.

잔잔하다 못해 심심한 영화 ‘카모메 식당(2006)’은 핀란드의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나에게 참 의아하게 다가왔다.

재미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기다리다가 끝나버린 느낌이었다.

연어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핀란드 헬싱키에 일본식 식당을 차린 사치에와 눈감고 세계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어 여행 온 미도리, 부모님의 병시중을 끝내고 온 여행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가방을 기다리는 마사코.

일본 여성 세 명과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핀란드 청년 토미의 일상은 현실에서 있을 것 같지 않은 독특한 캐릭터의 만남이라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넣을 법도 한데 영화는 시종일관 담담한 시각으로 소박한 음식과 일상을 보여줄 뿐이다.

더 의아한 점은 작업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칠 때 나도 모르게 찾아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별 내용도 없는데 그 많은 영화를 지나치고 왜 심심한 이 영화를 보고 있을까. 어쩌면 세 명의 주인공과 함께 그곳에서 오니기리를 나눠 먹고 수다를 떨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각자 다른 사연으로 떠나온 여행일 텐데 그들은 자신의 삶을 부정하거나 힘들다 토로하지 않는다. 현실에선 민폐 손님이었을 눈치 제로 핀란드 청년 토미와 떠난 남편을 미워하는 데 인생을 허비하는 핀란드 아줌마의 우울함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그녀들의 계산 없는 순수함에 나도 모르게 그들을 만나러 가고 왠지 모르게 의지하게 된다.

일상의 피로함이 누적되었을 때 찾게 되는 것이 여행과 혼자만의 시간 또는 휴식일 수도 있지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대해주는 누군가를 찾아 맛있는 음식과 특별할 것 없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우린 알고 있다. 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말이다.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한결같이 유리컵을 닦고 몸을 단련하며 하루를 채우는 사치에를 보며 자신을 의심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이 주는 위안의 힘이 얼마나 크고 든든한지 알게 되었다. 그 힘은 주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게도 한다.

단단하지만 따뜻한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는 섣불리 추측하지도 실망하지도 낙관하지도 않는다. 평온함을 유지하는 마음의 밸런스는 겸손한 미도리의 의리와 담대한 마사코의 혜안을 안으며 그들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행복하게 만든다.

‘그저 싫어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뿐이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는 미도리의 말에 사치에가 한 대답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지금 그렇게 견디며 애쓰지 않아도 되는 거지.

내일, 또 나를 기다리는 삶의 무게가 문밖에 버티고 있지만 소박하면서도 충만한 사치에의 당당함을 보고 나면 헬싱키 골목 어귀 카모메 식당에서 든든한 오니기리와 따뜻한 커피루왁을 대접받은 듯 속이 편안해진다.

사치에와 미도리의 대화처럼 오늘이 우리 삶의 마지막 날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묻는다면 누구나 그들과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시간만큼 소중한 순간은 없을 테니까.

이 섬세한 힐링 포인트를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30대 초반에 깨달았다는 사실이 나는 더 놀랍다.


#박수미 작가 : 인생을 관조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화가 겸 글쟁이. 한국화를 전공한 후 자신과 꽃, 풍경을 그리다 최근 한지를 꼬아 만든 곡선이 충만한 작품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구축했다. 경주 토우를 바탕으로 한 각종 상품을 제작해 2020년 중소벤쳐기업부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고 2021년 (사)한국미술협회 경주지부에서 기획한 ‘경주미술인상’ 첫 번째 추천 작가로 때수건을 소재로 한 기획전시 ‘때창’ 전시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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