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의 궁성이 있었던 월성(1)

하성찬 시민전문 기자 / 2024년 0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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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오른쪽 공터에는 월성의 상징인 신월(초생달)이 눈길을 끈다(좌). 남천 쪽 상공에서 내려다본 월성 전경. 경주 구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우).

↑↑ 하성찬 시민전문기자
호공에 이어 탈해가 월성에 터를 잡다.

월성은 우리 경주 사람들에게는 너무 잘 알려진 곳이다. 경주에서는 월성이라고 하기보다는 반월성이라 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소풍 장소였고, 어른들도 자주 찾아 망중한을 즐기던 곳이었다. 필자도 심사가 편안하지 않을 때 자주 이곳을 찾았었다.

이번 월성을 대상으로 글을 쓰면서 쉽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고자 하니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데 원고 마감 일자가 임박했다.

마감효과(deadline effect)라는 것이 있다.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서 마감 시간 직전에 이를수록 일의 능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효과이다. 즉 시간이 급박하고 다급한 상황에서 집중력이 높아지는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에 기대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잘 풀려야 할 텐데……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조에 이런 기록이 있다.

“양산 아래에 있는 호공의 집터를 보니 길지이므로 속임수를 써서 빼앗아 살았다. 그 땅이 뒤에 월성이 되었다”

즉 월성에는 궁궐이 들어서기 전에는 호공의 집이 있었던 것이다.
『삼국유사』 「기이」편 ‘제4탈해왕’조에는 탈해가 호공의 집을 빼앗은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어린 탈해가 지팡이를 끌고 두 종을 거느리고 토함산 위에 올라가더니 돌집을 지어 7일 동안을 머무르면서 성(城)안에 살 만한 곳이 있는가 바라보았다. 산봉우리 하나가 마치 초사흘달 모양으로 보이는데 오래 살 만한 곳 같았다. 이내 그곳을 찾아가니 바로 호공의 집이었다.

아이는 이에 속임수를 써서 몰래 숫돌과 숯을 그 집 곁에 묻어 놓고, 이튿날 아침에 문 앞에 가서 말했다.

“이 집은 우리 조상들이 살던 집이오”

이에 호공은 그렇지 않다 하여 서로 다투었다. 시비가 판결되지 않으므로 이들은 관청에 고발하니 관청에서 물었다.

“무엇으로 네 집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

이에 어린 탈해가 말했다.

“우리는 본래 대장장이였는데 잠시 이웃 고을에 가 있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빼앗아 살고 있는 것이오. 그러니 그 집 땅을 파서 조사해 보면 알 수가 있을 것이오”

이 말에 따라 땅을 파니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다. 이리하여 탈해가 그 집을 빼앗아 살게 되었다.

요즈음의 시각에서 보면 탈해가 분명 사기를 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나 당시에는 탈해가 현명했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그래서 탈해가 남해차차웅의 사위가 되고 유리이사금에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호공이 왜국에서 건너온 사람인데 탈해 또한 왜국의 동북쪽으로 천 리 밖에 있던 다파나국에서 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역시 왜국 사람이 아니었을까?(『삼국사기』의 이 기록과는 달리 『삼국유사』에서는 용성국이라고 했는데 이 역시 왜국의 동북쪽 천 리 밖이라고 했다.)

『삼국사기』 등 문헌 기록에 의하면 월성 안에는 남문과 서문인 귀정문, 현덕문, 무평문, 준례문 등의 문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 문들은 모두 사라지고 월지에서 들어가는 길과 첨성대에서 계림을 지나는 길, 그리고 최근에는 계림 쪽에서 들어가는 길이 새로 생겼다. 먼저 월지 쪽에서 월성으로 올라가기 전 신라왕궁영상관에 들렀다. 그런데 리모델링 공사로 오는 6월까지 휴관이란다. 수년 전 이곳에 들러 영상을 보았던 기억이 있어 다시 찾았는데 아쉽지만 발길을 돌릴수 밖에 없다.

과거 이곳 월성 일대는 벚꽃 명소였다. 4월 초순이 되면 벚꽃이 만발하여 경주시가지 전체가 환해졌다. 오늘날 김유신장군묘 가는 길과 보문단지의 벚꽃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데 벚꽃이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라 해서 시가지 쪽은 모두 베어 버리고 현재는 서쪽과 남쪽 일부에만 몇 그루 남아 있다. 벚나무의 원산지는 제주도라는데……. 일본과 관련되면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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